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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28. 2024

<소설> 누구의 시 2

●          


  시인 정태승 님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요구합니다.


  지금 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며칠째 잠도 자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죽을 것 같은 괴로움에 견딜 수 없어 저를 알고 제 시를 알아주신 분들에게 사죄하기 위한 글을 씁니다.

  지난 11일 저는 제 신인상 축하를 명목으로 정태승 님이 마련한 술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희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01학번이신, 저와는 11년 차 선배이신 정태승 님은 워낙 대선배라 강연회 빼고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동문이라는 이유로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어색하고 어려운 자리였으나 거절할 수 없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래도 강연회 때 멋진 모습만 생각하며 찾아갔지만 술자리에서의 모습은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정태승 님은 언어를 가다듬고 가꾸는 시인의 모습과 언행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음담패설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놓고 희롱의 언행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제 카카오톡에 저장된 여학우들의 프로필사진을 보면서 하는 성적인 외모 평가와 희롱은 옆에서 듣는 것으로도 수치심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그 자리에서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동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게는 어려운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비겁한 변명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정태승 님은 제게 성경험 유무를 물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저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아직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제 처지를 비웃으며 동정을 지켜온 저를 비정상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관대한 사람처럼 성매매 비용을 자신이 주겠다며 성매매를 권했습니다.

  단호히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저로 인해 술자리의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고 위계에 의해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강권하는 술을 뿌리치지 못했고 의사표현이 불분명해질 때까지 주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태승 님은 그런 저를 부축해 안마방에 갔고 저는 동정을 잃게 됐습니다.


  남성의 순결은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는 그런 생각에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제 미래의 연인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셈입니다. 그것은 제 자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정태승 님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로 동경하던 시인으로 정태승 님을 바라봤던 저에게 그런 짓을 하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흔한 일이라고 별 것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범죄와 범법에 침묵하는 남성들의 안일한 생각이 변화 없는 세상에 일조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남성도 변해야 합니다. 특히 시대를 대변하고 언어로 세상을 가꾸는 문학인이야말로 그 변화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계에 의한 결과이지만 저도 제가 저지른 범법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경찰서 앞 카페에서 이 글을 업로드합니다.

  짧지 않은 글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실 안에 들어서면 모든 연락망이 차단된다. 컴퓨터도 연결하지 않았고 휴대폰도 들고 들어오지 않는다.

  정태승 시인을 고발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던 그날도 남자는 작업실에서 일주일 후에 있을 여대 강연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한 인도여행기를 위한 여행일정을 짰다. 문학잡지에 기고할 시를 퇴고했다.

  남자는 작업실에서 금을 캐는 광부처럼 수확물을 얻기 전까지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남자는 작업실을 나올 때면 언제나 사람들이 좋아할 뭔가를 가지고 나온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으로 남자는 금을 수확해 지상으로 나오는 광부처럼 작업실을 나설 때에는 늘 상쾌했다.      


  [작가님. 아무래도 다음 주 강연은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차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작업실을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공기마저 달라진 것 같았다. 부재중 전화는 열여섯 통이 와있었다. 그중 맨 마지막에 온 연락이 여대 국문과 조교가 보낸 문자였다. 연락이 뜸하던 지인들에게서도 안부문자가 와 있었다. 그중 친하게 지내던 동료 작가가 작업실에 들어간 사이 일어난 문제를 상세히 알려줬다. 그날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남자는 SNS에서 172건 공유가 된 정태승 시인 고발 글을 봤다. 글을 공유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는 글을 읽는 시간 3분 만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글 밑으로 주르륵 달린 댓글은 실성의 상태를 가속화시켰다.     


  남자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뭐 하자는 거야? 너 뭐야?

  예 선배님. 김명진입니다.

  누가 그거 몰라서 물어? 너 그거 뭐야? 글 올린 거 뭐야?

  보신 그대로입니다. 선배님.

  뭐가 보신 그대로야? 거짓말이잖아. 그거 당장 지우고 해명이나 해 이 새끼야.

  저는 선배님이 사과전화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뭐라는 거야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사과를 왜 해?

  사과하셔야죠. 제 글 읽고 전화하신 거 아닌가요?

  너도 좋았다고 그래놓고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좋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글을 왜 올려?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하면 되잖아.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그렇게 올리면 내가 어떻게 되겠냐?

  없는 말이라뇨. 저한테 술 먹이셨잖아요. 저 데리고 안마방 올라갔잖아요. 없는 말입니까?

  술을 따라 준 거고 술을 먹은 건 너지. 돌겠네 이 미친 새끼. 너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지? 너 씨발 어디야? 확 죽여 벌라 이 씨벌넘이.

  됐습니다. 그런 식이시면 전화 안 받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남자가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미 몇 차례 성추문으로 문단이 얼룩져 있던 시기였다. 젊은 작가 중견작가 할 것 없이 성추문 피해사례들이 SNS에 쏟아졌다. 남자는 혹여 자신이 언급되는 건 없는지 살펴봤을 뿐 그 사태에 특별한 언행을 보이지는 않았다. 민감한 문제 앞에는 사소한 불똥 하나라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부 작가들에 대한 성추문 제보가 쏟아지고서 남자는 특히나 여자들이 있으면 언행이나 태도를 조심했다. 자칫 사소해 보이는 언행으로도 초가집에 불이 붙듯 활활 타오르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날을 곱씹어 봤다. 문제가 되었던 그날은 친하게 지내던 남자동료 작가들과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두텁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고 허물없이 친했다. 방심했다는 표현 말고 딱히 다른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글을 올린 후배는 모교 교수로부터 학교 재학 중에 잡지사 신인상을 받을 만큼 재능 있는 학생이니 잘 좀 챙겨주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생각이 나 결례인 줄 알면서도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초대했었다. 글에서는 음담패설만 주구장창 했던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지만 시와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가 더 많았다. 분위기를 띄우려던 것이 여자 취향 쪽으로 잠깐 흘러갔고 카카오톡 사진도 자기가 먼저 어떤 스타일이 좋냐며 보여줬었다. 스스로 모솔아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을 비하하는 후배가 측은하게 느껴졌었다. 남자는 연애고 섹스고 별거 없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장난스럽게 꺼낸 안마방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후배를 봤다. 가고 싶냐는 물음에 후배는 궁금하기는 하다는 대답을 했다. 남자는 그것이 긍정의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술도 과하게 따르지는 않았다. 주량이 소주 네 병이라기에 부담 없이 술을 권했었지만 한 병이 넘어갈 때쯤 눈이 풀리려는 것을 보고 더는 술을 따르지 않았었다. 안마방에 가기로 결심을 굳힌 건 후배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이었다. 만취한 듯 혀를 꼬부려 트리며 “아 션배뉨 셱스가 하고 시퍼요. 근데 전 안 되겠죠.”라고 말했다. 현금이 모자랐던 남자는 업소에 설치된 ATM기기에서 만원을 찾아 자리를 마련했다. 남자는 후배가 일을 치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남자는 그 모든 일련의 기억이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만 떠오르는 건 아닌가 하고 곱씹어 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은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 달랐다. 떠오르는 그때의 정황을 정리해야 했다. 남자는 변명의 말이라도 올리기 위해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차근차근 후배의 왜곡된 기억을 반박하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진흙탕에서의 개싸움이 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반박하는 글을 작성하는 도중에 후배의 계정으로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다.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겠습니다. 침묵은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비장한 제목의 글 내용은 조금 전 후배와 남자가 나누었던 통화 녹음이었다. 흥분한 남자의 욕설이 여과 없이 컴퓨터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듣게 되는 후배의 목소리는 새삼 놀랄 만큼 차분하게 들렸다.     

  “아…….”

  지저분한 개싸움은 시작되기도 전에 남자의 패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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