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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Sep 02. 2024

<소설> 누구의 시 3 完

  어쩌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 남자의 협박 때문에 태풍으로 변했다. 인터넷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다.


  [문학계 이대로 괜찮은가. 충격 성매매 강요 알선 행위]

  [시인 정태승 후배에게 성매매 강요 협박]

  [유명 시인 A. 성매매 알선]

  [시인 정태승 과거 섹스 중독 발언]

  [시인 정태성 과거 그의 시에 무슨 일이]

  [정태승 시인 성매매 알선 협박 무슨 일이?]

  [속보 성매매 정태승 그의 시는?]

  [정태승 과거 방송출연 무슨 말?]


  쏟아지는 기사들 덕분에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실시간 검색어에 정태승 세 글자가 올라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남자에게 불어 닥친 태풍의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의 신고가 이어졌다.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관계기관의 업무가 이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신속하게 경찰 쪽에서 연락을 취해왔다.

  남자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는 동안 벌어진 시끌벅적한 일은 세상사에 있어 찰나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세상사의 모든 일을 재단했다. 검색어로 올라왔던 남자의 이름은 섹시아이돌 현아의 19금 뮤직비디오에 밀려 내려갔다. 남자의 사건은 인터넷의 더미 한 구석에서 퇴적되었다.

  정태승이라는 이름은 검색어에서 내려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음에도 남자에게는 법적인 책임이 남아있었다.

  그의 죄명은 성매매 알선. 단순 성매매의 경우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지만 성매매 알선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둘 사이의 간극이 엄청났다. 정작 성매매 당사자였던 후배는 무혐의 처벌을 받았다. 후배의 자의가 아닌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반성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남자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적극 방어한 결과 초범에 금전적인 이득을 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참작받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을 명령받았다.

  존경하던 문학계의 선배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집시법, 국보법 위반으로 형을 살았던 것과 달리 남자는 성매매 알선으로 형을 받았다. 존경하던 문학계의 선배들은 감옥 안에서도 시를 쓰며 자신의 문학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과 달리 남자는 단 한 글자의 시도 쓰지 못했고 쓸 수도 없었다. 존경하던 문학계의 선배들을 구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면운동을 벌였던 것과 달리 단 한 사람도 남자의 이름을 입 밖에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별일 없어. 잘 지내.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    


  괜찮은 날들의 반복이면 당연히 괜찮아야 하는데 괜찮은 날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에도 왜 괜찮지 않은 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물어볼 때면 괜찮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 남자는 어쩌면 괜찮다는 말의 뜻이 익히 알고 있던 괜찮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로움. 슬픔. 쓸쓸함. 부끄러움. 괴로움. 화남. 증오. 남자는 그 이면에 숨겨진 자신도 모르는 말로 적힌 언어를 누군가 알아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물어오면 덤덤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남자는 때때로 누군가의 괜찮냐는 물음이 아직 죽지 않았냐는 확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남자의 아픈 속도 모르고 “그러게 왜 그랬어?”라고 묻기도 했고 남자의 아픈 속을 알면서 “그러게 왜 그랬어?”라고 묻기도 했다.     


  하루치의 오지랖이 남자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남자는 시를 쓰지도 못했고 써 달라는 요청도 없었고 그나마 잡혀 있던 일정은 모조리 취소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계약금도 모두 도로 토해 내야 했다.

  후배가 섹스를 하든 여자를 사귀든 개인의 문제이니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단지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었다. 남자의 첫 성매매 경험도 대학 문학동아리 선배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걸 받은 사람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 선배도 그날의 술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난 뒤에 “그러게 왜 그랬어? 요즘은 시대가 다르잖아.”라고 힐난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남자는 지금 시대의 남자들이 어떻게 섹스를 접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가 겪은 시대가 전부라 생각했다.

  군입대를 앞에 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과 돈을 걷어서 청량리에서의 하룻밤을 선물했던 일.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친구의 무용담을 듣던 일. 그것이 우정이 돼서 친밀감을 높였던 일. 남자가 살았던 시대는 그런 일도 흔히 일어나는 시대였다.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들. 기차나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 심지어 산부인과 병동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줄담배를 펴대는 아버지가 흔했던 시대. 그런 것들과 같은 시대의 이야기였다. 미개한 시대의 이야기였다. 다만 시대를 잘못 파악한 죄를 너무 혹독하게 받고 있어서 남자는 말도 못 하게 억울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잘못을 저질렀고 뉘우치면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남자는 억울해했다. 그것이 남자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혔고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마음을 잡아끄는 시구와 문장이 팔딱거리며 허공을 헤엄쳤다. 남자는 팔딱이며 허공을 떠도는 시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낚을 수 없었다. 그것은 죄인의 시였다. 그의 시는 모두 불결하고 부정했다.     


  남자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간의 경력은 모두 허물어져 있었다. 한 장씩 뜨거운 화로에서 구워내듯 썼던 시도, 그 시로 탑을 쌓듯 쌓아 올린 시집도 성매매 알선 경력이 있는 인간쓰레기의 배설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남자의 시집 인터넷 서평에는 그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마치 예수가 태어나기 전과 후처럼 완전히 달랐다. 물론 사건 후에 달린 시평은 남자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적은 것이긴 했지만 앞으로 그가 시를 쓴다면 그 평을 벗어나긴 힘들 터였다. 글 쓰는 재주밖에 없는 남자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할 일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남자는 문학잡지의 기획으로 마련된 시인 김명진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타락을 갈망하는 순수의 언어]였다. 남자는 단숨에 기획 인터뷰를 다 읽었다. 자신은 타락과 순수 사이를 오가는 경계자이며 시인으로써 그 경계를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오는 그의 시가 소개되어 있었고 그 시에 대한 문인들의 호평을 담은 서평이 이어졌다.

  남자의 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언어가 끓어올랐다.


 ‘이런 시벌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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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피곤한 사람들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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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남자는 번화한 시내를 홀로 걸으며 곳곳에 박혀있는 유흥업소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십 분을 넘게 걸으니 손가락은 물론 발가락까지 다 써도 모자랄 만큼 업소들이 즐비했다. 거기에 더 은밀한 곳에 숨어있는 키스방, 유리방, 오피스텔까지 합치면 그 합계가 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선배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 그러게 왜 그랬어. 요즘은 시대가 다르잖아.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대가 바뀐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역의 후미진 곳에 붉은 등을 켜고 손님을 받던 것이 전부였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남자는 차라리 과거가 더 순수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눈에는 시내 거리가 온통 붉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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