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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26. 2024

<소설> 누구의 시 1

  얼굴 없는 고통이 없다

  개중에 웃는 놈이 제일 아프게 때렸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난 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상체만 일으켜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피가 돌며 방귀를 뀌고 바짝 마른 입안을 쩝쩝 다시는 것도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남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남자는 일어나서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30분이 될 때까지도 남자는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방광에서는 진작부터 밤새 쌓인 소변을 배출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남자의 뇌는 그 요구를 받고 있었지만 몸을 움직여야 할 만큼 소변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 신호를 무시했다. 부팅이 느린 고물컴퓨터처럼 아주 천천히 몸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남자의 뇌로 또 다른 신호가 전달됐다.  


  물     


  한 몸이 수분의 배출과 흡수를 동시에 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잠깐이나마 흥미롭게 여기다가 곧 생각을 거뒀다. 어차피 하루 종일 남자가 하는 일은 먹고 싸는 일뿐인데 고장 나서 멈춘 시계가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을 맞추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자는 갈증을 채우기 이전에 화장실부터 갔다. 방광에서 보내온 신호가 갈증보다 먼저였다.


  비워야 다시 채우지.


  긴 잠을 잤던 만큼 남자의 소변은 긴 물줄기를 만들었다. 남자는 방광이 비워지는 것을 느끼며 몸의 수분이 이대로 쭉 빠지는 상상을 했다. 인간의 몸은 70%가 수분으로 되어있다니까 얇은 물줄기로 얼마동안 소변을 봐야 뼈와 살만 남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오줌을 다 누고 미라처럼 바싹 마른 몸으로 저벅저벅 힘겹게 냉장고 문을 열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상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변이 멈췄다. 휴지를 한 칸만 뜯어 요도 끝에 묻은 오줌을 닦고 변기의 물을 내렸다.

  남자는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텅 빈 냉장고 안을 보고선 생수가 떨어졌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날도 냉장고 안에 생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인상을 찌푸렸었다. 그리고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마셨었다. 남자는 어제와 똑같이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마셨다. ‘먹고 배가 아프면 아프라지 뭐.’라고 어제 하던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남자는 갈증을 채우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는 창 너머 해는 높았고 귓가에 들리는 소음이 어울리는 풍경이 보였다. 창밖 너머의 모든 소리는 창을 뚫고 들어와 희미하게 소멸했다. 남자에게 또렷이 들리는 소리는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남자는 허기가 느껴질 때까지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예정이었다. 언제 허기가 질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알 수 없을 만큼 시간을 보내도 되는 사람이었다. 얼마간은 그래도 괜찮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해야 괜찮았다.     


  한참을 자신의 숨소리만 듣고 있던 남자는 갑자기 결심을 굳힌 듯 소파에서 일어나 거침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남자는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았다.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맨 위층의 번호를 눌렀다. 그 층에 남자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을 만나러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만일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있다면 남자는 지금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접고 다시 소파 위로 돌아가 숨쉬기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확률은 반반이었다. 승강기 계기판의 숫자가 최상층과 가까워질수록 가슴속에는 격렬한 충돌이 일었다. 그것은 마치 목숨을 걸고 하는 동전 던지기였다. 살면서 했던 그 어떤 도박보다 큰, 어쩌면 하찮은 것을 걸고 벌어진 일이었다. 최상층에 도착한 승강기에 문이 열리고 어지럽게 펼쳐진 최상층 사람의 세간이 보였다. 빨래건조대에 걸린 옷가지들. 유아용 자전거부터 킥보드 먼지 쌓인 교육서적 어른용 자전거까지 문을 열고 집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사는 수준을 알 것 같았다. 남자는 ‘정리를 해 주고 올라갈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남자는 그것들을 지나쳐 옥상을 통하는 문 앞으로 갔다.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손잡이를 힘주어 돌렸다. 햇살이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남자는 여러 의미로 눈을 찌푸렸다. 바람이 유난스럽게 신선했다. 미세먼지도 걷혀서 좋은 날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런 충동적인 일은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남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남기고 싶은 말도 없었다.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난간 위로 올라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때마침 택배 배달을 마치고 자신의 트럭으로 돌아가는 택배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자신의 집에도 배달을 왔었던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택배기사의 위로 떨어졌고 둘 다 큰 충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이 죽음은 곧 기사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겠지. 댓글 창은 보지 않아도 알만한 내용들이겠지. 죽으려면 혼자 죽지. 택배기사는 뭔 죄냐? 끝까지 민폐네 쓰레기 새끼 지옥에나 가라. 그런 류의 댓글들. 욕할 거리 하나 물어 들고 신나게 뜯어대겠지. 그러면서 자기 스트레스를 풀겠지. 누구 좋으라고 여기서 죽어. 아니야. 아니지. 그렇게는 못하지.     


  남자는 허기가 느껴졌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끔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고 오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다 결국 자살로 상상을 마감하고 있는 쓸모없는 상상을 하는 순간에도 남자의 몸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후로 네 번의 자살을 더 마치고서야 허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가 눈에 띄지 않았다. 남자는 냉장고 문을 닫고 다시 소파로 가서 엎드렸다. 그리고 그대로 얼굴을 파묻고 괴성을 질렀다.     


  얼굴 없는 고통이 없다

  개중에 웃는 놈이 제일 아프게 때렸다     


  남자가 현재 느끼는 심정이 문장으로 떠올랐다.


  밖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남자는 시인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세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발표 한 젊다면 젊은 시인이었다. 남자의 시는 때로 기괴하며 때로 회의적이고 때로 우울했다. 그리고 어떤 시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며 섬세했다. 모두 다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았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남자는 시가 인정받는 데에 자신의 얼굴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물어본 적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남자의 시집에는 전문 사진사의 촬영으로 완성된 남자의 프로필사진이 그림처럼 박혀 있었다. 출판사가 그것이 시집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끼치리란 알기에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처럼 엄청난 인기에 몸살을 앓는 정도는 아니었다. 인기가 많다고 해봐야 시라는 것에 일말의 가치를 두고 읽는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시라는 것에 일말의 가치를 두고 읽는 사람들은 소수였지만 그게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남자는 그 사람들 때문에 밖을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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