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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11. 2024

<소설> 수염과 대머리 1

 국가는 탈모에 장애등급을 보장해야 한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그대여. 머리털이 다 빠질지어다.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나의 주장은 가히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모에 고통받는 사람은 모든 국가에 걸쳐 존재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탈모에 신음하는 그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우리가 하자. 이것은 여태껏 세계의 어떤 나라도 시도하지 않은 복지정책이다. 위대한 결정 단 한 번으로 대한민국은 단숨에 일류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자. 하면 된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는 나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누군가는 헛소리로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는 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언제까지 당신의 머리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굴지 마라. 풍성했던 머리카락을 지녔던 어린 시절 나 또한 자신만만했으니까. 나는 머리가 빠진다며 걱정하는 아버지를 보며 내 머리를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던 오만한 아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그 순간을 후회해야만 했다. 휑한 머리를 만질 때마다 나는 그날의 오만을 떠올린다.

  건강을 자신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발 또한 그러하다. 유전,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 스트레스성 탈모, 잘못된 위생용품으로 머리 감기, 기름진 식습관 등등 현대인의 삶은 호시탐탐 우리의 머리카락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개인의 힘으로는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없다.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삶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장애등급은 과도한 혜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대머리 깎아라.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임산부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임부 체험복을 입는 것처럼, 장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안대를 착용하고 걸어보는 것처럼, 탈모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대머리 깎으라는 외침은 지극히 당연한 제안이다. 겪어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해한다. 내게도 당신처럼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대머리 깎아라.


  연대하자. 당신도 빈자의 고통에 동참해라. 빈자의 고통. 머리가 빈자의 고통. 나는 머리가 빈자는 아니다. 단지 머리카락이 비어있을 뿐이다. 아무튼 당신도 그 고통에 동참해라. 세상의 모든 이가 고통을 나누는 것만이, 고통의 보편을 퍼트리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고통에서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대머리 깎아라. 이 효과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사례가 있다.     

  소아암에 걸린 한 어린아이를 위해 학급의 친구들이 보여준 훈훈하고 눈물겨운 사례이다. 그 아이는 항암치료를 위해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부끄러워할까 봐 학급의 아이들이 함께 머리를 깎았다는 이야기다. 실제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아이들의 그런 순수하고 예쁜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대머리 대머리 대머리 깎아라. 대머리가 아닌 당신은 대머리로 고통받는 이웃과 친구를 위해서 대머리를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때다.


  대머리가 된다는 것에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새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이발비가 들지 않고 외출을 준비할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점을 바탕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스타덤, 스티브 잡스, 율 브린너, 마하트마 간디, 성철 스님, 법정 스님,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리고 그 외 훌륭했던 대머리들에 대하여 당신은 존경의 마음을 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머리에 대한 혐오와 조롱 그리고 차별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연대하자. 나의 뜻에 동참한다면 나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이 몇 개가 있는가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무성하든 풍성하든 모근이 위태롭든 그것은 언젠가는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이 글을 보는 모두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탈모의 예방에 대한 연구와 인력을 충원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인류의 머리가 자람으로써 미용실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더 다양한 머리를 시도할 것이고 다양한 머리만큼이나 창의적인 생각들로 세상은 가득 찰 것이다. 불가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마라. 인종차별금지, 여성할당제, 노약자석 같은 것들도 원래부터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만이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기점으로 풍성한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만큼이나 다양한 헤어디자인이 창의적으로 나온다면 그 창의력이 다양한 산업에 접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탈모에 장애등급을 지정하고 그들을 치유하는 일에 예산을 쓰도록 하는 일이다.

  우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탈모 국회의원의 명단을 확보하여 법안 제정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분명치도 않은 이 글은 내가 소설의 도입부로 쓰기 위해 적은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데에만 이틀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대머리인 주인공의 심경을 가벼운 마음으로 다뤄보고자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해하며 동시에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자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 글에 담고 싶은 주제였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끄적거리는데 이틀이라는 시간을 소비한 뒤에 그 뒤를 이을 문장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대머리는 정말이지…… 뭣 같다. 그래서 대머리를 퇴치해야 한다는 것인지 대머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 대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자기 글에서도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냥 뭣 같았다. 이런 내 처지가 망해서 대머리가 된 건지 대머리라서 망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뭣 같은 대머리를 감싸 쥐고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단 한 글자도 적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대머리 따위에게 관심이나 있겠어? 나는 주인공으로 삼고자 하는 인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서는 이틀이나 걸린 도입부가 시간의 소비가 아닌 허비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대머리인 것 말고 아무런 능력이 없네. 애초에 대머리가 능력인가? 특징이지. 멋있고 특별하고 매력이 넘쳐나도 모자랄 판에 대머리라니? 아무도 대머리를 좋아하진 않잖아. 그런데 왜 대머리를 주인공으로 삼니? 그리고 왜 대머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주제에 소설이 성공적이길 바라는 거지? 대답을 찾지 못하고 뭣 같은 대머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비듬이 손톱 사이에 끼었다. 두피 위에 유분과 피지들도 함께 손톱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새까만 손톱 밑의 떼를 바라보며 참 멋대가리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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