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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12. 2024

<소설> 수염과 대머리 2

●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준다. 나는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었다.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 중에 하나였다. 오늘은 돼지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부담이 느껴졌다. 아들이 잘됐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나는 꾸역꾸역 고기를 씹어 삼켰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서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내 등 뒤로 가서 앉았다.

  엄마는 텔레비전보다 아들의 머리에 시선이 쏠렸나 보다. 하나뿐인 아들의 휑한 뒤통수를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겠지.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이기에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을 찾아서 건넨다.

  “네가 어려운 글 쓰느라 고민을 많아서 그렇게 머리가 다 빠진 가보다. 그냥 쉬운 일 해라.”

  과연 소설가의 어머니답게 짧은 문장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나는 그 짧은 한마디에 숨어있는 모든 것들을 간파했다. 아들의 대머리에 대한 안타까움,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한 노고를 인정, 다른 일들을 쉬운 일로 매도하며 직장을 잡아 돈을 벌기 바라는 마음, 돈 벌어서 결혼하고 애도 낳아서 제발 좀 사람답게 살라는 간절한 바람,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면서 부모 속을 썩일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요구, 오냐오냐 하며 자식을 잘못 키워낸 부모로서 느끼는 통한의 감정, 떨어지는 머리카락과도 같은 처절한 인생의 회한, 너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 빌어먹을 세상 따위…….

  나는 텔레비전 앞에 가로누워 손을 머리에 괴고 다른 손으로는 배를 긁적이며 함축된 말의 모든 뜻을 간파한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 들은 사람처럼 텔레비전을 보며 웃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내일 면접 잘 봐라.”


  나는 말했다.


  “네.”     


●     


  대학을 나오셨네요?

  네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습니다. 글을 써봤기 때문에 기자 분들의 노고를 다른 분들보다는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운전 경력은 얼마나 되세요? 운전은 잘하세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가장 혈기왕성하던 시절에 제대로 야단맞으며 익힌 운전이라 제 몸을 다루는 것처럼 능숙합니다. 이력서에 적혀 있듯이 대학생 때는 방학 때 택시기사 아르바이트도 3개월 했었습니다.

  저희 기자 분들이 성격이 까칠해요. 잘 버티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

  자신의 손끝에서 나오는 말이 세상에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키는 직업이라면 그에 걸맞게 까칠함은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까칠함이 직접 표명되었을 때 그 근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기사를 작성해 본 적은 없지만 글 쓰는 고충을 아는 사람으로서 그에 따른 기분도 잘 파악해 응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머리가 훤하시네요. 그렇게 자르신 이유가 있나요? 혹시 입사하시면 머리를 기르실 의향은 있으신가요?

  회사 방침이 머리를 기르라는 것이라면 물론 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시는 제 모습이 가장 깔끔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이 머리 덕분에 기자 분들이 멀리서도 제가 운행하는 차를 더 잘 알아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들 실어다 주는 차도 운행하지만 임원 분들 차량 운전도 해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임원 분들은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시니까. 머리를 기르실 수는 있는 거죠?


  예.


  예?


  예. 머리 기를 수 있습니다. 근데 길러도 머리카락이 격식 있게 자라지 않아서요. 지금 이 모습이 가장 단정한 모습입니다.


  예.


  예?


  예. 수고하셨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취업 후 상황에 대해서 상상을 해 보았다. 거대 기업과 정치가의 비리로 얼룩진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의 옆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 넣었다. 꼭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기자를 지켜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거기에다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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