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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14. 2024

<소설> 수염과 대머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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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오가 되면 내 방으로 태양이 들어왔다. 햇살이 건축가의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해가 뜨는 날이면 정확한 알람이 되어줬다. 잠을 방해받았으면서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은 건 기다리는 합격자 발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가 앉았다. [할 일이 기다리는 인생이란 잡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메모장을 꺼내 적어두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잡생각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메모지를 꺼내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라는 것 또한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나는 하려던 일이 뭔지 잠시 생각해 기억을 떠올려 다시 본래의 목적인 합격자 발표를 위해 인터넷 창을 열었다.

  나는 합격자 발표 게시물을 클릭하고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두 번을 살펴봤지만 없었다. 키보드의 컨트롤과 F버튼을 동시에 누르고 이름을 집어넣었다.

  면접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대답도 잘했다. 엄마가 합격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 당연히 될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충격이 컸다. 결격 사유라면 짚이는 것이 하나가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목적을 잃은 나의 커서는 화면을 이리저리 떠돌며 의미 없는 클릭을 했다. 그러다 닿게 된 곳이 신문사 대표의 인사말이었다.


  세계와 발맞추는 광명일보입니다.

  광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표의 머리가 훤했다. 겉보기에 참으로 격식 있는 중년의 대머리였다.

  “이런 격식 있는 대머리를 봤나.”     

  나는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고 밖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어머니는 눈시울을 훔쳤겠지. 드라마가 슬펐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응당 뻔히 보이는 패배라 할지라도 패배 그 자체로 대미지를 입는다. 나이가 드니 대미지를 입은 후 충격에서 가시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어릴 적에 비해 현저히 길어졌다. 패배를 아무리 많이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 패배는 충격이 컸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대머리 CEO가 있는 회사에서 당한 거절은 돌파구를 찾지 못할 만큼 충격이 크다. 물론 광명일보 CEO가 대머리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정말 나 자신이 오직 대머리라는 이유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해야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광명일보는 나의 분노를 받아야 한다. 나는 소설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로 했다.     


  그날 이후 광명일보 기사를 따라다니며 악플을 다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인터넷 접속 화면에 광명일보를 구독으로 설정해 두고 광명일보 기사 논조에 반하는 내용을 댓글을 다는 일에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사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기사 내용에 흠을 꼬투리를 잡아 가짜 뉴스라 매도하거나 맞는 말조차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부정적 기운의 댓글을 달았다. 내가 이런 쓸모없는 짓거리에 시간을 허비하는 원동력은 처음 며칠은 분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헛소리에 박히는 이름 모를 누군가들의 추천이 헛짓거리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원체 안티가 많은 광명일보라서 대충 욕만 끄적거려 놔도 누군가는 추천 버튼을 눌렀다. 그 관심이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천이었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내가 적은 댓글의 개수를 확인하며 값싼 자존감을 보살폈다. 지은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인기 있는 책을 쓴 유령작가의 기분을 느꼈다. 행복한 유령작가의 예시가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당연히 나 역시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래 할 수 없으며 오래 해서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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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점원, 대형마트 점원, 회사 사무보조, 청원경찰,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 박물관 지킴이, 병원 야간 당직, 텔레마케터……


  내가 거친 직업이었다. 짧게는 두어 달 길게는 반년을 넘기는 정도였다. 어떤 일이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대체로 전문직을 도와주거나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나는 딱 거기까지만 만족했다. 살인자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살인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옆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소설적 영감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영감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이 달아올랐다. 업무 시간에 시선은 허공을 가르고 그런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동료의 속을 뒤집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고 방구석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반짝이며 완성된 소설을 들고 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소설 한 편으로는 인생도 세상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다음 직장을 구하고 퇴사를 하고 소설 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소설을 써내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내 머리카락만 달라져있었다.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근데 머리카락이 흩날리지 않는다. 없으니까.

  기자들을 실어다 주는 운송 업무에 지원한 것도 소설 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사건과 사고가 있는 곳에 기자들을 데려다준다. 기사를 써야 하는 책임감은 없다. 그사이 나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만 탐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쩌면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을 일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고 큰 기대를 품었다. 결과가 좋지 않아 기대한 만큼 아쉬워져서 대미지가 컸다. 탈락의 사유가 대머리 때문이라면 그것은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나는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그간의 경력이 쌓여 전문성이 더해졌다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경력은 파편의 덩어리였다. 담당자가 이력서를 보고서 끈기 없고 산만한 사람이라 판단을 내려도 변명할 수 없었다. 그간에 쓴 소설을 보여드릴게요. 그 파편 하나하나 모두 멋진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소리는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소설은 이력서에 적을 수 없는 경력이다.


  탈모가 시작된 이후로는 대면 서비스는 지원할 수 없었다. 어떤 사장도 손님 앞에 대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적지 않은 나이도 취직에 큰 어려움이었다. 정부에서 복지 차원으로 찍어내는 청년 일자리조차 아슬아슬하게 청년을 지난 38세의 남자는 지원 자격조차 없었다.


  청년도 중년도 아닌 애매한 남자. 나는 객관적으로 내 처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정말 핀치에 몰린 주인공이군. 하지만 그래도 이 애매한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지 않을까? 이 주인공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감정에 노출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메모를 꺼내 세밀한 감정의 묘사를 써 내려가다가 낙관처럼 마지막 문장을 적어냈다. 구제불능. 호더스증후군에 걸린 환자처럼 온갖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버리지 못하고 메모장에 쌓아두고 있었다. 그래 놓고 왜라고 물어보면 늘 변명을 하는 거다. 다 어딘가에 쓸데가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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