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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Aug 19. 2024

<소설> 수염과 대머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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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씨 출산의 신비 육아의 기쁨 사랑의 숭고함 등의 과목은 시작도 못 하셨네요. 어디 보자 독거 인간의 외로움 챕터는 만점이시다. 대체 왜 이렇게 한 과목만 파셨어요? 이타심이라고는 없어요? 그 흔한 개나 고양이도 안 키우셨네요? 뭐라도 기르셨어야죠. 그래야 점수가 오르는데. 왜요? 알레르기요? 개가요? 고양이가요? 아 당신이요? 그래요. 반려동물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니까요. 잘하셨어요. 해석의 여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지 높게 평가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런 걸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당신이 가야 할 곳을 정해드리는 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대수 씨는 종합적으로 점수는 부족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옥으로.     


  지옥은 너무 심한 처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외롭게 산 것도 억울한데 지옥행이라니.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쓰지 않아도 진행되는 상상처럼 현실의 취업도 연애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없을까? 아니 애초에 취업, 연애, 결혼, 출산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건 정말 인위적인 일이다.


  나는 인간이 태어나서 숨을 거둘 때까지 겪는 수많은 경험을 다 해보고 싶었다. 사랑,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이별, 다툼, 화해 지리멸렬한 인간의 감정 하나하나 느껴보고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것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입학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이뤄질 줄 알았다. 교과서의 인물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염을 붙여도 종이 치면 끝이 나는 수업 시간과는 달리 인생은 그렇게 당연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삶은 때때로 자존심을 내던지고 목숨을 걸어야만 다음 단계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너무 태연한 얼굴로 그 모든 걸 해내고 있었다. 힘들지 않은 걸까. 힘든 척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 못하고 끝날 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인생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쓸데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좇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렇게 주절대며 넋두리를 읊는 와중에도 지옥으로 간 대수가 다시금 기회를 얻고 세상으로 돌아가 망가졌던 인생을 고치는 내용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수의 망가진 인생이 점차 회복되며 진짜 행복을 찾는 과정을 분명 독자들도 원할 거다. 내가 재미있다. 그렇다면 분명 보는 사람도 재미있을 거다. 재미있다. 아 너무 재미있어서 죽을 것 같다.               


  “대수야 밥 먹어라.”

  “어머니 당신은 마더 테레사이십니까?”

  “잘 먹어야 힘이 나지.”

  “된장찌개에 고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어머님. 당신은 마더 테레사이십니까?”

  “밥 먹고 그 머리랑 수염이나 어떻게 해. 더러워 죽겠다. 그 꼴을 하고 무슨 취직이냐? 장비가 형님이라고 하겠다.”

  “장비가 형님이라고 한다면 제가 관우쯤 되겠군요. 이 된장찌개가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

  “하이고.”


  엄마는 웃었다. 하이고 하면서 웃었다. 말하는 나조차 짜증이 나는 헛소리를 들으면서 웃는다. 그런 사람에게 밥을 차려 주면서 웃는다. 엄마가 대머리는 아니지만 달라이라마보다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아닐까?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과 개 중에 어떤 걸 키우는 게 좋았을지 또 상상을 하며 된장찌개에 들어있는 돼지고기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이렇게 무능력한 존재에게 사랑하며 밥을 주는 그 원동력은 대체 뭘까? 그 신비로운 힘을 나도 체험해 보고 싶다. 하지만 안다. 그것이 얼마나 먼 길일지.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 모아놓은 자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사람. 생판 모르고 살던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기적을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그 상대방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에 합의해야 하며 태중의 아이를 10개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만 내가 엄마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겠지. 대충의 인생을 훑어도 개미가 태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득하다. 나는 자신이 없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누구를 책임지고 누구를 길러내겠나.     


  “엄마 미안합니다.”

  “뭐가?”

  “미안합니다. 호강도 못 시켜 줘서.”

  “네가 뭐 어때서? 너는 늦게 잘 된다 그러더라.”     


  10년도 전에 들었던 늦게 잘된다는 소리를 믿는 바보는 없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 본인조차도 그 말을 믿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거짓말이지만 진실된 말이다. 말하자면 그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같은 뜻이다. 나는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의심이 필요 없는 단계에서는 많은 언어가 단순해진다.     


  나는 입 안 가득 된장을 머금은 밥을 씹고 있다. 그 감칠맛이 모든 세포를 뒤덮고 있다. 이 완벽한 행복의 순간에 단 하나 거슬리는 장면은 음식을 씹을 때마다 보이는 입 주변의 수염이었다.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된장 국물도 묻어 있을 거다. 밥을 다 먹고 입 주변을 닦을 때면 음식의 잔류물이 수염에 코팅되는 느낌을 받는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수염을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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