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작성시점으로 아직 12월이 이제 막 시작 되었지만 올해 밀리의 서재를 통해 86권의 책을 105시간 동안 읽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종이책도 그에 못지않게 읽고 오프라인으로 읽은 책은 통계에 잘 반영이 안 되는 것 같으니 100권은 넘은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직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이 브런치 북을 쓰는 목적이, 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좀 줄여보고 정리해 보려는 건데
읽고 싶은 책만큼은 정말 정리 못하겠다. 책이란 건 즉흥적으로 읽게 되는 게 많아서, 뭔가를 배우는 것처럼 도전하는 것도 아니니 가지치기가 더 어렵다.
그럴 땐 일단 뭘 그렇게 읽고 싶은지 들여다보려 한다.
1. 소설
이번 연도 가장 많이 읽은 분야는 소설이다. 내가 소설을 고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 내가 갈 여행지 나라의 소설.
태국 여행을 가기 전에 태국 소설을 찾아본다. 더 재밌는 여행을 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세상엔 별의별 출판사가 다 있는데 한세문화재단예스 24사에서는 '동남아시아 문학총서'시리즈를 내준다. 여기서 태국 소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 (아깟담끙 라피팟 저)'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태국 사람들에 대해서 여행 정보책을 읽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그들의 삶을 비춰볼 수 있다. 1900년대에 쓰인 태국 최초의 소설이다. 영국에 비해서 거의 천년이나 뒤늦게 첫 소설이 등장했는데, 그 시간차가 감히 그 어떤 발전의 뒤처짐 보다 더 크고 무서운 것 같다.
- 작가별 소설
좋아하는 분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추천해 주어서 입문서라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있다. 문체에 적응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 역시 재미있다. 그간 내가 좋아했던 북유럽 작가는 어딘가 시크하고 웃기게 쓰고, 영국 작가는 탄탄한 스토리와 생생한 캐릭터를 믿고 보게한다. 일본인 작가는 그렇게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표적인 작가에 처음 입문해보니 또 다르다. 다양한 스타일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고 싶은지 롤모델문체를 만나기도 한다. 그 과정이 좋다.
- 수상작품
한겨레 수상작에 꽂혀서 몇 해에 걸친 수상작을 읽었다. 내가 살고 있는 같은 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어두운 면모를 잔뜩 담은 소설을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그렇게 무겁게 덮었다. 덮고 나니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이 들어온다. 그랬다, 내가 스쳐간 소녀의 이야기였구나. 우리나라 수상작들은 왜 이렇게 하층민, 어두운 사회의 면모, 힘들고 고된 생활을 다루는지 궁금했는데 제목에 답이 있었다. '이런 소녀가 없다고 발뻄하지 말자.... 그 소녀는 먼 곳에 있던 게 아니었다. 우리들과 한 뼘의 차이가 날 뿐이었다'(소설가 박성원). '항상 예쁜 것만 보지 않을 테다'라는 내 가치관 문장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던 톨스토이의 신념이 언급되며 해당 작품 수상평이 마무리된다. 어떻게 안 읽을 수가 있겠냐고.
2. 에세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 제일 좋은 건 에세이다. 소설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몰라, 내가 믿고 싶은 부분만 골라 믿지만 에세이는 다르다. 손흥민 부자가 쓴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오늘 더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장강명 작가가 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는 책을 읽고 소설가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더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에세이 '아무튼' 시리즈를 보며 누군가가 흥미로운 사실과 정보들을 정리해 둔 것을 편하게 읽는다. 정갈하게 차려준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되는 편함이 있다.
예: <아무튼 피아노, 김겨울 저> 중 '...뉴욕에 위치한 스타인웨이 공장에서는 하루에 열 대 정도의 피아노가 생산된다...' -를 읽으며 예전에 스타인웨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는데 3억짜리 피아노를 친 경험을 떠올리며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3. 자기 계발서
자기 계발서는 다 똑같고, 뻔한 성공팔이라는 얘기는 분명히 한물갔다. 요즘 자기 개발서를 읽는 방법은 좀 다르달까. 그저 멋진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적응할 점을 찾는게 트렌드같다.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온 '한 번 성공한 방식으로 하지 마라'는 이 한 문장을 읽고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문장을 꼭 찾은 거 같았다. 세 번째 책을 쓸 때 자꾸 이전의 방식으로 하려는 나를 완벽히 저지해 주는 문장이었다. 자기 계발서는 끝까지 다 읽을 필요도 없고, 그저 나에게 와닿는 문장 하나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또는 그냥 오늘 하루의 조금 게으른 나를 책상으로 끌어내는 정도로도 말이다.
4. 작가 되기
에세이 쓰는 법, 소설가가 되는 방법, 좋은 작법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다. '나는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편에서. '소설 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가 밀리의 서재에 있는데 플롯과 구조, 묘사와 배경, 대화, 고쳐쓰기 등 매우 구체적으로 책이 나뉘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쓰기 강의를 듣고 차라리 이런 책을 정독하고 실천해 보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났다.
5. 영어
영어 공부책, 영어 소설책 모두 해당된다. 영어공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부다. 평생 하루도 안 빠지고 할 수 있을 내 원동력. 캠브리지 CUP에서 나온 책 Collocations, Phrasal verbs, Idioms는 꼭 다시 한 바퀴 더 돌릴 거다. 영국 영어 가르쳐주는 책, 원어민들이 쓰는 최신 유행하는 표현은 왜 그렇게 새로 많이 나오는지 끝이 없다. 런던에서 사온 조조 모예스의 신작 'Someone else's shoes'도 천천히 끝내고 싶다.
6. 영국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국. 이전 브런치 '나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에서 언급했듯, 영국에 대한 소설을 쓰려면영국 사는 사람만큼 영국 이야기가 줄줄 나와야한다. 이미 한국에 있는 영국 관련 책은 50권은 읽었겠지만 아직 부족하다. '런던에서 1년 살아보기 - 이승일 저'를 읽으며 부러움을 고스란히 느낀다. 영국에 대해 내가 모르는 건 없는지 찾아내며 읽는 게 나에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재미다.
7. 회계, 세무 등 회사 업무 관련
마침내 찾은 지금 내 포지션에서 일을 잘하고 싶다. 그래서 재무, 세무, 회계, 나아가 경제 및 경영 책이 잔뜩 담겨 있다. 전공지식 책이야말로 필수로 읽어야 하는 것이니 더 이상의 말은 지루하기도 뻔하기도 하여 생략하겠다.
여기에 쓰지 못한 나의 은밀한 취향을 담은 책들도,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도, 무슨 분야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쓰다 보니 '읽고 싶은 게 너무 많아'에 대한 내 결론은 하나다.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고 스트레스받지 말자. 지금도 옆에 현재 진행 중인 책이 열 권 정도 높게 쌓여있다. 위태롭다. 괜히 저거 다 읽을 때까지 옆에 쌓아놓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책장으로 옮겨버리자. 다시 필요하면 꺼내겠지. 어차피 내가 위에 적은 책들을 뭐 하나 빼라 하면 더 괴로워할 테니,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다. 밑줄 긋고 마음속에 와닿아 나를 변화시켜 줄, 그 문장을 찾아 마음껏 여러 권을 항해하자. 크루즈 모양을 닮은 대영 도서관에서 배웠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