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담긴 위로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강아지와 함께 걸어가다 어떤 빌런에게 상욕을 먹었다. 쇼핑몰 주차장이었는데 저 쪽으로 비키라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F자 욕을 날리는 자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그냥 보냈는데 빌런은 스벅을 들어가며 굳이 나를 다시 불러 세운다.
"그쪽으로 걷지 말란 말이야!"
"알겠는데 그 말을 굳이 일요일 아침부터 욕설과 할 필요는 없어. 당신이 평화를 찾기를 바라."
(그리고 그가 그냥 갔다면 감동적인 엔딩이었겠으나 빌런은 "Don't fuck with me!"를 외치고는 씩씩대며 자리를 떴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F자와 다른 욕설을 섞어서 상욕을 날려줬겠지만, 한번 대차게 넘어지고 나니 이런 사람들이 그저 불쌍하다. (그들이 듣고 어이 털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쩐지 측은지심이란 것이 생겼다.
작년에 아버지를 여읜 고객이 찾아왔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건 석 달 전이었는데 그녀는 그때처럼 지쳐 보였고 힘에 부친 듯 보였다. 나라고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신년과 함께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고 여전히 만신창이인 멘털을 부여잡고 오늘 하루만 잘 넘겨보자, 되뇌고 있었으니까..
고인이 된 그녀의 아버지를 오륙 년 전 처음 만났다. 고집쟁이에 말 수가 적은 편이었으나 외동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She's got a solid head on her" 똘똘히 앞가림을 잘한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던 걸 그녀는 알까?
사무가 끝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어떻게 지내냐고. 좀 편안해졌냐고. 눈이 마주친 그녀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몇 달간은 이것저것 사후정리를 하느라 바빴다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이제 얼추 다 끝난 것 같으니 좀 쉬겠다며 먼 곳을 보았다.
혼자 남은 딸은 바삐 팔다리를 움직였을 것이다. 집을 치우고 공과금을 내고 은행 및 각종 기관에 연락하면서 바쁘게 지냈을 것이다. 제대로 애도할 정신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만큼 복잡한 관계가 또 있을까. 그녀의 기억 속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내가 아는 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할 테니. 젊은 시절 아빠가 그녀에게 어떤 상처를 얼마나 주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그녀가 얼마나 아빠 속을 썩이는 딸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부녀간의 깊은 사연을 알지 못해도, 부모를 잃어본 적이 아직 없어도,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고 행복을 빌었다. 안아주었다.
수렁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따뜻한 위로의 힘을. 이유 없는 친절, 대가 없는 호의, 이런 따뜻한 마음이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누구나 필요하고, 누구나 줄 수 있는 그것 - 따뜻한 위로다. 어쩌면 이 것이 내가 여태 안 죽고 살아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