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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15. 2023

상담치료를 받아보았다.

내가 왜 이런지 답을 알면 내가 여길 왔겠냐고요.

한동안 단톡방에도 참여하지 않다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나 요즘 사는 게 너무 지루해. 아침에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 무엇도 하고 싶은 게 없어. 어쩌면 좋을까.


여러 가지 제안들이 왔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상담'이었다.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가 빈번한 직업군이다 보니 친구들 중 열에 아홉은 상담 경험이 있다.  정신건강은 변호사협회에서도 중요히 여기는 문제라 (협회 입장에선 과실보험 지출을 줄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얼마간의 비용부담도 해준다. 예전에 우울증 비슷한 것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어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상담사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변호사협회에서 연결해 준 기관에 전화를 했다.  본인확인 등등의 절차를 거친 후 상담사 예약을 잡아줬다. 전에 갔었던 상담사에게 다시 갈 수 도 있겠으나, 그분이 숙제를 너무 많이 주셔서 (그 주의 주제에 관련된 책이나 기사의 일부를 복사해 주고 읽어오라는 식이었다. 귀찮은 건 둘째치고 그런 읽을거리가 나에게 딱히 와닿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상담사에게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지금 내 상태가 너무 바닥을 찍고 있어서 당장 다음 주에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추리고, 그중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추리니 딱 두 사람이 남았고, 그중 하나를 그냥 찍었다. 예전에는 여자상담사를 썼으니 이번에는 남자상담사에게 한번 가볼까 싶었다.  일주일 후 그 상담사와 만났다.


어떤 문제로 왔냐,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 무슨 일을 하냐, 등등 기본적인 질문에 답했다.  나는 요즘 모든 게 하기 싫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도 너무 고역이라고. 갈구는 직장상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하면 걸어 나갈 마음을 먹기까지 십오분이 걸린다고. 그런데 막상 일 외에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잠은 잘 자냐, 먹는 건 잘 먹고 있냐, 묻길래 잠은 잘 잔다고 답했다.  법대 동기들 이야기 들어보면 수면유도제를 쓰는 친구들도 꽤 있던데 난 어쨌든 잠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좀 못 자면 그런가 보다 하고 좀 많이 자는 날이 있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규칙적인 식사에 관한 질문에는 좀 머뭇거렸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후 아침과 점심은 거의 안 먹고살았다. 아침은 원래 안 먹었고,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정신 차리면 두세 시라 점심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거의 점심을 먹지 않고 살았다. 정말 바쁠 때는 이틀 넘게 식사를 잊기도 한다. 어느 순간 너무 기운이 없어서 생각해 보면 마지막 식사가 엊그제였던 걸 깨닫는 식이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라지만 늦게까지 야근하고 집에 가면 누워 자기 바쁘고,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쁘고, 출근하면 또 일하다가 식사 때를 놓친다. 어쨌든, 상담사에겐 간단하게 1일 1식 한지 오래되었다고만 말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뭘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는 좀 막혔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즈음에는 그것조차 하기 싫었기에 다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때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하세요?"


이때부터 슬슬 혈압이 올랐다. ( 알... 내가 여길 왔겠냐고...) 하지만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지금까지 에서 나의 생존가치를 찾아왔는데 어느 순간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십몇 년 동안 목표지점을 향해서 달리기만 하다보니 한순간이라도 달리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데 그렇다고 또 계속 달리는 건 너무 힘들고? 


"왜 그럴까요? 왜 일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되었을까요?

(이젠 심히 빡침. 뭐 하자는 거? 그래, 의도는 알겠다. 내가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이야기를 하고 그런 걸 원하는 건 알겠는데, 질문 방법이 틀렸다.)  모르죠. 너님이 알려주는 거 아니었나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같이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답은 스스로 찾아야해요." 


별 이야기 안 했는데 벌써 50분이 다되어가고 있었고, 이미 심기가 뒤틀려 퉁퉁병이 올라온 나는 이 상담사를 다시 볼까 말까 고민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신의 백그라운드가 무엇인지? (나는 학문적 백그라운드를 물었는데, 그는 내가 자신의 인종적 백그라운드를 묻는다고 생각했는지, 러시아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반러감정이 강했으나 넘어가고. )


그게 아니라 학문적  배경 무엇인지? 무슨 공부를 어디서 하셨는지? 러시아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석사까지 따셨다고.  


전문 상담 분야는? 중독치료, 가족관계 등등.


상담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1년 정도 되었다고.


그래. 진상 떨었다는 것, 나도 안다.  하지만 나도 뭘 알아야 상담사를 고를 것 아닌가. 상담사 입장에서는 열 받을 일이겠지만


어쨌든 결론은... 나랑은 안 맞는다.


번아웃 타파를 위한 첫 번째 상담치료는 실패로 끝났다.(상담치료 자체에 믿음을 잃은 것은 아니다. 내 마음자세가 문제라는 것도 안다. 다른 상담사, 나와 좀 더 맞는 상담사를 찾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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