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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Dec 20. 2022

내 고등학교 수학샘을 대학교에서 다시 만나다.  2

생각하는 교실이란?

"근데 왜 맨날 제가 뭘 물어보면 칠판에다가 풀어보라고 하셨어요?" 


"아,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 내가 가르쳐보니까 아이들이 교실에서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분명히 학생들은 앉아있고 선생님은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있지는 않은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교실 안의 시스템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학생들이 주로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평 공간에서 문제를 풀고 있다면 그 걸 수직으로 바꿔보는 거지. 칠판은 수직 공간이니까. 


그때 관찰했던 부분에서 시작해서 더 창의적인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에 점점 관심이 갔고 결국에는 책까지 쓰게 된 거야. 앞을 보고 있는 교실을 바꿔서 중앙을 본다거나, 전에는 설명을 먼저 듣고 문제를 풀었다면 문제를 먼저 풀어보고 설명을 듣는다거나.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교육환경을 바꿔야 학생들의 태도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배움에 세 가지 요소가 있어 - 학생, 선생님, 그리고 환경.  난 그중에서 환경을 바꾸는 법을 연구했어." 


나는 피터샘의 새로운 시도 중 첫 번째를 경험한 운 좋은 학생 중 하나인 것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내 학생들 중에는 11학년 수학을 낙제에 가까운 성적을 받고도 12학년 수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꽤 있었어. '수학을 못하는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도 환경을 바꾸고 가르치는 방법을 바꾸면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피터샘은 왜 다시 대학으로?


첫 교직을 맡은 고등학교에서의 일은 즐거웠지만 집이 멀어서 출퇴근이 점점 힘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붙잡았다. (피터샘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 분명하다.) 뭐든 다 해줄 테니 남아달라고. 그래서 수업을 격일로 몰아서 잡았다. 하루는 출근해서 수업을 하고 하루는 집에서 일하고. 그때 첫아이가 4살 둘째가 1살이었다. 와이프도 일을 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단 1.5일을 봐줄 보모를 구했는데 그 보모가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걸 알게 되고는 바로 학교를 그만뒀다. 


피터 샘에게는 마음이 아픈 기억이라 자세히 묻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했다. 교직이야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일을 쉴 수 없었다. 


마침 석사 공부를 할 예정이었으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석사 프로그램을 마쳤고, 어쩌다 보니 박사과정까지 하게 됐다. (석사 과정이 끝난 후 박사과정을 밟으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박사과정을 원래 초청으로 하나요? 물었더니 매우 드물지만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와 집을 오가며 6년 정도 육아와 공부를 병행했다.  박사 학위를 딴 후 부교수로 시작해서 정교수가 되었고 부학장 직책도 맡았다가, 점점 대학에서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지금 하시는 일은 뭐예요? 


재작년에 그간의 리서치를 바탕으로 "Building Thinking Classroom" (생각하는 교실 만들기)라는 책을 냈다. 목차를 보니 이런 내용이다: 


* 생각하는 교실에서 '같이 생각하는 그룹'을 짜는 법

* 생각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어디서 공부할까

* 생각하는 교실에서 질문에 답하는 법

* 생각하는 교실에서 책상 및 가구 배치법

*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과제를 주는가

* 생각하는 교실에서 숙제는 어떻게 내야 할까

 

책을 낼 때만 해도 이 책이 이렇게까지 본인의 삶을 바꿀 줄 몰랐다고 하신다.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은 지 벌써 18년. 국내에선 이미 여기저기 많은 강의를 다니고 있었는데 (교육부나 지역 교육청 초청을 받아 선생님들을 위한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국제적인 교육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도 하고) "Building Thinking Classroom"이 발간되고 난 후에는 세계 전역으로 강의를 다니기 시작했다.  올해 통틀어 집에서 지낸 기간이 겨우 한 달 남짓이라고.  호주, 유럽, 아시아, 미국 등등. 이미 2023년 일정도 꽉 채워져 있으시다고 한다. (이런 분에게 미적분을 배웠다니.. 난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도 대학원생들을 가르치신다고 한다. 주로 석사와 박사과정 지도를 하신다고. 



캐나다 수학교육 - 이대로 괜찮은가?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10학년 아들을 둔 한국계 캐내디언으로서 궁금했던 점.  캐나다 고등학교 수학 과정이 점점 쉬워지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한국, 인도, 중국 아이들 한번 봐라. 우리 아들이 10학년 때 하는 수학을 그 아이들은 초6학년 때 하고 있다.) 


피터샘은 몇 가지를 짚어주셨다. 캐나다 아이들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상위권에 든다 (실제로 OECD 국가 중에서 15세의 수학, 과학, 리딩 레벨 데이터를 보니 놀랍게도 캐나다가 상위권이다. 2018년 데이터를 보면 6위인 한국 바로 밑이 캐나다와 대만(공동 7위)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캐나다의 educational equity (교육의 형평성 분포라고 해야 할까? 정확한 한국어 표현은 업계분들이 정정해 주시길.)  캐나다의 데이터를 보면 캐나다 국내의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 사이의 차이가 적다는 것이다. 캐나다, 핀란드,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그러하다. 이 말은 곧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 사이의 편차가 적다는 것인데 왠지 자랑스러워지는 대목이 아닌가?  


피터샘은 한 가지 더 짚어주셨다. 수학을 잘하는 나라(예를 들어 중국)의 아이들은 수학실력이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학생 스스로의 자신감은 떨어진다고.  너무 똑똑하고 잘하는데도 자신이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가슴 아픈 일이다. 


 


Say "yes" to everything.


선생님의 모토는 일단 다 '예스'해라.  얼마 전 피터 샘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의 커리어를 어떻게 계획하셨는지 궁금해요"  피터샘은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렇지. 운동선수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에서 교수까지.  저런 여정을 어떻게 계획해서 밟겠나. 


"내 모토는 일단 다 예스하고 다 해보는 거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잘 모르겠으면 일단 해보는 거지. 그러면 좋든 나쁘든 답이 나오고 뭔가를 배우게 돼. 그래서 내 모토는 "Say yes to everything"이야.  

그 다운 태도이다. 굳이 고민하기보다 일단 해보고 판단하는.  


피터샘을 만난 나는 행운아다. 나처럼 운이 억세게 좋은 학생들이 더 많이 생기고, 피터샘처럼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더 잘 배울까'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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