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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Dec 20. 2022

내 고등학교 수학샘을 대학교에서 다시 만나다.

국가대표 카누선수 - 수학+컴공학도 - 고등학교 선생님 - 대학교수

Mr. L이라는 이름(성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워서 앞글자만 따서 '미스터 엘')으로 불렸던, 피터 선생님은 나에게 잊지 못할 선생님이다.  미적분(Calculus)이 얼마나 재미있는 수리 놀이인지 가르쳐 주신 분이 피터 선생님이었다.  


캐나다의 고등학교는 보통 8학년부터 12학년까지 이다. (온타리오주는 13학년도 있다고 들었다.) 지역에 따라 엘레멘터리 스쿨 (초등학교), 미들스쿨 (중학교), 그리고 하이스쿨 (고등학교), 이렇게 더 세분화해서 학교를 다니는 곳도 있지만, 내가 살았던 이곳은 1학년부터 7학년까지 초등학교, 그리고 8학년부터 12학년까지가 고등학교다. 


피터 선생님께 12학년 물리와 미적분을 배웠다. 그 당시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이 말이다. "칠판에다 풀어봐"  희한하게도 칠판에 문제풀이를 시작하면 열에 아홉은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혹 그래도 안 풀리면 선생님이 멀리서 보고 계시다가 틀린 곳을 알려주시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피터 샘은 주로 교실에서 샌드위치를 드시고 계셨고 그 주위에 한두 명의 문제를 푸는 학생들이 있었다.  시험날 아파서 학교를 못 왔다거나 다른 이유로 시험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뒤늦게 시험을 치고 있을 때도 있었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 아이들, 또는 숙제가 어려워서 못 풀고 있는 아이들도 피터 샘 교실에서 문제를 풀곤 했다.  선생님의 모토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라".  그렇다고 상냥하고 다정한 스타일은 아었다.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다가가거나 스몰 토크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무뚝뚝하고 시크한 편인데도 피터 샘과 이야기를 할 때면 왠지 선생과 학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 시절 피터샘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돛단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돛단배에 탄 사람이 아무리 세게 입으로 돛에 바람을 불어도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뉴턴의 운동법칙 제 3조 -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예였다. 배에 탄 채 아무리 세게 입으로 바람을 불어도 내가 타고있는 배가 같은 힘으로 나를 밀고있기때문에 배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또는 워터파크의 "Freefall slide"(프리폴 슬라이드/미끄럼틀)가 왜 무서운지.  (몸이 중력에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서 미끄럼틀의 각도가 같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은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미끄럼틀 위에서 중력에 의해 추락하고 있다는... 너무 무섭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좋은 선생님들은 피터 샘뿐만이 아니었다. 교직이 천직이신 분들은 피터 샘 말고도 많았다. 더 따뜻하고 친절하신 선생들도 계셨다. (물론 어느 학교에나 있는 성격 나쁜 선생님도 계셨다. 신경이 예민하신 불어샘, 아이들 사이에서 사이코패스로 알려졌던 사회 선생님 등등. 사회 샘은 취미가 총질이셨다. 교실에 총알구멍이 난 토스트기를 전시해 두곤 하셨다.) 그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가르치는 실력이 뛰어나서 좋아했던 선생님은 피터 샘뿐이었다. 


그런 피터 선생님을 대학교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내 고등학교 동기들 중 내가 다닌 대학으로 진학한 아이들이 내가 알기로는 세명이 안되었다.)


"미스터 엘!  여기서 뭐하세요?"  


그 당시 (20년 전) 짧게 들은 이야기로는 가르치는 일을 잠시 쉬고 석사 공부를 시작하셨고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다고 하셨다. 이제는 선생님이 되려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나는 그때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이 너무 반가웠으나 그때는 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나는 곧 법대에 진학했고, 일을 시작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산수가 아닌 수학을 하기 시작했을 때, 피터 샘 생각이 나서 구글링을 해 봤다. 나의 모교에서 교수가 되신 선생님은 여전히 수학교육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계셨다. 그때부터 나의 숨은 덕질이 시작됬다. 선생님의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계속해서 누르고. 그러다 선생님이 수학교육에 관한 책을 내셨을 때는 나도 한 권 주문했다.  내가 하는 일과 1도 관련이 없지만,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밑바닥에서 보는 캐나다를 기획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 중 한 분이 피터 샘이었다.  전 국가대표 카누선수에서 수학을 전공한 청년으로, 그리고 고등학교 선생님에서 대학교수까지 되기까지, 그분의 인생이 너무 궁금했다. 거절을 각오하고 피터 샘께 이메일을 보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누구누구인데요,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캐내디언들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내가 거절을 두려워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그냥 부딪혀 보자, 아무리 되뇌어도 거절이 두려워서 이메일을 쓰는데만 2주가 걸렸다. 피터 샘이 답장을 주셨을 때 날아갈 것 같았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용기 있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은 2년 전에 출간하신 책 때문에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는 안부를 전하셨고, 12월에 딱 하루 시간이 나신다고 하셔서 나는 냉큼 오케이 했다. 


피터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피터 샘은 스웨덴에서 태어나서 8살 때 캐나다로 이민 왔다.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선생님의 부모님들은 어떤 분들이실까?  아버지는 건설 쪽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셨다.  전업주부라고는 하지만 자영업자의 피가 흐르는 분이셔서 집에서 온갖 비즈니스를 하셨다고 한다. 주부들이 많이 하는 네트워크 마케팅이었는데 주로 액세서리, 속옷, 등등을 소개하고 지인을 통해 판매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 크게 부모님들의 제제나 관리를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스웨덴 방식으로 자유롭게 풀어주셨고, 공부는 알아서 잘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유롭게 자랐다고 한다. 특별히 반항기를 거치지 않았고 부모님이 몇 시까지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곤 했다고.  지금은 3명의 성인 자녀를 두고 계신 선생님은 본인의 아이들도 자유롭게 키웠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편한 길만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 험한 길을 가더라도 자식이 넘어졌을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주는 것이 부모라며.  


대학에 진학한 후 본격적으로 운동(카누)을 시작했다. 학교팀도 아니고 지역팀에서 대학생의 나이로 운동에 매진한 것은 특이한 이력이다.  큰 키에, 넓은 어깨, 날카로운 파란 눈과 빨간 머리 - 첫눈에 북유럽의 혈통이 느껴지는 피터 샘.  카누나 조정, 이런 것에 최적화된 체격이긴 하다. 스웨덴 대표로도 활동하고 캐나다 대표로도 활동하면서, 6년 정도를 올림픽뿐만 아니라 갖가지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올림픽 메달은 없지만 국제대회 수상경력은 많으시다고 한다.) 


어쨌든 늦게 시작한 운동 때문에 학부 졸업이 계속해서 늦어졌고, 결국 8년에 걸쳐 수학과 컴공 복수전공으로 졸업을 했다.  당시 학부 시절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교원자격증 프로그램을 들어간다며 "너도 한번 해봐"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 신청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나쁘지 않은 플랜 B라고 생각했다고. 이 부분에서 좀 놀랐다. 가르치는 것이 천직이신 피터 샘이 선생님이 될 생각을 전혀 안 해보셨다니? 선생님께 물으니 이미 트레이닝캠프(합숙훈련쯤 될 듯)에서도 다른 팀원들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었으니, 본인이 깨닫지 못했을 뿐 교육 쪽으로 끌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래서 교원자격증을 따고, 실습을 나갔다.  (그 학교가 바로 내가 나온 고등학교다).  출근 1일 차, 이미 가르치는 일에 매료됐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가르치는 일임을 바로 깨달았다. 운 좋게 실습이 끝나고 같은 학교에서 자리가 났고,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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