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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Dec 13. 2022

오해해서 미안해, 마크 2

다 괜찮아. 부동산만 아니면.

커머셜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다. 


반년 정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업계획이 날아간 뒤, 며칠간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고 폐인 생활을 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31살의 나이. 곧 32살이 될 예정이었고, 돌을 지난 첫아들 곧 태어날 둘째.  이불속에서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종이 한 장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거나, 아니면 그럴만한 사람을 아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들을 써 내려갔다.  한 명 한 명 연락해서 점심 약속을 잡았다.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혹시 적당한 자리를 알고 있는지.  내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없는 돈에 밥까지 사가면서 부탁했다. 그중 한 명이 마크에게 말했다.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넌 부동산을 해야 돼. 그 일이 너한테 딱이라니까." 예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전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크는 조심스레 답했다.  "나는 세일즈는 정말 안 하고 싶어. 그리고 부동산은 진짜 안 맞을 거 같아."  동료는 연락처 하나를 건네주며 덧붙였다.  "내 생각엔 넌 그 일이 천직이야. 내 친구 맷한테 전화 한번 해봐. 좋은 사람이니까 일단 커머셜 부동산일에 대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 거야. 한번 연락해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반, 그리고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으로 맷이란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맷은 업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들려주었고, 다른 회사의 매니저 이름도 알려주면서 다른 곳에도 연락해보라고 했다.  맷이 알려준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연락을 받아주고 만나준 사람은 겨우 몇 명.  그중 새로운 인원을 뽑고 있거나, 뽑을 생각이 있는 곳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러던 중 한 회사에서 자리가 날 것 같다는 언질을 받았다. 먼저 추가 인원이 필요한 팀의 팀원들과 미팅을 했다.  팀을  이루어 일하는 커머셜 부동산의 특성상, 팀원들의 동의 없이 새 팀원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일단 한 명씩 만나서 자신이 또라이나 고문관이 아니라는 설득을 해야 했다.  그렇게 팀원들의 오케이를 받고 상업부동산 전문 회사 입사했다.  


입사 조건은 이러했다.  첫 4달, 즉 일을 배우는 4달 동안의 월급은 $1,200불.  첫 4달이 지나면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마 없다.  딜을 성공시켜 살아남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첫 4달이 지나고 일 년간 세일즈 타겟을 채우지 못하면 4달간 받았던 월급의 50%를 다시 갚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열심히 일한 덕에 다행히 첫해 타을 넘길 수 있었고 월급의 반을 토해내는 불상사는 피했다.


20년 전, 그렇게 커머셜 리얼터 일을 시작했다. 


마크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늘 "아,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죠? 내가 아는 사람인가?" 곧잘 묻곤 했다.  있는 집안 자식들이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았기에.  마크는 그럴 때마다 '아버지 성함은 알려드릴 수 있지만 아마 모르실 거예요',라고 넘기곤 했다.  일하면서 몇 명의 멘토들이자 친구들을 만났다.  그를 더 좋은 사람, 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만드는 친구들이다.  마크는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마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들을 만났다 한들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인연 또한 나에게 머물 수 있는 법이다.




최근에 알았지만 마크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마다 4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사무실로 출근한다. 판데믹의 영향으로 비대면 미팅이 많아졌고 예전만큼 운전을 많이 하지 않는다.  (걸어서 출퇴근이라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보면 웃긴 질문이다. 50분을 운전해서 출근하는 나 같은 사람이나, 40분을 걸어서 출근하는 마크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지만 더 빨리 갈 수 있는 거리를 일부러 더 천천히 간다는 점이 우리 같은 현대인들에게 사치로 다가오는 것 같다. 30분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차로 10분 만에 출근하면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40분을 걸어서 출근하면 느긋하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은 운동과 출근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더 효율적인데도 말이다.)


늘 건강했던 그가 건강 적신호를 느끼기 시작한 건 2년쯤 전이었다. 이제 두 아들 모두 성인이 되었고, 몇 년 전에 집도 새로 지었다. 변함없이 그를 사랑해주는 부인도 곁에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에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  집을 사고, 집을 새로 짓고, 새로운 투자에 뛰어들고, 좀 됐다 싶으면 꼭 큰 지출이 생기니까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 실패가 두려우니까 계속 달리는 거지.  그런데 이번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깨달은 건, 결국 인생에서 남는 건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 - 가족들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그들과 만드는 추억, 즉 내가 행동하고 경험하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어. 다른 건 아무 상관없어.  그래서 조금씩 쉬었다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해."


이제는 팀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입장이 된 마크는 팀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20년 만에 6주를 쉬기로 했다.  일과 관련된 이메일이나 전화는 팀원들에게 맡기고 그냥 쉬어볼 참이다.  금요일마다 팀원들과 즐기던 간단한 회식도 빠지기로 했다.  여행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와이프와 두 아들과 함께, 그저 빈둥대며 쉬어보겠다며, 환하게 웃는 그에게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한 권을 추천했다 ("A Beautiful Country by Qian Julie Wang" - 미국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중국인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마크가 중국에 관심이 많으니까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글쓰기 프로젝트를 응원해준 마크에게, 나 또한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6주간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자고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를.  그리고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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