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싫어하는 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그들이 보고 싶다.
내 친가와 외가는 극명히 다르다.
친가 쪽 친지들은 집안 경조사마다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성직자 집안의 후손다운 품위를 지킨다. 반면 외가 쪽 친지들은 다 술을 즐기고, 명절마다 제사와 고스톱이 함께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절에 방문한다.
외갓집 식구들은 대체적으로 술이 센 편인 것 같다. 지금은 조신하신 우리 엄마도 삘 받으면 알려진 주량의 두세 배는 될 것으로 예상한다. (왜 우리 앞에서는 늘 술이 약한 척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아빠는 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붉어지신다 (어릴 때 외삼촌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다). 실제로 아빠의 주량은 맥주 반 캔. 요즘은 그래도 많이 늘어서 맥주 한 캔이다. 감수성이 예민하시고 다정하신 우리 아빠는 주취상태를 그다지 즐기시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어릴 때 아빠가 이기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기독교 집안에 시집온 후 자기 가족들이 애주가라는 것이 부끄러워진 걸까? 아니면 그냥 오빠와 남동생의 술 취한 모습이 진절머리 났던 걸까. 나의 외삼촌들은 술을 먹는다고 해서 난폭해지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 그저 기분이 좋아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흔한 경상도 남자들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명절에 어른들의 고스톱과 술판이 벌어지면 한껏 신난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외삼촌들도 술을 많이 줄였다. 큰외삼촌은 췌장암으로 큰 고비를 넘기셨고, 작은 외삼촌도 식구들의 구박으로 술을 줄이셨다.
난 외갓집이 좋았다. 외갓집 사람들은 가난했으나 따뜻했고, 새벽마다 약수터를 갔고, 동네사람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눴다. 큰집은 사역이 있는 곳마다 옮겨 다녔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늘 품위와 권위를 유지했으나, 왠지 불편했다 (양쪽 집안에서 우리는 막내축에 들었다.) 더 웃긴 사실은 경제적으로 다들 살만한 친가에선 명절에 모이면 꼭 싸움이 일어났고, 가난한 외갓집에선 그 누구도 다투지 않았다.
내가 술을 한두 모금 마시기 시작할 즈음, 식구들은 모두 다 날더러 외탁을 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우리 언니는 친탁을 했다고. 한두 잔 술을 입에 대도 얼굴이 멀쩡한 나와 달리 (그렇다고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량으로 보았을 때 난 그냥 보통 한국인 정도다.) 우리 언니는 몇 모금만 마셔도 아빠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퇴근길에 막걸리를 조금 샀다. 같은 곳에서 공수한 막창구이와 함께 작은 컵에 따른 막걸리를 마신다.
마시면서 생각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퇴근 후 조용한 맥주 한잔 하기 힘든 이 시국에, 다들 어디서 위로를 얻나. 궁금해하며 생각한다.
술을 사랑하는 외갓집 식구들을. 따뜻한 그들을. 엄마가 싫어하는 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그들을.
*** 코시국이 한창이던 2021년 봄에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