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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12. 2023

베일리스를 넣은 커피와 즐기는 추리소설 The Maid

니타 프로즈의 더 메이드 The Maid - 강렬한 표지에 이끌려 사두고는 한참을 묵혀뒀다 읽었다.  일단 시작하니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딱히 미스터리물을 찾은 건 아니었다. 그냥 눈에 들어오길래 몇 장 읽어보고 땡기면 사고 아님 두고 와야지 생각했다.  첫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괜찮아서 계산대로 향했다.  서점에 가는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 저 책 들춰보고 뒤적거려 보고.  의도했던 책을 사기도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책을 사기도 하는 즐거움.  이 것이 바로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최애 미스터리 작가는 단연 Agatha Christie다. 

The Maid의 주인공은 웃기게도 Molly라는 아가씨.  (캐다나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 프랜차이즈를 가진 유명한 청소 서비스 업체 이름이 Molly Maid다.) 


몰리의 직업은 호텔 객실 메이드. 그녀는 이 직업이 천직이다.  어질러진 객실을 정리하고, 더러운 것을 닦아내고, 먼지는 진공청소기로 싸악 빨아들이고.  호텔의 방침에 따라 그녀는 손님들에게  "May I return your room to the state of perfection? (객실을 완벽한 상태로 되돌려드려도 될까요?)" 라며 정말 상투적인 인사를 하지만, 진심으로 보람을 느끼며 일한다. 워낙에 결벽증도 있고. 

책을 읽으며 배경으로 뉴욕의 페닌슐라호텔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이것만 봐도 특이한 사람이지만, 몰리는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해석하는 것, 또는 말의 행간을 읽는 것이 그녀에겐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지만, 몰리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에, 타인의 거짓도 보지 못한다.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거나, 타인의 말투에 들어있는 뉘앙스를 읽는 것 또한 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몰리는 그녀를 길러주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전수해 준 외할머니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머니의 죽음 후, 세상과 그녀 사이의 괴리를 연결해 줄 다리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할머니가 가르침을 나침반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호텔에서 부동산 거물이 사망하게 되고, 우리의 몰리는 위기에 빠진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지 않으면 소설이 아니지...) 


추리소설 치고 이렇게 덤덤하고 차분한 주인공이라니. 그녀는 결벽에 가깝게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지킨다. 물론 그 노력이 때와 상황에 맞지 않아 웃픈 결과를 자아낼 때가 많지만, 그녀는 사랑스럽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몰리에게서 엿보는 것이다. 할머니의 어록은 상당한데 (속담 같은 것들도 있고) 몇 개 추리자면 이러하다. 

We are all entitled to a bad day now and again. But when they are all bad days, with no pleasant ones, then it's time to reconsider things. 

누구나 가끔은 안 좋은 날이 있을 수 있어. 그렇지만 좋은 날은 없고 나쁜 날만 계속된다면 그때는 인생을 한번 되돌아봐야 해.
 Poor company is worse than none. 
나쁜 친구를 두는 건 친구가 없는 것보다 해롭다. 

그래,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니다.  꼭 읽어야 할 책도 아니다.  그저 심심풀이 삼아 영문소설 읽기를 도전하고 싶다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내용이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고 서사도 짧은 편이라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소설이다.  자폐인을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나니 책을 읽을 때 바로 캐치하지 못했던 여러 부분에 조금 더 이해도가 높아진 느낌이다.  또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작가의 경력이다. 니타 프로즈는 Simon & Schuster Canada라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에디터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작가가 된 케이스랄까. (부럽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손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어른들의 음료, 베일리스 커피.  정말 간단한데 맛나다. 따뜻한 물에 우유나 프림 조금, 가루커피 조금, 그리고 베일리스 조금이면 끝이다.  더 간단하게 만드려면 믹스커피에 베일리스만 조금 넣으면된다.  겨울엔 이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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