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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Mar 29. 2023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소설 "설이"

양아치 엄마를 각성하게 하는 소설 "설이"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한때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소설 "설이" - 심윤경


나는 내 아이가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어깨를 내주었는가.  내 아이도 나의 흔들리는 어깨 위에서 어지러움에 고통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심윤경작가의 소설 "설이"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영아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자란 설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이모'와 살게 된다.  '이모'라고 불리긴 하지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이모'는 설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혈연보다 진한, 필연으로 묶인 사이랄까. 이모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주고, 설이는 그 사랑을 의심 없이 받으며, 그렇게 둘은 그들만의 밸런스를 가지고 생활한다. 그렇게 계속 살아도 아무 문제없겠건만, 세상은 그렇게 두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영재인 설이는 어쩌다 보니 집안 좋고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우성 초등학교로 전학 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왠지 '스카이캐슬' 느낌?)  우성 초등학교에는 하루 24시간을 엄마와 각종 선생님들의 관리를 받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환경을 갖고 있지만, 멀미 나게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만약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면 나는 시현의 집에서 살 것이다.'라는 문장은 잠시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늘 들었던 지겨운 조건법 시험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If는 최고로 골칫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선생님께 단단히 가르쳐주었을까?

나는 그런 가시 돋친 조건문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왠지 마음이 아파왔다.  나 또한 이런 양아치 짓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네가 X를 하면 Y를 줄게" 내지는 "A가 갖고 싶으면 B를 해" 같은 것들.  셀 수도 없다.  X와  Y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강아지와 수학처럼.



엄마가 되기 전에 공부를 좀 할 걸 그랬다. 준비 없이 엄마가 된 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자녀에게 '외적 보상' (external reward)을 주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정확하게 왜인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모라면 시현의 그 힘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성깔 부릴 때 쭉 찢어지는 저 눈이야말로 시현의 제일 예쁜 점이라고, 저 화살 같은 눈으로 자기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간다고 얼토당토않게 갖다 붙이고 흐뭇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가 소망한 대로 시현은 화살이 되어 자기 길을 날아갔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것이 답이구나. 그것 하나만이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방법이구나. 그 게 가장 중요하구나.  믿어주자.  예뻐해 주자.  인정해 주자.  말도 안 되는 고집도 칭찬해 주자.  


내일이면 허물어질 결심이라도, 오늘은 일단 다짐해 본다.  '그래도 게임은 안돼'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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