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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Mar 02. 2023

가끔 꺼내어 안부를 묻고 싶은, 그때 그 시절 친구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이만큼 가까이'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코시국이었다.  출근, 퇴근, 주말, 또 출근.  삶이 이렇게까지 지루할 수 있나 생각하며 혼자 성질을 내다가, 그래도 이만하면 평탄한 거 아닌가, 감사를 모르는 나 자신을 책망하다가, 널뛰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화풀이 상대를 찾기도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좀 따뜻한 이야기에 갈증이 나던 시절이었다.  


#정세랑작가의 이만큼 가까이  - 내가 애정하는 서유미작가의 서평에 끌려 결제했다.  


한번 본 책을 웬만해서는 다시 읽지 않는데, 전자책을 읽고 굳이 종이책까지 사서 한 번 더 즐던 책이다.


서유미 작가의 서평처럼, 진정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아프기도 하고, 가슴이 찡한 부분도 있으나, 빵 터지는 유머도 있는, 재미나는 소설이다.  


주인공 '나',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들 - 송이, 주연, 수미, 민웅, 찬겸, 주연의 오빠, 수미의 동생, 민웅의 사촌 형들, 수미의 삼촌, 이웃 아티스트 언니네 부부,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의 배경은 파주이지만 굳이 파주가 아니더라 소도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약간은 시니컬한, 그리고 무감각한 톤으로 말을 이어가지만, 친구들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송이네 아버지를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심 감탄했다. 요괴 다섯과 사는 것치고 엄청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시네, 하고.  

소설 중에서 빵 터진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다.


패셔니스타 송이도 사랑스럽지만, 사람을 구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민웅이, 그리고 모두가 동생처럼 여기는 (그러나 자신이 모두의 오빠라고 생각하는) 개천용 찬겸이도, 언제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썼던 수미도, 독설가 주연도, 모두 사랑스럽다.  


내가 만든 캐릭터도 아닌데, 그저 마음 깊이 넣어두고 들여다보고 싶은 아이들이다. 안녕, 잘 지내니, 이렇게 가끔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그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잘 데리고 살고 있는데.  (내가 더 문제다).  


어딘가 나의 결핍을 건드린 건지, 아니면 친숙함을 건드린 건지, 그냥 정이 가는 그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주말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다면 서슴없이 추천한다.  (읽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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