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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26. 2023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 한다.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면의 욕구, 그런 것들이 글이 되어 남는 것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내 책장 속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책이었다. 한동안 읽었던 영어책에 피로감이 와서 한국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 믿고 보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뽑았다. 표지 안쪽에는 누군가가 쓴 내 이름이 있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 같은 책이에요"라는 메모가 있었다.  메모를 쓴 사람의 이름도, 날짜도 없이.  누가, 언제, 왜, 선물한 책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적어도 20년은 더 된 일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리뷰를 쓰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빠져드는 이야기였고, 단숨에 읽혔지만,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내가 겪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해방 이후의 우리나라, 38선 이전의, 그리고 이후의 한국.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책의 끝자락에 박완서작가님의 말이 와닿았다.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 한다는 그 말이.


잔인하지 않은 전쟁이 어딨겠냐마는 그중에서도 내전은 왜 특히 더 잔혹한 걸까. 반장이 인민반장이 되었다가 다시 반장이 되었다가, 이웃이 되었다가, 적이 되었다가, 다시 이웃이 되었다가. 이런 시대를 견딘다는 건 어떤 걸까.  그 시대의 분노와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직까지 한반도를 갈라놓고 있는 우리의 역사. 진정 용서란 없는 걸까.  MC 스나이퍼의 노래 가사처럼 "길바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상상조차 없던 시절. 가족과 한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있을지 가늠조차 없었던 시절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내가 무엇을 알겠나.


하지만  소설은 (약간은 자서전이기도 한 책이지만) 교훈을 찾는 곳이 아니니까. 이야기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처럼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는 그저 읽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감하지 못하더라고, 알고는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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