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 - 그 뜻을 어렴풋이 이렇게 생각했다. 일에 환장한 사람들.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또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일만 하는 사람들. 일이 생의 1순위인 사람들. 그런데 왜 "중독"이란 말을 쓸까. "알코올중독" "약물중독"처럼.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일 중독이 왜 일'중독'인지. 일 중독 또한 주취상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루 12 - 14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하루 24시간 중 출퇴근으로 길에 버리는 시간 2 시간, 자는 시간 7시간. 씻고 닦고 화장하고 지우는 시간 1.5 시간. 나머지 시간은 일로 채워져 있다. 딱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다.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자꾸만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에, 적어도 일을 하고 있을 때만은 이런 기분이 무뎌지기에, 차라리 일에 파묻히는 것을 택한다. 그저 무감각해지기 위해서.
산더미같이 쌓인 일거리를 하나하나 해치운다. 밥도 건너뛰고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의 일거리가 있다. 주어진 업무들을 해치우다가 밤이 늦으면 퇴근길에 오른다. 식구들이 이미 잠든 집에 도착하면 나도 쓰러져 잔다. 아침에는 식구들이 이미 나가고 없는 빈 집에서 늦장을 부리며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하면 자리에 앉자마자 또 기계처럼 일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일이 많아 피곤하다며, 매일 야근이라 힘들다며, 가족들에게 불평하지만, 나는 안다. 비워져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정신이 깨어있는 시간 중 '일'을 덜어내면, 남는 시간 동안 나를 느껴야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볼 때마다 왠지 죄책감이 드는 내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내 가족 간의 관계는 이대로 괜찮은가. 차라리 '너무 바빠서' 그냥 내버려 두는 거라면, 좀 낫지 않은가. 그렇기에 책임지는 것이 죽도록 싫지만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오면 기꺼이 받는 것이다.
일 중독은 결코 일이 좋아서 워커홀릭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 손쉽게 만질 수 있는 마취제가 '일'일 뿐. 잊고 싶은 고통이 있다는 증거다.
주위에 일중독 동료가 있다면,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일을 많이 해, 왜 저렇게 집에 안 가, 싶겠지만, 정작 궁금히 여겨야 할 것은 그가 과연 무엇을 잊고자 하는가이다. 일이라는 마취제가 매일 필요할 만큼 잊고 싶은 고통이 무엇인가. 그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