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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17. 2023

경영자 코치가 뭐 하는 사람이야?

 스스로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아라.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수요일 아침 - 한 주의 중간.  역시나 다운된 기분으로 일어났다. 코치와 약속을 잡았던 지난 주만 해도 뭔가 에너지가 솟아나고 기분이 좋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지난밤 배우자와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고 많은 말이 오가진 않았으나 앙금이 남아있었다.


코치를 만나게 된 건, 지인 M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처음 이야기를 들은 건 작년 즈음.  작년 가을,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M과 식사를 하던 중,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J 이름을 꺼냈다.  상담 같은 거 절대 안 하게 생긴 M이 누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그것도 돈을 주고? 그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약간 놀랐다.


"J라는 사람이 있는데, 너도 한번 만나보면 좋을 텐데. 원하면 연락처를 줄게."


- 뭐 하는 사람인데?


"Executive Coach(경영자 코치, 또는 임원 코치)야.  온라인으로 찾아보면 절대 안 나오는 사람이니까 찾아봐도 소용없어. 나도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사람이 만나보라고 해서 한번 가봤는데, 인생이 바뀐 느낌이야. 십 년만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임원 코치가 뭔데?  무슨, 상담사인가? 카운슬러 같은? 무슨 공부했대?"  


"상담사 아니고, 고객들은 주로 성공한 사업가, 임원들, 전문직, 이런 사람들이야.  일도 그렇지만, 고객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등등. 전반적으로 도움이 많이 돼.  너도 한번 만나봐. 연락처 줄까?" 


- 아 그렇구나. 음... 글쎄.. 난 어디 회장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고, 경영자도 아닌데?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가는 데면 난 안되지 않을까?  난 그 정도는 아닌데...  근데 혹시 무슨 종교 같은 건 아니지? ㅋㅋ


그냥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하고 작년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지난주, 몇 달 만에 M을 다시 만나 식사를 하며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었다. "나 요즘 너무 혼란스러워서 한국에서 역술인까지 보고 왔잖아. 번아웃이 심하게 온 거 같기도 하고... 네가 전에 얘기했던 그 사람 한번 만나볼까 하는데 그 사람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  


M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J를 제발 딱 한 번만 만나보라고. (너무 열정적으로 추천해서 다시 한번 의심했다. 혹시 이상한 종교는 아니겠지? 모르는 사이 M이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도 많고 연륜도 쌓인 M이기에, 그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걸 곧 깨달았다.  M은 경영자 코치도 상담사처럼 서로 합이 맞아야 하는 거라며, 만나보고 안 맞으면 안 보면 그만이라며, 일단 한 번은 만나보라고 날 설득했다.  자신이 이미 내 이야기를 많이 해서 J는 내가 누군지 벌써 알고 있다고.  M은 자신 또한 나처럼 일 중독과 번아웃을 겪었고, 지금은 훨씬 더 행복해져 가고 있다며 나에게 기대감을 주었다.  


그 점심식사 후, 약간의 흥분상태에서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J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J와 간단한 이메일을 주고받고, 통화를 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후로 약속을 잡았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J는 푸근한 얼굴은 아니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60대의 자그마한 백인 여자였다.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변호사도 서비스업이니까)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인사 후, J가 말했다.


"자, 이제 니 이야기를 들려줘."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열세네 살 때 한국에서 와서, 학부는 여기서 나왔고, 약간 쉬다가 법대를 갔어.  

"법대 가기 전에 쉬는 동안 뭐 했어?"

- 한국 가서 일했는데, 좀 힘들었어. 거기는 보증금이라는 게 있어야 방을 구할 수 있거든... 돈 모아서 방 얻고 한국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어. (그리고 보증금과 전세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 후에 법대 가서 공부했어. 


"법대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밝아지는데?"

- 법대 시절이 너무 즐거웠어. 공부도 너무 재미있었고, 평생을 갈 친구들도 거기서 만났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다음엔?"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변호사들이 원래 떠드는 걸 좋아한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을 뿐). 그러다 내가 졸업 후 로펌 시절을 거치고, 일찍 개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J가 나를 멈췄다.


"잠깐.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니?"

-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그때는 상황에 떠밀려서 했던 결정이야. 상황이 달랐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애가 너무 어렸고, 먼 거리로 출퇴근을 할 수 없었고, 어쩌다 발을 들인 가정법은 정말 하기 싫었거든. 어쩔 수 없었어.


"자, 한번 생각해 봐.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런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만 기차에 태워서 시골로 피난을 보냈지. 부모도 없이. 꼬마애들은 다들 어디 놀러 가는 줄 알고 기차에 탔지.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다른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겠지. 그렇지만 런던은 사방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있었고 아이들이라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도 그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지.  너는 어린 아들이 있었고, 부양해야 할 가정도 있었고, 일 말고도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잖아.  너는 네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고, 오로지 너의 노력으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거야.


네 스스로 너의 노력과 성취를 폄하해서는 안돼. 그건 그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 개업을 하고 너는 자유와 컨트롤을 얻었으니까.  스스로에게 진실을 제대로 말해줘야 해."



그렇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툭하면 어린이집을 못 갔고 아이를 대신 봐줄 조부모나 친척도 우리는 없었다. 난 일이 하고 싶었는데, 몸 담았던 로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나와 맞지 않았다. 개업이 그때 나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나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내 선택을 칭찬하지 않았다. 일찍 개업해서 자리를 잡은 나를 동기들이 부러워해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 뇌는 쉽게 착오에 빠진다. 내가 나의 선택을 인정하고 칭찬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도 시시해 보인다. 내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잘 저질렀다고, 인정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택을 위해 내가 흘린 피와 땀도, 그것의 결과물도, 빛나지 않는다.  


코치의 도움을 받아 나는 스스로에게 '나의 스토리'를 다시 들려줬다.  일찌감치 홀로서기를 시작한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일했고, 하나하나 더 깊게 팠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진심을 주었고, 그랬기에 더 이루었다고.


J는 나에게 몇 가지 숙제를 주었다.  미팅이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가자마자 당장 실행가능한 것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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