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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20. 2023

진상고객을 보내야 하는 이유

내 직원들은 내가 지킨다.

경영자코치 J를 처음 만난 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코치는 나에게 몇 가지 숙제를 주었다. 번아웃 타파를 향한 첫 발걸음 - 그중 하나가 바로 '진상고객 없애기'였다.


진상고객은 어느 업종에나 존재하기에 변호사라고 예외가 있을 리 없지만, 대놓고 갑질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  고객과 변호사는 파트너가 되어서 고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똘똘 뭉쳐야 하는데, 서로 존중하지 않으면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변호사 입장에선 안 받으면 그만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널린 게 변호사니까. 최근 몇 년간 기억에 남을 만큼 무례한 고객들은 없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잊을만하면 3-4년에 한 번씩 나타나서 일을 부탁하는 그분은 진상보다는 괴짜에 가까운 고객이다. 다르게 말하면 "High-maintenance Client"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가는 타입).  굳이 이 분을 잘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코치가 내게 중요한 부분을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받지 말아야 할 고객을 받으면 그 고통은 직원들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 부분에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분은 우리 전화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으면서, 자기 할 말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같은 얘기를 되풀이한다. 내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요청한 일에 바로바로 답을 해줘야만 만족한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서류더미를 맡기고 가고, 또 갑자기 나타나서 전에 줬던 서류를 복사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메일 연락도 거부한다. 나는 직원들의 고충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직접적으로 그 고객을 상대할 일이 많지 않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직원들을 지키는 것도 내 일인 것을. 그들이 효율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내 책임이다.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그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이번 일은 맡기 어렵겠다고 잘 말씀드렸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솔직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 말고도 변호사는 널렸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사과했다. 당신들이 힘들었던 걸 모른척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더 잘 지켜주겠다고. 천사같은 직원들은 '사과할 필요 없어, 일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건데 뭐' 쿨하게 받아주었다. (난 배우자 없이는 살아도 직원들 없이는 못 살거 같다.)


한 달쯤 후에 코치가 내게 물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 고객이 아쉬웠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냐고.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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