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Feb 28. 2023

고문관과 에이스의 차이

그저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뿐. 당신은 어딘가에서는 에이스다.

작년 일이다.  1인 2역, 3역을 해오던 직원들에게 슬슬 미안함이 커져가던 참에 직원을 한 명 더 뽑기로 했다.  유능한 게 죄도 아닌데 점점 늘어나는 업무를 묵묵히 맡아온 그들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나야 내 비즈니스이니 뼈를 갈아 넣는 게 당연하지만, 직원들이 무슨 죄인가. 원래 월급 받는 일은 좀 느슨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야근이나 주말근무가 있는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근무시간 내내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구인과정을 거쳐 내 마음에 드는 신입을 뽑았다. 처음 면접을 잡으려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 배달 알바를 뛰고 있다는 이십 대 초반 여성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물정 전혀 모르는 베이비는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무릇 사람이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돈을 벌어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배우는 법이다.)


햄버거집에서 패티를 구웠대도, 마트에서 캐쉬대를 찍었대도, 플러스 요인이다. 어차피 말단직이라 대단한 경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얌전히 학교 졸업하고 알바경력이 전무한 사람은 믿고 거른다. 산전수전 다 겪고 맨 땅에 헤딩하며 살아온 사람의 선입견이랄까?


결론적으로 나의 판단은 대실패였다.  신입은 성격이 좋고 다른 직원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착한 아이였지만, 업무 숙지 능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사수가 붙어서 한 가지를 가르치면 한번, 두 번, 세 번 알려줘도 실수를 하는 식이었다. 보다 못한 내가 불러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다시 시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일을 줄이려고 뽑은 신입 때문에 직원들의 일은 더 늘어났다.  3개월이 지나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보내줄 수밖에.  


그녀를 보낼 때 말했듯이 사실 이 사태의 책임은 나에게 있지 그녀가 아니다.  3개월 동안 우리도 힘들었지만,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집중과 정확을 요구하는 로펌이 아니라, 공감과 친절이 필요한 고객들을 대하는 서비스업종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이다. 동그라미 도형을 세모꼴 구멍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한 셈이다.


나의 오판으로 벌어진 일에 자칫 그녀가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아직 무엇이든 덤벼볼 수 있는 20대 초반. 이것저것 해봐야 자신이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이 경험을 절대 실패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꼰대들의 그냥 그런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물론 나는 그 만할 때에 조금도 느긋하지 못했다.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자존감을 무너뜨려가며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기 바빴다. 그저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뿐인데 여기서 안되면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안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에이스가 될 수 있는 곳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뿐.


그녀에게 행운을 빈다. 그녀가 에이스가 될 곳을 어서 찾을 수 있기를. 혹 시간이 걸린다 해도 결국에는 꼭 찾게 되기를. (당분간 나는 인사권 박탈이다. 또 다른 사회초년생에게 고난을 안겨주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월요일은 피곤한데 또 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