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관과 에이스의 차이
그저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뿐. 당신은 어딘가에서는 에이스다.
작년 일이다. 1인 2역, 3역을 해오던 직원들에게 슬슬 미안함이 커져가던 참에 직원을 한 명 더 뽑기로 했다. 유능한 게 죄도 아닌데 점점 늘어나는 업무를 묵묵히 맡아온 그들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나야 내 비즈니스이니 뼈를 갈아 넣는 게 당연하지만, 직원들이 무슨 죄인가. 원래 월급 받는 일은 좀 느슨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야근이나 주말근무가 있는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근무시간 내내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구인과정을 거쳐 내 마음에 드는 신입을 뽑았다. 처음 면접을 잡으려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 배달 알바를 뛰고 있다는 이십 대 초반 여성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물정 전혀 모르는 베이비는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무릇 사람이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돈을 벌어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배우는 법이다.)
햄버거집에서 패티를 구웠대도, 마트에서 캐쉬대를 찍었대도, 플러스 요인이다. 어차피 말단직이라 대단한 경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얌전히 학교 졸업하고 알바경력이 전무한 사람은 믿고 거른다. 산전수전 다 겪고 맨 땅에 헤딩하며 살아온 사람의 선입견이랄까?
결론적으로 나의 판단은 대실패였다. 신입은 성격이 좋고 다른 직원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착한 아이였지만, 업무 숙지 능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사수가 붙어서 한 가지를 가르치면 한번, 두 번, 세 번 알려줘도 실수를 하는 식이었다. 보다 못한 내가 불러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다시 시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일을 줄이려고 뽑은 신입 때문에 직원들의 일은 더 늘어났다. 3개월이 지나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보내줄 수밖에.
그녀를 보낼 때 말했듯이 사실 이 사태의 책임은 나에게 있지 그녀가 아니다. 3개월 동안 우리도 힘들었지만,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집중과 정확을 요구하는 로펌이 아니라, 공감과 친절이 필요한 고객들을 대하는 서비스업종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이다. 동그라미 도형을 세모꼴 구멍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한 셈이다.
나의 오판으로 벌어진 일에 자칫 그녀가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아직 무엇이든 덤벼볼 수 있는 20대 초반. 이것저것 해봐야 자신이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이 경험을 절대 실패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꼰대들의 그냥 그런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물론 나는 그 만할 때에 조금도 느긋하지 못했다.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자존감을 무너뜨려가며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기 바빴다. 그저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뿐인데 여기서 안되면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안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에이스가 될 수 있는 곳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뿐.
그녀에게 행운을 빈다. 그녀가 에이스가 될 곳을 어서 찾을 수 있기를. 혹 시간이 걸린다 해도 결국에는 꼭 찾게 되기를. (당분간 나는 인사권 박탈이다. 또 다른 사회초년생에게 고난을 안겨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