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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Apr 24. 2023

단톡방에서 벌어진 한일전

진실과 화합의 첫단계는 진실.

 

A:. "이거 좀 봐봐.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이게 뭔데?"


정신없는 출근길, A에게서 Whatsapp (카톡 같은 어플) 메시지가 왔다. A가 전달해 온 문제의 메시지는 최근 일본과 한국에 다녀온 일본계 캐내디언 친구 B가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였다. (단톡방 알림이 꺼져있어  전후사정을 몰랐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B가 요즘 드라마 '파친코'에 빠져있다며 단톡방 친구들에게 추천했다.  (8명 정도의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 찐친 법대 동기들의 단톡방이었다.)  한국 이민자 2세인 A는 '파친코'같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드라마는 (마음이 아파서) 보기 힘들다 답했고, 어려워도 이런 매체물을 봐야 한다는 B의 주장이 피력되었다. 그러면서 B가 올린 메시지가 이러했다...


"힘들어도 '파친코' 같은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한국여행에서 방문한 유적지 대부분이 일본에 의해 파손되었다가 복구된 것들이었어. 씁쓸하더라...(캐나다와 선주민들*처럼) 한국과 일본도 Truth and Reconciliation**이 필요해. 우리는 역사를 대면하고,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선주민 - 예전에 '인디언' 또는 '원주민'으로 불려졌던 캐나다의 First Nations people을 뜻한다. 선주민, 즉 캐나다의 땅에 가장 먼저 뿌리내린 자들을 뜻한다.

**Truth and Reconciliation - 진실과 화해 - 캐나다 선주민 탄압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시행된 캐나다 법안 이름이다. 진상 규명과 화합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B의 메시지가 몹시 불편했던 A가 나에게 개인톡을 보낸 것이었다.  


대화를 살펴보니 B의 의도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일본의 악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B이기에 나쁜 의도의 메시지가 전혀 아니란 것도.  그런데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민 2세 한국계 캐내디언인 A와  이민 1.5세인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새삼스레 드라마로 배울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외국인, 특히 일본인에게서, 역사를 배우기 위해 드라마를 보라는 이야기를 듣는 건 말도 안 된다.  

받아들이라고? 장난하냐? 진실과 화해의 첫걸음은 '진실'이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동안 저지른 수많은 범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첫 단계인데 그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라니? 심지어 새로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과?  


마치 강간 피해자에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수 없으니 이만 받아들이고 니 인생 살아'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 단톡방에는 우리의 답이 올라갔고 B는 즉시 사과했다 (한국인들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며). 일본은 그들과는 판이 행보를 걸어온 독일에게서 많이 배워야 한다며.


한국사람들에게는 신기할지 모르지만, 이민 1.5세인 나에게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2세 A에게도, 한일문제는 민감하다.  우리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심어준 무언가가 우리 안에 존재하기에. 애국심이라 하기엔 정통성이 없고, 민족애라 하기에는 정체성이 부족한, 이름하기 힘든 그 어떤 것이 우리 안에 있기에.  


(우리도 이러할진대, 한국에 발 붙이고 사는 분들은 오죽할까. 오늘 아침 고국의 어이없는 뉴스를 접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어쩌면 내 방황도 이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캐나다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거나  뿌리내리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쿰쿰한 거름 냄새나는 기름진 토양으로 옮겨갈 때까지, 대충 괜찮은 척, 잘 살고 있는 척, 겉뿌리만 내리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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