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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Feb 17. 2023

새벽 4시. 변호사의 악몽.

억울하다 억울해

한동안 꾸지 않던 악몽이다. 


몇 년 만에 참석한 네트워킹 모임이 문제였을까?  알코올 한 방울 없이 다소 기름진 저녁식사를 한 게 문제였을까?  그 기름기를 씻어 내리려 자기 전에 마신 발렌타인 한잔이 문제였을까? 


고객이 가져온 계약서 검토를 마치고 고객에게 전화해 백그라운드 정보를 좀 더 수집하고 있던 중이었다.  비지니스 매매를 먼저 제시한 쪽이 누구인지,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상대방에게 요청한 것인지, 아니면 저쪽에서 먼저 준비해서 가져왔는지, 매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늦어도 언제까지 매매가 완료되어야 하는지, 기타 등등. 


도대체 이런 건 왜 물어보냐며 짜증이 가득 담긴 고객의 목소리에 순간 나도 기분이 확 상하던 참이었다. 내 불쾌함을 표출하려던 그 순간, 얼마큼의 감정을 담아서 전달해야 프로페셔널하지만 무례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잠이 깼다.  


아.... 젠장.... 또 꿈에서 일했다... 그것도 열심히. 꿈에서 검토한 계약서 내용이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꿈속에서 대화를 나눈 고객은 실제 고객이지만 (매너 있고 나에게 늘 고마워하는 분이다) 꿈에서 내가 한 일은 현재 맡은 업무와는 무관하다.  


최악이다. 종일 일하고 꿈에서까지 일을 하다니. 정체 모를 살인자에게 쫓기는 꿈보다 더 흉한 악몽이다.  


네크워킹 식사 중, 변호사협회에서 일하는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친구는 협회에서 나쁜 변호사들 징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징계청문회도 온라인 '관람'이 가능하다며 시간이 되면 한번 보라고.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Only if it's billable" (청구 가능한 시간이라면). 


농담으로 던지긴 했지만 (동석한 변호사들은 다 웃었다) 나처럼 Private Practice (정부기관이나 협회 같은 공기업이 아닌 로펌)에 종사하는 변호사들의 시계에는 단 두 가지의 업무시간이 존재한다: 고객에게 청구 가능한 시간 (billable time)과 청구 불가한 시간 (non-billable time).  한마디로 돈이 되는 시간과 돈이 안 되는 시간의 구분이다.  그러나 non-billable time이라고 해도 완전히 버리는 시간일 수는 없다. 생리현상을 위한 시간, 동료들과 시답잖은 수다를 떠는 시간, 갖가지 관리/행정 업무를 제외하면, 오늘의 non-billable work는 언젠가는 돈이 될 일에 대한 투자다.  


최근에 읽었던 올리버 버크만의 4,000 주에서 그런 대목이 있긴 했다. 변호사들의 문제점 중 하나가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거라고.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변호사의 시간은 시간당 $$$로 값이 매겨져 있고 6분 단위로 계산된다.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한데 쓰다 보니 위로가 된다. 노예근성?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스트레스? 죽기야 하겠나.  브런치에 글이라도 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일하는 꿈을 꿀까?  댓글을 기대하며 출근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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