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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인터뷰 | 필요하지 않아서 안 사는 거 같아요

담백한 소비 습관, 그리고 물건의 유일성에 대하여

나의 물건을 소개합니다



- 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한 물건 : 노트북
대학 입학할 때 부모님이 사주신 건데 대학생 때도, 시험 공부할 때도 지금 일할 때도 여전히 잘 쓰고 있는 물건입니다. 몇 번 고장 나긴 했어도 조금씩 고치면서 벌써 10년째 쓰고 있답니다. 회사에서 좋은 노트북 빌려 쓸 수 있는데 많이 느리긴 해도 그만큼 오래 써서 그런지 전 제 노트북 쓰는 게 편하더라고요


- 평소 제일 많이 사용하는 물건 : 휴대폰

정말 정말 많이 사용해요. 영상도 보고 노래도 듣고 어디 놀러갈 때 검색도 하고 은행업무도 보고.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요즘 너무 쓸데없는 가십들을 보면서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한 것 같아 멀리해야할 물건이기도 해요.


-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 : 편지들

대학생 때부터 받은 편지들을 모아놓았어요. 오글거려서 다시 꺼내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절대 버릴 수 없을 것 같아요.


-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릴게요.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29세 미혼 여성입니다.

- 굉장히 ‘나는 솔로’ 같은 자기소개네요. (웃음)


- 지금이라는 닉네임은 뜻이 뭐죠?

제가 별명이 별로 없는데 가장 무난한 별명인 것 같아서 고르게 됐어요.

제 이름이 예나라서 예나 지금이나,에서 따온 별명입니다.


지금이의 물건들 | 편지, 휴대폰, 노트북


- 가져오신 물건들이 단정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얼리가 재밌을 것 같아서 가져올까 하다가 인위적으로 고르기보다 진짜 제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가져왔어요. 저는 흔히 예쁜 쓰레기라고 하는 물건들을 잘 안 사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그걸 버릴 때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어가지고. 웬만하면 그런 걸 안 사고, 물건을 산다고 해도 최대한 제가 버리지 않을 물건을 사요.


- 보유한 물건처럼 지금이님 자체도 단정하고 담백한 사람인가요?

차분하다는 얘기는 많이 듣는 것 같아요.



Part1.     편지



- 첫 번째 물건인 편지로 넘어가 볼게요.

사전에 편지에 대해서 작성해주신 걸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어요. 저도 편지를 보관은 하고 있지만 절대 꺼내보지 않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왜 꺼내보지 않게 될까요?

이 편지를 써준 사람이 이제는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 사람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과 이제 내가 엄청 멀어졌구나. 이때는 진짜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했었는데. 그런 게 좀 떠올라서 잘 안 읽게 되는 것 같아요.



- 절대 꺼내보지 않는데 버릴 수는 없는 그 마음은 뭔가요?

그래도 나를 위해서 써준 편지잖아요. 어떤 목적이었든 마음이 담겨 있는 거니까. 내가 버리면 다시 구할 수가 없으니까 못 버리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거죠, 유일성. 유일성이 있으니까요.






- 편지를 평소에 자주 쓰는 편인가요?

저는 편지 쓰는 걸 되게 어려워해서 누군가 나한테 편지를 써준다는 게, 그리고 그 편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 보통 어떤 식으로 편지를 쓰세요?

편지는 보통 축하할 때 많이 쓰니까 '무엇을 축하하는지',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이런 마음을 담아서 관련된 내용을 쭉 쓰는데, 길게는 잘 못 쓰고 짧게 쓰는 편인 것 같아요.


글도 그렇지만 편지도 마무리하는 게 가장 어렵더라구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축하해'하고 어색하게 마무리 짓죠.






- 저도 편지를 잘 다시 못 읽어요. 예전이랑 너무 성질이 다른 것 같아서요. 서로의 관계도 성질이 다르고, 나 자체도 그때랑 다른 사람이고.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니까. 편지에 강하게 의미를 줄수록 오히려 쓰기가 힘들어지더라구요. 가볍게 자주 적어나가는 게 방법일지도 모르겠네요.

편지를 그렇게 나서서 쓰는 편은 아니다 보니 뭔가 써야 할 기회가 있으면 썼는데,
요즘은 또 그런 기회도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 편지라는 게 지속되기가 어렵긴 하죠. 요즘은 손 안에 메신저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손편지가 더 귀하기도 하구요.

돌이켜보니 편지를 쓴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 다시 읽어보니까 어떤가요?

제가 기억 못하는 그런 추억들이 많아서 신기한 거 같아요.

그 때는 알았을 텐데 그 때는 기억했을 텐데. 재밌네요.

내가 편지를 보냈다는 기억조차 없는데 이런 답장을 받았었구나. 

제가 왜 이 언니랑 밥을 같이 먹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 친해졌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자료집을 보았는데 그때 아마 처음 네 글을 본 것 같아.' 

제가 글을 실었나 봐요. 기억이 전혀 안 나요. 내가 왜, 무슨 글을 실은거지?


-너무 오래된 기억이니까요그래도 사건은 잊혀도 감정은 기억에 오래 남는 거 같아요.

편지 중 인상깊은 구절이 있나요?

이 편지에서 ‘네가 있어서 서울 생활이 덜 외로웠던거 같애.’라는 구절이 인상깊네요.

저도 이제 편지를 다시 써야겠어요.


20대 초반의 풋풋하고 발랄한 편지들


- 그러게요. 편지는 잘 열어보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 울림을 줄 수 있는 물건인 것 같아요.



Part 2. 휴대폰


- 다음으로 넘어가볼게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으로 휴대폰을 골라주셨는데,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 중에 나한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뭔가요?

휴대폰으로 하는데 가치 있는 일이라면 연락이요 !

누구랑 계속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연락이니까. 

아무리 친구랑 오래 통화를 하고 카톡을 한다고 해도, 그건 시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 그러면 '낭비'라고 생각이 들었던 건 무엇인가요?

쇼츠나 가십들이 올라오는 거를 막 볼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안 좋은 사건 사고들을 접할 때가 많은데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들고. 댓글 같은 경우도 평소에 사람과 사람이 대면했을 때는 그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데 댓글은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자기 감정을 그냥 막 표출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똑같이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좀 멀리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여름휴가 때 핸드폰을 많이 쓰다 보니까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핸드폰을 너무 오래 사용하다 보면 부정적인 도구가 되기도 하죠. 

그럼 낭비되는 시간을 무엇으로 대체하고 싶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뉴스 기사를 본다든지, 아니면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좀 도움되는 영상들 있잖아요. 저는 항상 나중에 볼 동영상 체크를 해보고 넘어가거든요. 정작 가십이나 올리브형 추천탭 같은 건 바로바로 보고 (웃음)


- 그 지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뭔가 긍정적이고 건강한 것은 늘 유보하게 돼요.

바로 바로 보는 건 쾌락적인, 순간의 자극을 채워주는 도파민적인 것들 뿐이죠. 

그쵸, 그런 거는 자주 보기도하고, 시간이 길어도 그냥 보게 돼요. 유튜브 예능들.


- 그러니까요. 너무 각잡고 '긍정적인 건 제대로 봐야 돼.'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못 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냥 편하게 그런 것도 대충 그냥 귀로만 듣고 흘려도 될 거 같아요.

맞아요. 어차피 그 시간에 쓸데 없는 걸 보느니 이걸 대충 보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으로 보면 될텐데요.


- 어쩄든 시간은 흘러가니까.




- 지금이님은 비생산적인 시간이나 중독에 대해서 스스로 자아 성찰을 하고 고쳐나가는 편이신가요?

자아 성찰은 하지만 고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쇼츠같은 걸 안 보려고 어플을 지웠다가도 다시 깔아서.. 고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새벽에 핸드폰 하느라 못 자고 그러지는 않나요?

그러진 않아요. 그냥 저는 잠이 되게 소중한 사람이고 자는 게 좋아서, 이걸 하느라 잠을 안 자진 않아요.


- 아침에 깨고 바로 직후에 핸드폰을 하잖아요. 적어도 잠에서 깼을 때 1시간이라도 전자기기를 안 하는 게 하루를 좀 바꾸는, 깨뜨리는 수단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좋네요. 참고해야겠어요.







- 핸드폰을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이 사용한다고 느끼시나요?

아뇨,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사용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은 핸드폰이죠.


-혹시 핸드폰 사용 시간 보통 어느 정도 쓰시나요?

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봐볼까요? 사용시간.


- 이거 뭡니까 9시간 38분. 이거는 거의 자는 시간 빼고 핸드폰만 했다는 거에요.

네이버 앱? 네이버 왜 이렇게 많죠? 아 네이버로 쇼핑을 많이 해요.

고민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푸딩을 사야 하면 가장 합리적인 푸딩을 찾는 거죠. 재밌긴 한데, 그걸 한 3시간 보면은 아무거나 사면 되는데 시간이 더 아깝다는 느낌이 들어요.

휴가를 만끽중인 지금이의 핸드폰 사용 시간

-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나요?

스무 번을 보면은 한 번 정도. 그 마음 한켠에는 세일 하니까 뭐 하나라도 살 게 있나 하는 거고, 사실 살 건 없죠. 이런 아이쇼핑도 지양하고 싶어요.


- 너무 한번에 다 지양하려 하지 말고, 쇼츠나 도파민 컨텐츠 안 보는 것부터 실천해봅시다.

살펴보니까 과하게 사용하는 어플은 두 세개밖에 없으셨어요. 한 군데에서 엄청 몰입을 하시는 편이지, 아직 뇌가 휴대폰으로 쪼개지진 않았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노력해볼게요 (웃음)



part 3.    노트북


노트북을 10년 사용하셨다고 해서 놀랐어요. 

오래 사용한 만큼 노트북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대학생 때부터 필기를 항상 노트북으로 했어요. 사실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거나 그러진 않거든요. 영상은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보고, 노트북으로는 항상 사무 위주로 글을 쓰거나 과제를 하는 편이어서 파워포인트를 하거나 한글을 쓰거나 그랬던 거 같아요. 이걸로 서치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기기마다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이 되네요. 핸드폰은 사실 화면 크기가 정말 작잖아요. 그럼에도 거의 모든 업무를 핸드폰으로 하는 편인가요?

네 저는 은행업무도 그렇고, 문서작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걸 핸드폰으로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노트북 수명이 길게 유지되었나봐요.

이걸 가지고 영화를 본다거나 그러지 않아요. 소음과 발열이 되게 심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진짜 문서 작업 정도만 하거든요. 사실 직장에서 노트북을 빌려줘요, 장기로 빌릴 수가 있어요. 보면 그램도 있고 삼성도 있고 되게 좋은 노트북들이 많이 있거든요. 빌려와서 사용해도 되는데 내가 이게 있는데 굳이 빌릴 필요가 있나 싶어가지고 그냥 안 빌리고 이걸로 고쳐 사용하고 있어요.

- 약간 애착일까요? 남이 빌려주는 그 기기보다는 내 애착이 가는 노트북을 써야겠다 하는

그냥 이게 편해서. 물론 별로 시간이 안 걸리긴 하지만 설치하고 세팅하는 과정들도 귀찮고.


그리고 어쨌든 제 물건이 아니고 다른 사람 물건이니까 잃어버리거나 고장 낼까봐 이런 부담도 있구요. 또 노트북은 어쨌든 기록이 남잖아요. 내 생활의 기록이 남을 수도 있으니 그런 여러 가지 고려사항 때문에 그냥 내 노트북을 사용하는 게 편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고장 나기 전까지는 아마 이걸 쓸 것 같아요.


- 인터뷰 초반에도 말씀해 주셨다시피 물건을 평소에도 잘 관리해서 오래 사용하시는 편인데
혹시 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면?

물건을 오래 쓰다 보면 이렇게 까지거나 부서지거나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런 거를 못 견디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거를 그냥 잘 눈 감는 것 같아요. 

까지거나 부서진 부분들을 잘 눈 감는 것 같아요.

- 멋지다.

저도 못참을 때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그냥 무시하는 거 같아요.


- 저는 기기가 노후화되는 건 괜찮은데, 기능이 노후화되는 건 못참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어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거나, 카메라가 엄청 흐려진다거나. 노트북도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뜨거나 해서 스트레스 받으신 적은 없었나요?

있어요(웃음). 블루스크린 많이 떴고, 메모리 보드인가 그것도 한번 교체하고. 화면도 한번 깨져가지고 교체하고. 그래서 이걸 고치느라 거의 한 50만원 썼을 거에요. 근데 제가 이 노트북으로 그렇게 특별하게 그래픽 작업을 한다거나 그러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문서 작업을 하기에는 큰 문제 없거든요.


그냥 충분히 사용할 수 있으니까. 굳이 내가 비싼 돈 들여서 노트북을 새로 사야 할 만큼 나한테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오래 쓰는 것 같아요. 핸드폰도 사실 아이폰이 사진이 잘 찍히고 그렇잖아요. 근데 저는 그 정도의 사진 퀄리티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냥 저한테 가장 편한 제품을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다음 핸드폰은 아이폰으로 사야지'는 있는데 고장나기 전까지는 이걸 쓸 것 같아요.


기기들이 꽤 비싸잖아요. 핸드폰도 노트북도 100만 원 주고 산 건데.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100만 원 정도 되는 게 몇 개 없는데. 생각해보면 비싼데, 사람들이 핸드폰을 되게 자주 바꾸잖아요. 저는 그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고 그렇게 좋은 사진 퀄리티를 바라지도 않는데, 그걸 위해서 핸드폰을 바꾼다는 게.


충전 단자를 꽂지 않으면 켜지지 않는 지금이의 노트북


- 물건 욕심이 없으시네요.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소비를 하지 않는 편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또 한편으로 후줄근해 보이는 건 싫어서 티셔츠가 목이 늘어나가지고 쭈글쭈글해졌다면 그거는 과감히 버리는 편이에요.


그럼 물건을 구매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구매하시나요?

필요에 의해서 사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하얀색 티셔츠가 있어요. 그러면 또 하얀색 티셔츠를 사지 않아요. 아무리 예뻐도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 약간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운?

미니멀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좀(웃음). 제 기준에는 옷이 많아요.


- 지향하는 건 미니멀리즘인 거네요. 맥시멀리즘보다는?

그쵸, 예를 들어서 어떤 용도의 물건이 딱 하나만 있으면 돼요. 모자도 저는 캡모자도 딱 하나 있어요. 

뭔가 물건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


- 왜 싫어요?

예를 들어서 캡모자가 하나 있으면 그거를 항상 내가 캡모자가 필요할 때 그거 하나만 쓰잖아요. 근데 캡모자가 예를 들어 3개 있어요. 그러면 어떤 A라는 캡모자는 안 쓸 수도 있잖아요. 안 쓰고 그냥 방치해 둘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게 너무 싫은 거죠. 약간 죄책감이 들어요.


- 그 물건에 대한 죄책감?

그 물건한테 미안하기보다는 이 지구와 환경에. 제가 이걸 안 쓰는데 굳이 사버린 것이.


또, 무난한 거는 되게 자주 쓰잖아요. 아무 때나. 저는 가지고 있는 캡모자가 검정색 나이키 캡모자거든요. 여름에도 쓸 수 있는 골프 캡모자인데 그건 진짜 아무 때나 써도 되잖아요. 여름에 써도 되고 그냥 진짜 잠깐 집 앞에 나가있을 때 써도 되고, 운동할 때 써도 되고. 근데 자주색의, 아니면 파란색 모자는 옷 색깔도 맞춰야 되고 그냥 아무 데다가 쓰면 좀 너무 튀고 안 예쁘잖아요. 


그래서 그냥 무난한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 청바지도 그러면 그냥 '진청, 중청, 연청.' 이렇게 하나씩만 구비해 놓는 편이신가요?

예를 들어서 제가 하늘색 연청이 있어요.  근데 아이스 연청도 예쁜 것 같아요. 

그럴 땐 '내가 하늘색 연청이 있는데 굳이 아이스 연청을 사야 될까?' 하는거죠. 

만약 하늘색 연청이 없었으면 아이스 연청을 샀겠지만 있으니까 안 사는 거죠. 

제 청바지가 색깔별로 있기는 해요. 진청도 있고, 연청도 있고, 중청도 있고, 흑청도 있고 다 있죠. 

그렇다고 흑청이 있는데 또 흑청을 사지는 않아요.


저는 특이한 것을 좋아해서 개성 있는 옷을 많이 사는 편인데요. 방금 지금이님의 말을 들으면서 돌이켜보게 됐어요. 보편적인 물건 하나로 다 대체할 수 있는데 그걸 너무 많은 물건들로 이어붙이려고 했구나. 사실은 그걸 모두 커버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만 있어도 되는건데 말이죠.

맞아요.


- 혹시 물건을 자주 안 사는 이유들 중에 이동이 잦거나 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나요?

아 맞아요! 제가 옛날에 대학생 때는 학기마다 이사를 했어야 했어요.

기숙사에 살았는데 방을 1년마다 바꿨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쓰레기를 진짜 몇 봉지씩 쓰레기를 버리게 되는 거예요.

'내가 진짜 이 좁은 데 살면서 이렇게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번 버리다 보니까 

그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내가 어딘가로 이동을 했을 때 그때는 또 필요 없는 물건이 될 수 있잖아요. 

수납장을 샀는데 여기에는 수납장이 필요 없을 수 있으니까 웬만하면 안 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가 안 사고 계속 버티고 있는 물건이 뭐냐 하면 전자레인지.


- 전자레인지요?

네, 다들 놀라더라구요. 전자레인지 막 그렇게 비싸지도 않잖아요. 

마음 먹으면 좋은 것도 15만 원이면 사는데 이 짐을 늘리기가 싫어요.


웃긴 게 저는 배달 음식도 잘 안 시켜 먹는데 그래도 가끔은 피자를 데워 먹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 프라이팬에 앞뒤로 구우면 괜찮아요.

그러니까 어찌저찌 하면 막 안 되지는 않아요. 


- 노력을 더 들일 수 있는 걸로 대체가 되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그런 것 같아요. 필요하지 않아서 안 사는 거 같아요.


- 물건도 써줘야 이 결을 유지하더라고요. 안 써주고 방치하면 이 물건이 아닌 게 돼버려요.

 맞아요. 그런 것도 있어요. 물건을 많이 사면 어느 순간 일부는 안 쓰게 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효용성을 잃어요.


- 결국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미니멀함이 유지가 되는 것도 있죠.

미니멀하게 소비했어도 관리를 그렇게 못하면 또 새 걸 사게 되니까요.
완전한 소비 대체로 이어지려면 하나의 물건을 잘 관리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걸 참 잘 하고 계신 거 같아요.

맞아요. 그냥 어찌저찌 잘 고쳐쓰고 포기하지 않는 거죠.


- 선택해 오신 물건들이 실용적이에요.

노트북이랑 휴대폰은 되게 디지털스러운데, 편지는 되게 아날로그해서 

대척점에 있는 물건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지금이님은 어느 쪽 인간에 가깝나요?

저는 아날로그형 인간이죠.

왜냐면 그 아날로그가 편해요. 근데 제가 말하는 아날로그가 뭐냐면 기존에 우리가 접했던 시기까지의 디지털을 계속 쓰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chat gpt가 요즘 엄청 한창 유행이었잖아요. 

그걸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는데 안 쓰는 거죠. 

근데 직장동료가 "이거 좋아요" 하고 링크를 보내준 거예요.

chat gpt 그거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그냥 질문하면 대답을 해주잖아요. 써보니까 너무 편한 거에요.
그냥 내가 링크 한 번 들어가서 쓰면 됐던 건데 그거를 안 해왔던 거죠.


이걸 아날로그로 하기에는 좀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냥 기존에 해왔던 방식이 편한 것 같아요.

새로운 걸 잘 안 받아들이는 거죠.


- 약간 흥선대원군 스타일인가요?

네네. 지금 저희 부모님 세대가 꼭 키오스크를 어려워하듯이 저도 인공지능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 쇄국정책?

그쵸.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겠다. (웃음)

여기까지. 여기까지. 내게 신문물은 여기까지.


- 그러면 이 노트북을 얼마나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한 2년은 쓰지 않을까요?


- 만약 고장이 나서 아예 안 켜져요. 그럼 다음 모델은 어떤 걸로 바꾸고 싶으세요?

그럼 저는 가벼운 거를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성능보다는 들고 다니기 가벼운 것. 저는 큰 사이즈가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작아도 잘 되는 거. 근데 아마 제 생각에는 안 사고 그냥 직장에서 빌려서 쓸 것 같긴 해요.


- 정말 미니멀리즘 그 자체.

왜냐하면 굳이 내가 노트북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데 이거를 내가 사가지고 내 짐을 늘리지는 않을 거 같아요.


딱 본인한테 필요한 물건이 뭔지 알고 있는 느낌이라 좋네요. 

기준이 명확하다 보니 구매할 물건의 범위가 줄어드는 거죠.

네, 전 어쨌든 합리적인 걸 살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고 사람들이 지금이님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나요?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뿐만은 아닐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생활하는 방식에 대해서 

되게 고정된 생각이 되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이렇게 안 살아?" 약간 이런 게.


근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냥 그 정도의 생각만 했으면 좋겠어요.


* 본 프로젝트는 (사)유쾌한반란 챠챠챠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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