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김선미 소설

by 아나스

비스킷

김선미, 위즈덤하우스, 2023년 9월 18일 발행

2026년 1월에 밀리의 서재에서 읽음


요즘 인기 있는 청소년 소설을 읽어보려고 찾다가 밀리의 서재 '청소년 소설' 카테고리에서 눈에 들어온 [비스킷]이라는 소설을 골랐다. 책 표지의 일러스트가 일단 눈길을 끌었고 "100% 청소년의 선택"이라는 마케팅 문구에 홀린 듯이 집에 들었다.


소설 속 '비스킷'은,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들, 즉 구운 과자인 비스킷처럼 쉽게 부서지는 성향을 지닌, 잘 쪼개지고, 만만하게 조각나며,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지는, 자신만의 세상에 고립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리와 관련한 세 개의 청각 질환(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 소리 강박증)을 갖고 있는 주인공 '제성'은 특유의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게 흐려져가는 '비스킷'들을 발견한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친구로 지내던 덕환과 유아 시절 비스킷이었다 제성과 덕환에게 발견되어 친구가 된 효진까지, 셋이 한 팀을 이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스킷들을 발견해 내고 돕고 있다.


'존재감'이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부서지기 쉬운 '비스킷'이라는 판타지적 존재에 빗댄 설정이 기발하면서도 설득된다. 자기만의 세계가 화고한 주인공 '제성'의 시점에서 일관되게 펼쳐지는 서술도 쉽게 읽힌다. 따뜻하고 각자의 개성을 갖춘 덕환, 효진, 그리고 마침내 비스킷을 극복해 내는 조제까지, 제성 친구들의 캐릭터도 살아 움직인다. 제성의 엄마와 이모, 제성을 돕는 여사님 등은 현실에 이런 어른이 있나 싶게 그 자체가 좀 판타지스럽고 제성의 아빠와 윗집 아동학대범, 보노보 등의 빌런은 좀 평면적으로 그려졌지만, 이야기의 메인 줄기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


제대로 '청소년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은 책을 읽어본 건 처음인데, 대놓고 희망적인 결론과 긍정적인 톤이 살짝 오글거리기도 하는데, 그게 청소년 소설, 혹은 청소년 판타지 소설의 맛인 것도 같다. 청소년 소설에 호기심이 인다.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큰 줄거리는 제성과 친구들이 제성 이모의 윗집에 사는, 아동 학대 속에 방치되다 비스킷이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어린아이(희은)를 구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차례차례 제성의 주변 인물들(부모, 이모, 덕환, 효진, 창성이형, 조제와 그 가족)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제성이 병원을 탈출해 친구들과 윗집 아이를 마침내 구해내는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후에 메인 줄거리에서 활약할 빌런들이 소개되는 앞단이 조금 지루해질 즈음, 비스킷이자 '제성'의 마음에 불쑥 들어온 윗집 '조제'를 만나면서부터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진다.


각 장 별로 요약하자면,


- 프롤로그: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가는 '비스킷'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주인공 '제성'이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목적이 소개된다.


1 학원의 시끄러움:

정신과 병원에서 가까스로 퇴원한 제성은 영어 학원에서 시끄럽게 구는 보노보 일당에 복수하고, 비스킷 1단계 상태로 흐려져가는 '도주'를 발견한다. 제성 부모, 효진과 덕환, 그들의 아지트 등 이야기의 메인 설정들이 차례차례 소개되고, 뒤에 등장할 빌런인 '희은 부'가 효진네 스터디 카페의 진상 손님으로 등장해 복선을 깐다.


2 이사의 시끄러움:

부모가 여행 간 사이 혼자 자야 하는 제성은 새로 이사 온 윗집에서 나는 엄청난 층간 소음에 괴로워한다. 한 편 학원에서 만난 비스킷 '도주'를 만나 비스킷이 된 이유(채식주의를 하다 학교폭력에 시달림)를 알게 된다. 한편 효진이의 사촌인 창성이 형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비스킷'에 관심을 갖는다.


3 층간의 시끄러움:

제성은 덕환, 효진과 함께 비스킷이 되어가는 도주를 구할 방법을 의논한다. 한편 윗집에서 유발하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던 제성은 천장을 쳐 윗집에 항의해 보지만, 윗집 아줌마는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 아빠에게 강력하게 항의한다.


4 오토바이의 시끄러움 :

제성과 덕환은 도주에게 환경 보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참가를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도주도 점점 색을 찾는다. 첫 번째 비스킷 구출. 한편, 학원에서 시끄럽게 굴던 보노보 일당의 오토바이에 유치 찬란 스티커 범벅을 해 복수를 한 제성은 그들을 피해 달아나다 한 고급 주택 단지의 집으로 숨어든다. 공사 중이던 집 마당에서 '조제'를 만난다. 알고 보니 조제는 윗집의 둘째다.


5 놀이터의 시끄러움:

제성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막내 동생을 돌보고 있던 조제를 발견한다. 조제와의 대화 속에서 조제의 존재감이 흐려지던 원인이 부모와 가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윗집에서 층간 소음을 유발하던 것이 철없이 뛰어다니는 막내와 음대 입시로 정신없는 첫째 사이에서 소외된 것. 한편 '비스킷'에 관심을 갖던 창성이 형이 찾아와 윗집 막내를 울렸는데, 윗집 부모의 항의를 받은 아빠가 제성을 이모네 집으로 귀양 보내 버린다.


6 마음의 시끄러움:

이모네 집에 머물던 제성은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어떤 남자가 아이에게 죽어버리라는 악담을 퍼붓는 소리를. 제성과 이모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이미 흐려진 아이를 경찰은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이미 비스킷 3단계.


7 방문의 시끄러움:

제성은 효진, 덕환, 조제와 팀을 이뤄 비스킷을 구출을 시도한다. 3층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던 효진이 떨어진다.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출발한다.


8 병원의 시끄러움:

제성은 아빠에 의해 강제 입원한다. 제성은 병원에서도 비스킷을 발견한다. 다른 간호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박간호사'. 제성은 비스킷이 된 박간호사와 비스킷이었던 적이 있는 청소 여사님을 이용해 병원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9 탈출의 시끄러움 :

여사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제성은 병원 저녁식사 시간을 이용해 탈출을 감행한다. 비스킷의 존재와 제성이 비스킷을 알아본다는 걸 믿어주는 여사님과 박간호사. 병원장에게 들키는 장면에서는 쫄깃한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병원을 빠져나온 제성은 여사님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비스킷을 볼 수 있게 되고 비스킷을 구하는 행위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어지는 조제와의 대화에서 조제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작가님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리는 듯했다.)


10 구출의 시끄러움:

덕환, 효진, 조제까지 합세해 대망의 윗집 아이 구출작전을 펼친다.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고, 아이들은 마침내 아이를 구해낸다. 마침 쫓아온 창성이 형이 아이를 구하는 순간을 유튜브에 담고 그렇게 세상에 '비스킷'의 존재가 알려진다.


에필로그:

'비스킷'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제성은 더 이상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유명세까지. 그리고 아이들이 구해낸 '희원'이라는 아이의 색이 점점 짙어진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구절들을 옮겨와 본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비스킷의 단계는 수시로 변한다.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가 재건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을 단단히 지켜 나가며 아예 비스킷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 프롤로그 중


주택 공사를 하면 정원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비스킷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든 꽃을 심었다. 아프겠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소멸하면 잊힐 거라는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 비스킷이 어떤 아이인지 좀 더 알고 싶어졌다. - 조제와의 만남에서


엄마가 그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다. 내가 좋은 아들이 아니니 엄마도 굳이 좋은 부모는 안 되어도 되는데. 엄마가 좋은 부모가 되어 버리면 나도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할 테니 부담스러운데. 그냥 나는 엄마가 엄마여서 좋은데.


"비스킷은 마음의 한 부분이 계속 짓밟혀서 존재감을 읽은 거야. 네가 시든 꽃을 땅에 다시 심듯이 우리도 비스킷을 세상에 제대로 발 딛게 해 주고 싶은 것뿐이야." (중략) 비스킷과 시든 꽃. 그리고 소외된 것들. 어쩌면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계속 지켜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존재감 없이 지내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지켜 내는 게 훨씬 중요한 핵심이다.


"내 생각엔 말이다. 네가 처음 비스킷을 보게 된 건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 아마 널 믿어 주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속상했겠지. 어린 마음에 너 자신도 비스킷이 될지 모른다고 두려웠을 테고. 복수는 네가 비스킷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을 거야." 자신을 믿지 못하는 소외된 빛깔의 비스킷과 나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 자신을 보듯 비스킷을 보아 온 거라는 의미. 그건 소리에 얽매여 비스킷을 보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 여사님과 제성의 대화


"조금 전에 깨달았는데 내 존재감은 사회나 학교나 갖고을 통해 생겨나는 게 아니더라. 난 비스킷을 찾아내는 걸로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들었어." (중략) "존재감이 사라지는 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 네가 사라져도 내가 찾아낼 거야. 찾아내서 너희 부모님께 네가 존중받을 만한 살마이라는 걸, 네 깊은 관심으로 부모님은 비스킷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 드릴 거야." (중략) 조제의 마음이 내지르는 아우성이 아파서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듣는 걸 제일 잘하니까 ㅈ라하는 것으로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 제성과 조제의 대화


세상은 비스킷의 존재를 인정할지에 관한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눈으로 보았어도 믿을 수 없는 존재. 보이지 않아도 좌시해선 안 되는 존재. 그 존재들이 모두 인간이고, 우리의 이웃이라는 걸 잊은 듯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략) 비스킷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주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소외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존감을 잃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용기마저 잃고 만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자신을 지켜 낼 힘을 잃으면서 단계를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 힘껏 노력하지만, 꾹꾹 눌러 담았던 쓸쓸한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왈칵 쏟아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모습이 희미하게 깜빡거린다. 그때 필요한 건 어디로 나아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득함을 바라보고 손잡아 줄 수 있는 누군가다.






매거진의 이전글"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