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디 할머니", 박완서 소설집

by 아나스

쥬디 할머니

박완서 지음, 문학동네, 2026년 1월 20일 발생

2026년 3월에 읽음


김기태 작가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고 나니 그보다 더 명쾌하게 2020년대의 세태를 그려낸 소설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아예 색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 졌고, 마침 밀리의 서재에 올라온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집을 꺼내 들었다.


[쥬디 할머니]는 기존에 출판된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 중 열 편의 작품을 골라 새로 엮은 소설집이다. 시간여행하듯 1970, 80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시대는 달라도 생생히 살아있는 캐릭터들 덕분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재미와 공감대를 자아낸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게 된 낯선 표현과 단어들을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특히 다채롭게 그려진 노인 캐릭터들을 만나며 인간의 다양한 삶에 수긍하게 되거나([쥬디 할먼니],[애 보기가 쉽다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으며 축적된 응어리에서 마침내 해방되는 중년의 여인들([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부처님 근처])다시 찾은 가족과 결국엔 다시 이산(離散)할 수밖에 없는 중년의 남자([재이산])에게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한 때 나와 같은 처지라고 여겼던 연인이나 이웃이 사실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임을 발견([도둑맞은 가난],[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하고는 세상은 원래 이렇게 치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완서 작가는 주부로 살다가 40세에 [나목]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40대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40여 년을 계속해서 써와서인지 중년이나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 최근 인기 있는 소설들은 2,30대의 삶, 특히 싱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참 많은데 다양한 연령대 특히 중년 이상의, 다양한 형태로 주름진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지금 시대에 읽기에 오히려 신선했다. 유일하게 20대 주인공인 소설이 [도둑맞은 가난]이었는데, 이것도 정말 밑줄 그은 단락들이 너무 많았을 정도로 좋게 읽었다.


책을 읽으며 메모해 둔 내용, 밑줄 그은 대목들을 옮겨 본다.


박완서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차차 더 읽어보고 싶다.



쥬디 할머니

손녀 쥬디를 비롯해 교수, 의사 등등 잘나가는 자식들을 둔 쥬디 할머니의 삶이 사실은 어이없을 정도로 가짜로 이루어진 것임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웃 여자가 쥬디 할머니에 대해 느끼는 질투의 감정 묘사가 제대로다.

그러나 할머니의 생활은 조금씩 속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조금씩 조심스럽게 일정한 생활 밖의 어떤 지점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상하도록 흥분해서 슈퍼마켓 사층을 갈팡질팡하다가 갑자기 몽유병에 깨어난 것처럼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 몰라 우두망찰을 할 적이 자주 있었다.
그래, 난 다시 새로운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애 보기가 쉽다고?

가장 재미(Fun)있게 읽은 작품.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맹범씨 캐릭터가 상황이 쌓이고 쌓이면서 만개하는데 희열마저 느껴진다.

맹범씨는 마나님의 말을 되받지 않았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종류의 단조로운 입씨름이란 태엽이 풀릴 때까지 작동하는 기계처럼 입아귀가 아플 때까지 마냥 계속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마치 시험지를 내놓자마자 떠오른 정답처럼 깔깔대던 조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의미는 떠오르면서 날카롭게 그의 자존심을 관통했다.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화자는 공항에서, 예전에 미군부대 PX에서 일하며 알았던 인상적인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녀' 캐릭터가 생생하다.

그러나 듣는 쪽은 출국을 앞둔 금쪽같은 시간에 그따위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게 몹시 못마땅한 듯 산만하고 떫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시골 학교 입학식 날의 학부형들처럼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한마디도 안 놓칠 듯 긴장하고 있었고, 무작정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고, 한없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 여자의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다움 때문에 입은 옷도, 거느리고 있는 아이들도 다 그 여자와의 얼토당토않아 보였다. 그 여자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그런 얼토당토않음 때문에 늘 둘레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지만 나는 그 여자가 그 얼토당토않은 것에 얼마나 맹목적인 정열을 바치면서 살아왔나를 알고 있었다.
이윽고 문구멍으로 뜸들이는 냄새가 솔솔솔 들어오는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정신은 여전히 가물가물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 별안간 뱃속에서 뭔가가 불끈 들고 일어나는 거야. 그래가지고 꼭 성난 짐승같이 요동을 치는데 당최 걷잡을 수 있어야지. 나종 생각하니 그놈의 짐승이 아마 목숨이었나봐. 나는 그때까지도 사람 마음하고 사람 목숨하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마음 따로, 목숨 따로야. 그래서 어머니가 해들여온 밥을 미친년처럼 퍼먹었는데 세상에, 세상에 안 먹고 죽기는커녕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게 맛있더라니까. 정작 죽을 뻔한 건 그때 너무 먹어 관격을 해서였으니.......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여자'였던 할미들에 대한 단상.

그들은 하나같이 욕되도록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파라든가 할머니라든가 하는 중성적인 호칭이 안 어울리는 강렬한 여자다움을 못 버렸었다.



재이산(再離散)

가족에게 버림받고 헤어진 주인공이 다시 가족들을 만나게 되지만, 다시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작은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분주하고 화려한 시간에 비하면 그의 시간은 어마나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것일까. 목소리가 그의 시간 사정을 한 번도 묻지 않은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시간이란 보다 값진 시간을 위해 언제나 대기 태세로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질서의식이 그를 매우 다소곳하게 했다.
이산가족 찾기가 시작되고 나서 그는 비로소 그가 왜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견딘 오랜 고독과 신산과 궁핍이 휘황한 라이트를 받으면서 온 세상의 심금을 울림으로써 그의 보잘것없는 생애가 순간적이나마 위대성을 획득할 수 있기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도 그 빛나는 순간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는 애써 그 혀 꼬부라진 소리를 귓전에서 밀어내려는 건지도 몰랐다.



해산바가지

감정적으로 가장 와닿은 작품. 돌봄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

서로 깊이 좋아하면서도 일부러 만날 기회를 만들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도 푸근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며칠만 목소리를 못들어도 궁금증이 나서 전화질이라도 해야 배기는 친구도 있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나중 경우에 속하는 친구 목소리를 못 들은 지가 일주일은 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좀이 쑤셔서 일손을 놓고 허겁지겁 전화통에 매달렸다.
자식욕이 강한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어머니도 꼬치꼬치 따지길 좋아했고, 꼬치꼬치 따질 대상이 집안일과 자식들 일밖에 없는지라 당하는 자식들은 피곤할밖에 없었다. 그래 그런지 친정머너미가 지닌 일종의 지적인 분위기가 빠진 어수룩한 시어머니에게 나는 단박 호감을 느꼈다. 편하게 시집살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실한 예감이 왔다.
이런 정서적인 불균형을 은폐하고, 아이들 앞에서나 이웃이나 친척 보기에 여전히 좋은 며느리처럼 보이려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못쓰게 돼갔고 때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망가져가는 걸 즐기기도 했다. 저 늙은이가 저렇게 며느리를 못살게 굴다가 필시 며느리를 앞세우고 말걸. 두고 보라지. 이렇게 악담을 함으로써 복수의 쾌감 같은 걸 느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비밀스러운 속마음일 뿐 겉으론 음전한 효부 노릇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어느 틈에 신경안정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구원의 가망이 조금도 안 보이는 지옥을 살면서도 아이들이나 친척과 이웃들에겐 여전히 무던히도 참을성 있는 효부로 보이길 바랐다. 내가 양다리를 걸친 두 세계 사이의 심한 격차로 미구에 자신이 분열되고 말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나의 이중성에 악착같이 집착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처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자신의 분열밖에 없다는 자포자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남의 일처럼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골속에 아니 온몸에 가득찬 건 증오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꾸나꾸 증오를 불어넣고 있었다. 마치 터뜨릴 작정하고 고무풍선을 불듯이. 자신이 고무풍선이 된 것처럼 파멸 직전의 고통과 절정의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별안간 아찔하면서 옴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런 중에도 나는 냉혹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래도 나를 효부라고 할 테냐고 묻고 싶었다.
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나는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었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사이비 기도원 같은 데 맡겨 있지도 않은 마귀를 내쫓게 하는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무 속상할 때는 아이들이나 이웃 사람의 눈치볼 것 없이 큰소리로 분풀이를 했고 목욕시키거나 옷 갈아입힐 때는 아프지 않을 만큼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너무했다 뉘우쳐지면 즉각 애정 표시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위선을 떨지 않고 마음껏 못된 며느리 노릇을 할 수 있고부터 신경 안정제가 필요 없게 됐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작품.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미의 세상.

창환이 잃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뭔 줄 아세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증조모님 제사도 안 중요해진 것 중의 하나일 뿐이지, 다는 아녜요. 그런 변화엔 저 스스로도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드르이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것에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젊어졌다는 소리도, 좋아졌다는 소리도 꼭 욕같이 들려요. 그렇다고 늙어 보인다거나 야위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아녜요. 그런 소리 들으면 내가 하루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 걸 들킨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젊어졌다 좋아졌다, 아니면 어디 아팠느냐, 못쓰게 됐다는 식으로 남의 신체를 가지고 들먹이는 인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제가 말예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다 있을까요? (중략) 저는 드디어 울음이 복받치는 대로 저를 내맡겼죠. 제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참고 있었을 줄 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중략) 전 그 울음을 통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러고 나서 요 며칠 동안은 울고 싶을 때 우는 낙으로 살고 있죠. 그러느라고 증조모님 제삿날도 깜박했을 거예요.
생떼같은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소멸했어요. 그 바람에 전 졸지에 장한 어머니가 됐구요.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었을까요, 네, 형님?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 걸까요?


부처님 근처

어린 시절 겪은 처절한 '죽음'의 잔상을 극복하는 이야기.

싱싱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움증조차도 처녀적 같은 싱싱함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
나는 늘 두 죽음을 억울하고 원통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조차 바뀌어갔다. 정말로 억울한 것은 죽은 그들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 나이에,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가장 반짝거리고 향기로운 시기에 그런 것을, 그 끔찍한 것을 보았다니, 그리고 그것을 소리도 없이 사켜야 했다니! 정말이지 정말이지 억울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것이다.
이런 나의 실패는 나의 능력 부족의 탓도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내가 사는 시대의 비위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 죽음이 내가 작품화할 수 있을 만큼, 즉 여유 있게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물러나주지 않고 너무 나에게 바싹 다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체험은 시간과 함께 뒤로 물러나 원경遠景이 됨으로써 말초적인 것이 생략되는 대신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내가 겪은 두 죽음은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거의 피부적인 촉감으로 나에게 밀착돼 있어 도저히 관조할 수 있는 거리로 뿌리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럽고도 서러운 업일까. 어머니를 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오오, 죽은 사람, 참 이렇게 고운 사상死相도 있겠구나! 이 평화로움, 이 천진함, 나는 별안간 세차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아, 이제 다신 어머니에게 엄살일랑 떨지 말아야겠다. 어머니의 고운 죽음을 위해서. 나는 처음으로 털끝만큼의 혐오감도 없이 한 죽음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

'가난'의 경험을 훈장처럼 훔쳐가려는 그들. 가난이든 뭐든, 모든 경험을 이미지화해서 전시하는 요즘 세태에도 들어맞는, 여전히 현대적인 소설.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겨울 아침의 산동네 골목골목은 살아 있는 것처럼 힘차게 꿈틀거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여름 아침의 억센 푸성귀처럼 청청한 생기에 넘쳐 있다. 가난을 정면으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런 특이한 발랄함을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치를 떨며 경멸했던가. 배알도 없는 것들이 천덕스럽고 극성스럽기만 하다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을 꼬여서 같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흡사 찌개 속의 멸치처럼 눈을 동자 없이 하얗게 뒤집어 깐 추한 주검과, 냄새나는 가난을 나에게 떠맡기고.
어제의 그것들은 서로 일사불란 나의 가난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분해되어 추한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내 방에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 집안의 몰락의 과정을 통해 부자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를 알고 있는 터였다. 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 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꿈에도 못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나는 쓰레깃더미에 쓰레기를 더하듯이 내 방 속에, 무의미한 황폐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고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인간의 위선과 허위에 대한 이야기.

이혼으로 남편의 아내 노릇, 두 아이의 어머니 노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면 심한 무서움증을 느꼈다. 그것 말고 내 쓸모는 무엇일까? 나는 아주 수습할 수 없이 암담해지면서 설희 엄마를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여자들끼리의 진정한 의미의 성의 있는 위로가 무엇인가를. 그것은 오직 자기보다 좀더 불행한 경우를 목격하게 하는 것뿐이다.
간첩이 된 혈연과는 상봉이 몰고 올 사건과의 당면이 두려운 나머지 십팔 평 불록 집속의 안일이 소중한 나머지, 어머니와 나는 마녀보다도 더 잔인해졌다.
빼버릴 틀니가 없기에 그 고통을 절망적이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여지껏 얼마나 교묘하게 스스로를 이중 삼중으로 기만하고 있었나를. 내 아픔은 결코 틀니에서 기인한 아픔이 나이었던 것이다. 나는 설희 엄마가 부러워서, 이 나라와 이 나라의 풍토가 주는 온갖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가 부러워서, 그녀에의 선망과 질투로 그렇게도 몹시 아팠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아픔을 정직하게 신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쳐진 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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