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지음, 문학동네, 2024년 5월 15일 발행
2026년 3월에 읽음
2024년, 한국 문학의 가장 뜨거운 신인.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24년에 출간한 첫 소설집으로 그 해 젊은 작가상, 신동엽 문학상, 동인 문학상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작가.
2020년대 현대 문학에서 어쩐지 희귀해져 버린 남성 작가.
바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김기태 작가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제목은 예전에도 어딘가에서 스치듯 들은 것 같은데, 막상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하기 전까지는 찾아 읽어볼 생각을 못했더랬다.
하지만, 아홉 편이 실린 그의 단편집 중 두어 편을 읽자마자 김애란 작가 이후, 참으로 오래간만에 어마어마한 작가를 발견했구나, 싶어졌다.
웬만하면 작가가 집필한 순서대로 따라가며 읽으려 했는데,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막연히 내가 쓰고 싶었던 그 미지의 무언가가 실체화된 소설로 나타난 듯, 싱크(Sync)되어 버렸다.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 세계로 다시 한번 여행하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책 소개를 찾아보니 김기태 작가의 소설을 동시대의 세태 소설이라고도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 팬, 연애 리얼리티 쇼, 인터넷 커뮤니티 등, 동시대에 폭넓게 소비되고 있지만 현대 문학에서 제대로 짚어지지 못했던 그 세계를 작가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지 싶어 찾아본 작가 인터뷰들.
그중 조선일보에 실린 김기태 동인문학상 수상 인터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품의 중심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목숨이 질기다,라는 것. 사랑받지 못하고, 명예롭지 못하고, 풍족하지 못해도 살아 있다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자기를 먹이고, 입히고, 가끔은 작은 위로도 주려는 그런 관성이 때로는 참을 수 없이 비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떤 때는 눈물이 날 만큼 숭고한 것 같기도 하다.”
한겨레 기사, 희귀한 ‘체질’의 남자 작가가 나타났다 [책&생각]도 좋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이 소설을 펼치리라 예감한다. 작품 분석은 그때의 나에게 넘기고 오늘은 각 작품마다 밑줄 그었던 대목들을 옮겨보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
세상 모든 바다
하지만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그 감각에는 분명 공감했다. 그룹의 세계관대로, 세상의 모든 바다는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달까.
그들은 아름다웠고, 유능했고, 심지어 옳았다.
무엇을 했어야 할 의무는 내게 없었다. 하지만 할 수도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분. 내가 고작 한 일이란 나조차도 완전히 믿지는 않은 소문을 전한 것. 퍼포먼스 주동자들이 소문을 일부러 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누군가의 단순한 망상이 와전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영록에게 전한 것은 나였다. 그 틀림없는 사실이 나는 참을 수 없이 불편했다.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롤링 선더 러브
번잡한 감정들이 눈을 감아도 침전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과 자산은 장점이었지만 그것만을 말할 수 있는 남자는 별로였다.
퇴근하고 나니 비워져 있는 휴지통. 소화제를 먹을 때 옆에서 따라주는 더운물 한 컵. 늙은 부모의 터무니없는 세계관을 함께 끄덕이며 흘려듣다가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걸기 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뱉는 안도의 한숨. 물티슈와 수세미, 파스와 보행기. 암 보험과 노령연금과 장례 토털 케어 서비스 카탈로그를 함께 뒤적거리기.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맹희는 집요하고도 악랄한 댓글 228개 아래에 익명으로 슬쩍 썼다.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좇같아졌어?' 나쁜 놈들에게는 욕을 하면 속이 풀렸지만 '언니 제발 혼자 살아요' 같은 반응을 보면 미안해졌다.
그런데 삼순이는 고작 서른, 브리짓은 서른둘이었다고. 다 오래전 이야기네, 오래전 이야기야. 자신이 철 지난 생각밖에 못하는 철 지난 사람이라는 의심 속에서 맹희는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전조등
메시지는 숫자 안에 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참석하지 못하는 회의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정해진 결론에 봉사하도록 숫자를 가공하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결국 모두가 헤어질 이유는 많고 계속 만나야 할 이유는 적었다.
그는 한 인간의 본질을 예고하는 구체적인 징후들은 따로 있으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똑바로 뜨면 그것들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이들은 고개를 갸웃할 만한 것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열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흰 바지를 입지 않는 사람.
그는 그를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는 약간의 불안은 청혼이 요구하는 진정성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녀는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사제가 그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신랑과 신부는 일어나 달라고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을 때 지난 삶의 일부를 잃은 듯했으나 일어나면서 남은 삶의 전부를 얻은 것 같았다.
회사에는 그와 같은 직군으로 이백여 명이 근무했고 그중 열한 명은 정확히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어떤 무대에서도 그녀의 남편은 자신 하나뿐이었고 그 사실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았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그날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그 교무실에서 한 번은 눈이 마주쳤다는 기억. '너도 봉투 받는 애구나.'
여자애라거나 남자애라거나, 귀엽다거나 못생겼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못한다거나 이전에 권진주의 김니콜라이는 서로를 그렇게 알아봤다.
중학교 졸업식. 웃음과 박수와 꽃다발 속에서 니콜라이는 "너네 부모님 완전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라는 말을, 진주는 "부모님은 안 오셨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서둘러 돌아갔다.
그 점에 비춰보면 그들도 단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일 거라고, 그래서 자기가 시급을 받고 시간을 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복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만족해야 할까.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도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 잡을 때 어리바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그 말은 두 사람만의 농담이 되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추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시련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그 말은 두 사람만의 농담이 되었다.
니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며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보편 교양
미시사를 포함한 세 권의 역사서를 읽고 '인간이란 자기가 살지 않는 과거는 뭉뚱그리는 관성이 있다'라고 메모했다.
마흔이 된 지금, 곽은 '동시대'라는 단어에 소유권이 있다면 자신보다는 십대들의 지분이 크다는 걸 납득했다. 교사는 어린 학생들과 생활하며 유치해지기 쉬운 직업이라고들 했다. 퇴행보다는 조로早老가 나았다.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곽은 자신이 수업시간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을 가르쳤다는 민원을 교장에게서 전해들었을 때 다소 놀랐다. 분노나 환멸보다 잃어버렸던 무엇을 찾은 듯한 반가움이 먼저였다.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 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삶에서 한 번은 맞닥뜨릴 거라 예감한, 파괴될지언정 패배해서는 안 되는 시험이 먼 길을 돌아 눈앞에 나타난 듯했다.
왜 마르크스만 문제가 되나. 마르크스를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는 게 공자를 읽고 유교 원리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위험한가. 따지자면 추천 도서 중에서 카뮈의 『이방인 』이 제일 위험하지 않나. 학생이 자기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대낮의 태양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을 총으로 쏠지도 모르니까.
곽은 은재 아버지에게서 전화라 올 거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기대하게 됐다. 정중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인사말을 상상했다. '아이고 아버님'같은 실없는 넉살로 시작하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로나, 우리의 별
거실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볼지 가족 간 합의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자연인스러웠다.
외다리비둘기는 '예쁘다'라는 단어의 협소함을 깨달았다.
리바이스 후드티를 입지만 손목에는 파텍 필립을 찬 이 기업가가 로나를 어떻게 망칠지, 많은 이가 은밀히 기대했다.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일련의 과정은 아무도 피해 입지 않는 기묘한 절도였다.
무슨 차이일까. 존 레논의 Power To The People 은 왜 Imagine 처럼 올림픽 폐막식에서 울려퍼지며 세계인이 합창하는 클래식이 될 수 없었을까. 당장right on 인민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내놓으라는 요구보다는, 언젠가someday를 상상imagine해보라는 권유가 받아들이기 쉽긴 하다.
세상은 정치적인 음악가에게는 약간의 존경을 적선하지만, 정치하는 음악가에게는 무자비하다는 걸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언론은 정치에 발을 들였던 예술가들의 궁색한 말로와 군소정당의 반복적 실패를 부각중이다.
조금은 좌충우돌했고 때로는 모순적이었던 지금까지의 길을 계속 걸을 뿐이다. 언젠가 그곳에, 그 꿈에 닿을 수 있을까. 로나가 할 수 있을까. 이후의 역사는 그녀에게만 달린 게 아니므로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태엽은 12와 1/2바퀴
그는 대꾸를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섣불리 무엇을 물었다가 어둠 속에서 속옷을 입은 타인의 사연으로 초대받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맑았다. 눈밭은 하얬고 바다는 파랬다. 음식냄새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날이었다. 미안한 일에 사과하고 고마운 일에 인사하기.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나란히 서서 사진 찍기. 그러려면 때맞춰 울리는 알람이 필요하다는 느낌.
무겁고 높은
듣지 못하던 것을 들면 물론 기뻤다. 하지만 버리는 기분은 더 좋았다. 더 무거운 것을 버릴수록 더 좋았다. 온몸의 무게가 일시에 사라지는 느낌. 아주잠깐, 두 발이 떠오르는 것 같은. 송희는 그 느낌을 비밀로 남겨두었다.
그 아래의 딱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공간. 개천과 덤불 사이의 버려진 의자에 앉으면 어쩐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편안한 기분.
송희는 아버지의 야윈 팔뚝을 보았다. 검댕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었던 옛날. 저 팔뚝으로 정말 깜깜한 땅속에서 돌덩이를 내리쳤을까. 탄차를 밀고 포대를 짊어지고 어머니를 안았을까. 그리고 나를 들어올렸을까. 송희는 눈앞의 사람이 버린 것과 버리지 못한 것을 가늠해보았다.
그래. 사실 언제나 없었지. 적어도 역도대 위에서는 아무도 나를 되롭히지도 말리지도 않았어. 송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들었거나, 내가 들지 못했을 뿐. 이상하게 말이야.
팍스 아토미카
'거의 전부'는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전부는 전부를 재촉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버티며 살고, 따지자면 나는 내 밥그릇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편이다. 단단히 붙들고 있다는 그 점이 문제일 수는 있다.
'거의 사실'은 '사실'고는 조금 다르지만 '거짓'과는 굉장히 다르다.
나는 '결정적 주문'이 어딘가에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모든 주문을 대체하는 마지막 주문. 나의 고장난 핵이 유발하는 지속적인 긴장과 불안과 회의에 대한 종전 선언. 해방이나 구원처럼 모호한 단어는 하나도 포함하지 않지만 그것들을 내 뇌에 감각시킬 하나의 문장.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요즘은 혼자 하는 캐주얼 게임조차 로그인을 요구한다. 영문자와 숫자와 특수문자가 조합된 열두 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일은 68세의 인간을 화나게 한다. 대문자 자동 변경 기능을 끄고 특수문자 키보드로 전환하는 방법을 전화로 설명하는 일은 나를 화나게 한다. 나는 고작 이런 일로 화를 내는지에 대하여 화를 내다가......
집착을 버려야 한다. 누구의 말인지는 핵심이 아니다. 요한복음도 요한이 썼는지 아닌지 모른다. 태초에 말씀이 화자보다 먼저 계셨다.
오로라는 너무 아름다워서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절대 잊어야 하는 것을 덮어쓰는 전략은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