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숫자 만큼의 무게를 나답게 책임지고 싶은 것

by 김현아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나는 나이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중요시하는 만큼 사고 회로가 나이에 꽂혀 어쩔 땐 나이 때문이라는 편견과 오해의 편협한 판단을 내기도 한다. 다행히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누군가를 만날 때 나이가 아닌 사람을 보려 하지만 어떤 찰나엔 그것을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어른의 나이를 가졌으면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창피해진다.


나이를 중요시한다는 건 스스로의 나이를 말한다. 나는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달랐으면 한다. 철없던 시절을 다 보냈으니 삼십대에 들어서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은 없지만 나이답지 않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산 숫자만큼의 무게를 나답게 책임 지고 싶은 거, 내가 하는 행동과 말과 표현들이 그냥 어떠한 불편함도 없이 나다웠으면 하는 거. 그래서 나는 서로를 불편하게 했던 관계를 끊고 나를 잃을 것 같은 술을 끊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로 가는 걸음은 며칠 전 만난 친구의 아기처럼 앞으로 기는 법을 몰라 뒤로 기어버리는 엉거주춤한 폼 같아서 그 차이를 벌리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는 게 많이 아쉬울 뿐이다. 욕심쟁이에 이상향이 높았던 과거의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타고나길 성악설을 믿는 사람으로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 후 나답게 사는 데에 돈과 시간을 쏟고 있다. 대신 남모르게 가지고 있던 타인을 대하는 편견과 오해의 사고를 걷고 사람 자체를 바라보는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당한 예의와 친절을 더해 편안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 좋은 척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다수를 끊어내어 줄어들었던 내 인간관계는 금방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이들로.


나이 듦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면 배울점 많은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내 삶의 방식이 누군가에겐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난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각자답게 나이를 먹으면 된다. 살아간 시간만큼 얻은 경험을 잘 다듬어 오늘과 내일을 사는 내가 편안하면 된다. 그게 본인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군들 창피한 늙음은 싫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끔은 나답더라도 피해 주지 않는 나다움은 뭔지 생각을 해보는 것도 중요할 거라는 말도 하고 싶다. 나와 타인이 함께 편안할 나이 듦, 그 것이야 말로 나이를 잘 먹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