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흥미로워할 만한 주제가 뭘까 고민하다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써보지 않아 민망하고 불편하고 낯선데 겨우 한 문단 쓰고 나서는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잘 못해서 뒷말 다 끊어먹고 ’사랑!‘만 발랄히 외쳐버리는 앤데 그에 대해 적겠다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타이밍 좋게 친한 언니에게서 삼계탕 먹으러 가자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친히 집 앞에 데리러 오더니 ‘사실 빨리 주고 싶어서 밥 먹자 했다.’는 귀여운 멘트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산 칼하트 모자를 건넸다. 그 길로 신선한 생 삼이 나오는 맛집에 데려가 몸보신까지 시켜주곤 마지막엔 내 용기마저 따뜻하게 만들어 버렸다. 헤어지기 직전, 행동과 말이 느린 편에 속하는 그녀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재빠르게 잡고 약 5초의 공백 뒤에 말한 한마디가 아주 멋졌기 때문이다.
“니가 조금 써둔 글을 읽고 나서…내가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그럼 된 거 아닌가…“
사랑을 하지 않은 지 2년째다. 그전에는 사랑을 한 걸까 고민해 보면 글쎄, 다. 내 존재에 대한 불안정을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환경 안에서 그냥 나라는 사람만을 알고 바라봐 줄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했던 것 같다. 불같은 사랑의 다음 단계는 적당한 온도에서 식지 않는 정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도 못하면서 단계를 뛰어넘는 정만 받길 원했던 내 과거에는 미안한 남자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 않은 남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 덕에 나는 혼자 잘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그 후 흐른 2년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사람 간의 관계는 희생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도 말이다. 희생이란 관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유지의 조건이라서 우리는 그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물으면 또 글쎄, 다. 각자 쌓은 경험으로 연애의 시작점은 너무나 달라져 있을 테니까.
따뜻한 배려와 희생으로 내 몸과 마음까지 데워준 언니는 연애를 쉰 적이 없다고 했다. 연애를 잘 하는 그녀의 말을 응용해 보면, ‘그럼 된 거 아닌가?’에 대한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감정노동의 경계는 물론 마음을 주는데 들이는 시간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안을 안정으로 정착시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알아버린 나에겐 이 안정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시되어버렸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이상하지 않은 사람. 즉, 취향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방향성이 비슷한가에 대한 거. 그럼 내가 하는 희생이 희생이라 생각들지 않겠지.
웃기게도 우리는 사랑을 힘들어하면서 또다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 존재의 이유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 마냥 잘 주고 잘 받고 잘 희생하는 법을 계속 찾아낸다. 그것을 잘 아는 언니 덕에 몸보신 후 쑥스러운 글이 쓰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사랑을 쫒는 이유가 이런 거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 됐다. 모두가 몸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고 사람(사랑)도 챙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