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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먼저 나를 따라오잖아

너만의 공간을 지켜

by 세상의 주인공님

23.11.27


주말이다. 남편은 뒤뜰에 빨래를 널러 나가고 나는 하이를 안고 책을 보고 있었다. 준형이는 치카를 하느라 세면대에 가고 가온이는 방에서 뭔가 만들기를 하다가 쉬가 마렵다고 급히 화장실에 들어가는 길이다. 요 녀석이 또 화장실 불도 안 켜고 욕실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들어선다.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려는데 하이가 짧은 다리로 재빨리 뒤따라간다. 평소 내가 화장실을 가도 곧잘 문 앞까지 따라오다가 화장실 안까지는 들어오지 않아 그냥 뒀는데 아뿔싸! 하이가 화장실 내부까지 맨발로 들어갔다!


엄마는 평소 문을 닫고 사용을 했고, 문을 삐그덕 열라치면 '아니야 기다려.'라고 외쳤기 때문에 기다려줬던 던모양이다. 오빠가 문을 열고 신발을 신지 않으니 자기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6살인 가온이와 20개월 하이는 곧잘 목욕을 같이 했었다. 아기 욕조가 아니라 큰 탕 목욕을 둘 다 좋아하는데, 혼자만 할 때는 서서한 샤워만 시켜주고 탕 목욕은 둘 다 목욕을 한다고 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목욕을 같이 할 때도 하이는 자기에게 없는 가온이 고추를 자주 잡아당기려고 했었다. 가온이는 그걸 피하는 것을 재미로 느끼고 장난처럼 깔깔거리며 허용했었다. 하지만 그 고추에서 쉬가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했는지 하이는 가온이 고추를 만지려고 했다.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둘이 목욕을 할 때처럼 깔깔거리며 즐거운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쉬가 나오고 있는 고추를 하이가 만지면 손이 더러워질 게 걱정이 됐는지 지금은 허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가온이는 하이를 밀어냈다. 뒤뜰 창문 쪽 거실에 앉아있던 내가 뛰어들어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고 순간 하이는 확 뒤로 나자빠진다. 하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깜짝 놀라 하이를 안아 든다.


욕실 바닥이 타일이라서 하이가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했고, 가온이는 워낙에 행동이 빨랐으며 하이가 넘어지는 속도도 빨라 보였다. 다행히 하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가온아 밀면 안되지!"


하고 하이를 안고 나오는데 때마침 남편이 집안에 들어서다 이 소리를 듣고 상황파악을 마친 뒤 가온이에게 불같이 소리를 지른다.


"가온아, 하이를 밀치면 안 되지!"

가온이가 지지 않고 맞선다.

"하이가 먼저 내 고추를 보잖아!"

"너 이리 따라와!" (버럭! )


남편은 크게 화가 나서 가온이를 방으로 불러들이고 문을 닫는다. 이어서 가온이가 울부짖으면서 아빠에게 대들고 남편과 공방전은 계속된다.

"그래도 밀쳐서는 안 된다고 하이가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머리라도 부딪혔으면 어쩔 뻔했어!!"

"하이가 먼저 잘못했잖아. 내 고추를 만지려고 했어. 나 쉬하고 있는데."

"그러면 말로 해야지. 확 밀쳐? 아직도 잘했다고 큰소리야?"

"아빠도 소리치잖아.!!!"


아 둘은 정말 동갑내기 친구들의 말다툼처럼 싸운다. 이래서는 서로에게 계속 상처를 주고 다툼은 잦아들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보라매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한 참이라서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중재에 나서본다.


똑똑.


"둘 다 너무 흥분해 있어. 잠깐 진정하고 얘기해 봐요. 가온아, 아까 가온이가 쉬하고 있는데 하이가 따라 들어가니까 불편했지? 쉬가 나오고 있는 고추를 하이가 만지려고 하니까 너무 당황했겠다. 하이 손이 더러워질 것도 걱정되고, 고추는 소중한 가온이 몸이라서 아무도 만져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응. 맞아. 그래서 못 만지게 하려고 했어. 근데 두 손이 다 고추를 잡고 있으니까 팔꿈치로 하이를 밀어낸 것뿐이야. 하이가 먼저 따라 들어왔어."


"맞아, 가온이는 하이를 행동을 막아야 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어. 엄마가 더 빨리 쫓아가서 하이 행동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엉엉엉"


가온이를 안고 토닥이면서 이어 본다.


"그런데 가온아, 우리 가족 모두 다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다른 가족들은 쉬나 끙가를 할 때, 하이가 들어와서 방해한 적이 없었어. 왜 그럴까?"


".."


"바로 문을 닫기 때문이야. 화장실에서는 쉬나 끙가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소중이를 내놓게 되잖아. 그러면 남들이 보면 안 되니까 문을 꼭 닫는 거야. 가온이는 화장실 불을 안 켜니까 어둡지? 그럼 화장실 문을 안 닫게 되잖아. 비데 불빛이 있지만 밝은데 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정확히 안 보이는 게 있으니까 그냥 문을 열고 사용하게 되는 거지. 화장실은 끙가만 하는 게 아니라 목욕이나 샤워를 해서 바닥에 물이 자주 묻어있어. 타일은 여기 마룻바닥이랑 다르게 매끈한 돌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물이 묻어 있으면 너무 미끄럽잖아. 그리고 돌이라서 딱딱하니까 부딪히면 너무너무 아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문을 닫고 화장실을 이용해요."


"문을 닫으면 어두우니까 또 뭘 해야 할까?"


"불도 켜요."


"맞아. 가온아.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맨 앞에 있는 불을 먼저 켜고, 문 앞에서 신발을 신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이용하는 거야.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매우 사적인 공간이라서 내가 이용하면 다른 사람은 보통 이용을 하면 안 돼. 그래서 형아가 끙가 할 때도 우리는 안 들어가. 우리 가족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그런 게 바로 사생활이라는 거야. 가온이가 사생활을 지킬 의지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지켜줘. 문을 닫는다는 의미는 여기 이미 사람이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하는 거잖아. 그렇지? 앞으로는 문을 꼭 닫아서 가온이 사생활을 지키자. 문이 닫혀 있으면 하이도 노크를 하고 나서 들어오려고 할 거야. 아마 그때쯤이면 가온이도 쉬를 다해서 문을 열어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


"네, 알겠어요."


"좋아, 그럼 이제 보라매 공원으로 산책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나가볼까?"


"네, 옷 갈아입을게요."


그곳은 가온이 방이었으므로 나는 남편을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나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전후 사정을 모르고 가온이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으니 당신도 가온이에게 사과를 했으면 좋겠어. 물론 가온이에게 사람을 밀친 것은 잘못이니 하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알려주기도 했으면 좋겠고.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본 다음에 차근차근 듣다가 화가 날 수도 있는데, 갑자기 버럭! 하잖아. 그런 행동은 누구도 예측을 못한 행동이야. 그럼 당신의 감정을 누가 따라가서 공감을 해줄 수가 있겠어. 갑작스럽게 화가 폭발했잖아."


"나는 가온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참을 수가 없어. 앞에 하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도 몰랐고."


뒤이어 남편이 가온이에게 사과하고, 가온이는 하이에게 사과하고 하이는 그런 가온이에게


"응~" 하며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용서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하이가 다치는 일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아들만 둘을 키우다가 생긴 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하이는 7개월에 폐렴으로 입원을 했고, 14개월에 왼쪽 팔뼈 골절로 깁스를 4주가량 했었다. 남자아이들을 키울 때 으레 그랬듯이 콧물이 나면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고, 거실에서 놀다가 넘어지는 일이나 부딪혀서 멍드는 일은 다반사여서 그러려니 했다.


하이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귀 위쪽 두개골 뼈가 아주 뾰족하게 튀어나와 옆으로 눕지 않아서 인지 사경이라는 진단을 4개월령에 받은 적이 있다. 근성사경은 아니라는 초음파 진단 결과를 보고 나서는 재활치료를 가지 않았다. 커가면서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도 있었고, 비급여로 이뤄지는 주 2~3회의 운동치료비도 부담이었다. 가서 한다는 것도 낯선 사람 품이라서 기절하게 우는 아이의 고개를 힘으로 눌러 돌리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근성 사경으로 진단을 받았으면 재활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을까. 이대로 괜찮아질 거라는 믿고 싶은 어느 카페글에 신뢰를 듬뿍 주고 외면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우리는 하이가 조심스러웠다. 기울어진 고개와 뻣뻣한 왼쪽 근육들 때문에 하이는 거실에서 혼자 걷다가도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많았다. 대근육은 발달이 빨라서 7개월에 일어서 걸었고, 9개월에는 혼자서 걸어 다녔다.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이 하이의 안전을 걱정하고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갑작스러운 버럭이 나왔는지. 하지만 가온이는 다르다. 하이가 입원하는 모습도 보고 깁스하는 모습을 지켜봤음에도 그것이 일반적인 일인지 하이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인지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가 어떤 심정일지도.


하이를 제때에 붙잡지 못한 내 잘못 한 스푼, 오빠가 욕실에 들어가면 목욕하는 줄 알고 따라가고 싶었던 하이, 자기 쉬가 하이 손에 묻을까 봐 걱정했던 가온이, 화장실에 불 안 켜고 문 열고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가온이의 성향까지 한 스푼씩 더해서 하이가 욕실에서 실족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감정 회복탄력성이 참 좋다. 보라매 공원에서 이 추운 날에 산책을 하는데 예쁘게 물든 단풍잎이나 은행잎을 주워 엄마에게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가온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잠을 못 자던 하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 넓은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신나게 하느라 뛰어놀았고, 지친 우리에게 아빠가 카페 선물을 했다. 매번 시그니처 초콜릿을 시키지만 카페에 앉아 어른들이 가득하고 고소한 커피향내가 나는 그곳에서 어른인 척 찻잔을 들고 홀짝이는 것을 아이들은 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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