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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정리하는 건 불공평해!

공동체생활에서 아량을 베풀기

by 세상의 주인공님

2023.11. 28


가온이는 젠가블록으로 도미노를 세우고 있었고, 준형이는 학습만화를 읽고 있었다. 먼저 밥을 먹은 남편이 하이랑 호비책을 읽고 있어서 평화롭게 혼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젠가 블록은 도미노 블록과는 다르게 묵직하고 두꺼워서 S자 같이 구부러진 부분에서 다음 블록을 넘어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도미노를 완성하고 싶었던 가온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때, 도미노 블록으로 해보라고 제안했다.


"도미노 블록은 작아서 좀 어렵지? 그런데 더 잘 넘어져서 모양을 만들어 내기 쉬울지도 몰라."


예전보다 참을성도 많아지고 섬세해진 가온이에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도미노 블록을 했을 때는 자꾸만 넘어져 버려서 울고 끝나버렸다. 지금은 옆에서 초록색 도미노 블록을 잘 세운다. 그새 밥을 다 먹은 나도 쪼그려 앉아 파란 도미노 블록을 세워 더 커다란 작품을 만들어본다. 빨간 도미노 조각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는데, 풍차모양이 돌아가면서 3가지 방향으로 한꺼번에 도미노를 시작할 수 있는- 조각의 사용법을 알아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여 몇 번 했더니 그걸 본 준형이가


"아! 나도 할래."


하고 옆으로 온다.


준형이는 노란 블록으로 도미노를 세운다. 예전에는 준형이가 도미노 블록을 더 잘했는데 오늘은 두꺼운 잠옷 소매 때문인지 준형이 블록이 자꾸만 넘어진다. 기어이 가온이 것도 넘어뜨리자 가온이는


"형아가 내 것까지 다 세워놔!"


한다. 가온이는 아빠랑 '하수도에서 살아남기' 책을 읽으러 가고, 하이는 저녁 간식을 먹느라 기분이 좋아졌다. 준형이가 가온이 것까지 도미노를 세우고, 자기 것은 여러 번 넘어뜨리고 세우고를 반복한다. 그런 준형이를 기다리다 이제 나도 상을 치우고 양치도 하고 혼자 노는 하이를 무릎에 안고 호비 인형으로 놀아준다.


어느새 준형이는 도미노를 모두 세우고


"엄마 것도 제가 무너뜨려도 돼요?"

"한꺼번에 모두 무너뜨리면 더 재미있겠네. 좋아해 봐!"


볼만하겠다 싶어 그러라고 했더니, 가온이가 자기 것은 자기가 한다며 옆에서 와서 초록 블록을 넘어뜨리고 다시 간다. 준형이는 자기 것과 내 것을 무너뜨리고는 이제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리 집은 8시가 되면 모두들 치카를 하고 거실 정리를 하고 8시 반쯤 자리에 누워 끝말잇기나 스무고개 같은 , 게임이나 오늘 있었던 특별한 일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곤 한다.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늦게까지 가지고 있었던 준형이가 정리를 다 하고선 한마디 한다.


"왜 나만 정리해?"


하지만 이미 정리를 다 했으니까 오구오구 우리 아들 잘했네 하고 끝내줬어야 할까? 그런데 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하고 싶어 진다.


"네가 가장 늦게까지 가지고 놀았잖아. 처음에는 가온이가 가져왔지? 가온이가 하고 싶어서. 그런데 정리는 가장 늦게까지 가지고 논 네가 할 수도 있잖아. 아님. 엄마가 정리를 안 해서 억울한 거야? 억울한 표정, 울 것 같은 그 표정, 말투는 뭐지? 엄마도 엄마만 먹을 음식하고 먹고 치우는 것 아니고,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먹을 밥이랑 반찬 준비하고, 설거지, 빨래, 청소 항상 다 하면서 지내. 아빠도 아빠 혼자 벌어서 쓰면 될걸 우리 가족 모두 다 같이 써도 뭐라 하지 않으시잖아. 너희가 우리 애들이라서 그런 거야? 가족이라서 그런 거지? 거실 청소할 때는 어떠니? 엄마가 설거지하면서 너네 정리해 달라고 하면 싹 치우고 나서 엄마가 청소기 밀지? 빨래도 엄마가 혼자 갤 때도 있지만 각자 자기 것은 가져가서 개라. 할 때도 있어.


지금 이 블록 정도는 너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양이고, 가온이가 자기 것은 했으니 그렇게 억울할 일도 아니야. 이럴 때는 이미 다 하고 났으니, '이번에는 내가 정리했어. 다음에는 네가 정리해 줘.' 하고 말하면 어때? 네가 쓴 것도 내가 다 정리하려니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같이 사는 공동체니까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거야. 한번 네가, 한 번은 내가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


했더니 더 운다.


"뭐가 억울할까? 엄마가 하는 말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 말고 서운했어? 우쭈쭈 하고 안아주고 끝내면 좋겠어? 아니면 이렇게 얘기를 하면 좋겠어?"


했더니 둘 다 좋단다. 그래서 안아줬다. 9살도 아직 엄마품이 필요하다. 준형이는 늘 그래왔다. 속상한 일이 꽤 많아도 엄마가 안아주면 대부분 풀린다면서 안아달라고 지금도 자주 그런다. 포옹이 주는 안정감은 대단한 위로가 된다.


이럴 때 고민이 된다. 내가 그냥 안아주고 끝냈어야 할까. 아님 내가 먼저 보여주듯이 '그래. 이번엔 준형이가 정리했으니까 다음엔 가온이가 정리하자.'라고 내가 정리를 했어야 할까. 나는 내가 꺼낸 말은 왠지 명령 같기도 하고 나도 같이 놀이에 참여했는데 나만 정리에서 빠진다는 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 같아서 아이가 스스로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는데 내 생각이랑은 다르다.


아니면 저녁을 준비할 때 준형이만 식탁을 정리하고 행주로 닦고, 수저를 놓는 일을 했는데도 가온이가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먼저 앉겠다고 한 것이 마음에 남아 서운했던 걸까? 마음이란 게 그렇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그 작은 일들이 쌓여서 파동이 일고, 물결이 생기고 파도가 생겨난다. 결국 이 별것 아닌 일에 눈물이 나고 설움이 북받치고 그렇다. 남들이 보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는 타인을 지금만 안다. 그 역사까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는 가늠하지 말고 아프다 하면 지나간 과거까지 다 씻겨질 정도로, 치유가 될 정도로 힘껏 안아주고 다독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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