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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사과엔 진심이 안 담겼어!

사과를 받아도 마음이 안 풀릴 수 있어.

by 세상의 주인공님

준형이랑 남편이 체스를 둔다. 하이는 내 품에 앉아 책을 읽고 가온이는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농구공이 마음에 들어 거실에서 팡팡 튕기고 있다. 매일 바뀌는 꿈에 하나가 추가됐자.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한다. 남편이 다른 집들에도 울릴 수 있으니까 하지 말라는데 조용히 굴리기를 한다면서 결국 체스판을 밀어버렸다. 가온이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리고 아! 미안해.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곧바로 사과를 한다.


아 진짜! 너 일부러 그랬지? 너 심심하니까 나랑 공놀이하자고.


아니래도. 다시 놔주면 될 거 아냐.


가온이가 체스 말을 다시 놔보지만 어디에 무슨 말을 줘야 할지 모른다. 다툼이 크게 번지지 않고 준형이는 다시 체스에 집중한다.


늦은 오후다. 연말이라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하이랑 가온이를 탕목욕 시켜주겠다고 욕실로 이끌었다. 깔깔 거리며 때도 밀고 욕조에 눕기도 하고 바가지로 서로 물을 끼얹으며 신나게 목욕을 했다. 가온이를 먼저 닦여 내보내고 머리 말리는 소리가 그치고 이제 옷을 입었겠더니 할쯤 하이를 닦아서 내보낸다. 얼른 기저귀를 입히고 머리를 말려주는데 가온이가 울음이 터진다. 준형이랑 농구공 주고받기를 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나 보다. 다행히 얼굴 어디 피도 안 나고 빨개진 곳도 없는데 소릴르 지르며 운다. 얼굴에 맞았으니 기분도 나쁘고 새 몽구공이 딱딱해 많이 아팠나 보다.


얼른 안아주고 다독여준다. 울음이 잦아들어 다시 하이 머리를 말리는데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를 뚫고 준형이랑 가온이가 서로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가온이 : 형아가 나한테 가슴으로 던지지 않고 위로 던지니까 내가 알굴에 맞았잖아. 형아가 똑바로 못 던진 게 잘못이야.


준형이: 놀다가 그런 걸 네가 잘 받았으면 안 맞았을 거 아냐.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는데 왜 소리쳐. 네가 농구 잘한다며. 그럼 다 받아냈어야지!!


둘을 붙잡고 앉아보라 했다.


가온아, 지금 형아랑 농구공 주고받기를 했잖아. 그런데 잘 받아질 때도 있지만 누구나 놓칠 때도 있어. 그러면 다리나 얼굴에 맞을 수도 있지. 이건 형아가 가온이 때리려고 일부러 던진 건 아니었어. 형아도 얼굴에 당황한 게 보이더라. 그래서 바로 사과도 했잖아. 엄마가 보기엔 형아는 이 정도면 충분해. 가온이는 사과를 받아도 얼굴이 아프고 기분이 나쁜 게 아직 안 풀렸구나. 맞아.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형아에게 뭐라 하지는 마. 형아도 그냥 가온이랑 농구공 놀이를 같이 한 것뿐이야. 조금 마음이 진정되고 얼굴이 안 아파지면 가온이도 마음이 괜찮아지면서 형아, 다시 농구공 놀이하자. 하고 말하고 싶어질 때가 올 거야. 그때까지는 혼자 하는 놀이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볼까.


준형아, 가온이가 농구하다 실수로 체스판 엎었을 때 생각나? 그때 가온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바로 사과를 하더라. 그때 너도 일부러 그랬다면서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가온이를 더 다그쳤어. 체스는 사실 아쉽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둘 수도 있잖아. 그런데 얼굴에 맞은 건 아픔이 가시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해. 더 서럽기도 하고. 가온이도 그때 너랑 똑같은 마음이야.


아니야. 가온이는 아, 미안. 하고 너무 얄밉게 말했어. 그 사과는 진심이 담겨있진 않았어!!


그래? 준형이가 보기엔 그랬구나. 엄마는 준형이도 가온이도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졌어. 사고가 난 즉시 났고 표정이 그랬고 말투가 그랬어. 준형이도 가온이랑 놀다 그랬으니 내가 잘못한 건 없어하는 마음이 들어도 아픈 가온이 마음을 달래주려고 사과를 했지?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 어쨌든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하는 건 진심이었잖아. 엄마는 그렇게 보였어. 가온이도 낮에 너처럼 사과를 받아도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것뿐이야. 그럴 때 가온이가 뭐라 하면 거기에 휘둘리지 말고 너 아직 속상하구나. 하고 시간을 좀 줘. 지금은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아픈 게 가라앉으면 다시 얘기하자 하고 싸움을 키우지 않으면 좋겠어. 어떤 사과라도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꺼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 마음을 더 살펴주는 고운 마음이니까 일단 사과를 들었으면 조금 기다려주는 거야. 이제 화난 내 마음은 내가 잘 다스려야 할 차례야. 상대에게도 그럴 시간을 줘야 하는 거고.


아이들은 역지사지를 잘 못한다. 매번 콕 찝어서 너라면 어땠겠니 하고 물어주면 그제서야 속상했겠어하고 말할 때가 있다.


또 사과를 받아도 마음은 더디게 흘러가기도 한다. 그때의 사과는 미안해 띡 하마디로 들린다.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 자기도 사과를 할 때는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잊을 때가 있다. 준형이는 참 사과를 잘 못하는 아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하고 먼저 양보하는 습관 만큼이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사과는 누군가에게 졌음을 인정하는 비굴한 행위가 아니라 내가 실수했음을 인정하는 큰 용기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데 어떻게 얘기해야 잘 전달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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