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진심은
나를 때렸어! vs 너랑 놀고 싶은 거야!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가온이가 먼저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보통은 잠자려고 누워서 하는 놀이라서 뭔가 새로운 단어를 찾은 건가? 한 방 날리고 싶은 그런 단어를 생각해뒀군 싶었는데
그래, 하자! 라고 호기롭게 대답한 준형이가 차가버섯!! 을 외쳤다. 뭐 이건 하지 말자는 말인데 가온이는 그걸 알아듣지 못하고 형아가 자기랑 노는데 응해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솥뚜껑을 섯뚜껑이라고 바꿔서 말한다.
시작해 버렸으니 응해주는지 껑충껑충으로 단어는 이어지고 그러려니 하면서 밥을 일찍 먹은 하이를 데리고 거실 바닥에서 놀고 있다. 잠시뒤 요란하게 우는 준형이 목소리가 들린다. 억울해한다. 왠지 모르게 준형이의 울음에는 늘 억울함이 깔려있다. 또자를 닮은 것처럼.
끝말잇기를 마친 두 녀석은 밥을 먹는데.. 가온이가 준형이 팔을 수저로 툭 툭 툭 3번 쳤고 준형이는 그런 가온이 얼굴에 주먹질을 하듯이 다가갔다가 거둬들여서 놀라게만 했다. 하필 그때 또자(남편)가 준형이 모습을 보고
"동생에게 그런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되지! "
하고 훈계했다. 준형이는 이미 울음이 터져 억울해하면서
"가온이가 먼저 저를 수저로 쳤단말이에요!!! "
하고 소리치며 울고불고.. 당황한 또자가 가온이에게
"형아 먼저 때렸어? 사과해."
하니까 가온이도 뒤따라 운다.
흠.. 왜 항상 개입을 할까 말까 가 고민이 되는 걸까. 하이랑 모른 체하고 지켜볼까 하는데 두 녀석이 모두 울고 모두 다 억울해한다.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피상적인 미안해 한마디는 마음을 풀어주지 못하는 겉치레이자 허울뿐이고 마음은 없는 낱말, 단어에 불과하다.
둘을 앞에 앉혔다.
"준형이가 우는 건 알겠는데 가온이는 왜 우는 거야?"
하고 물으니
"내가 먼저 숟가락으로 형아 팔을 쳤지만 형아도 주먹을 내 얼굴에 날렸는데 아빠는 나한테만 사과를 하라고 하잖아. 나는 얼굴을 맞았는데!"
라고 말한다.
그래. 가온이는 알고 있다. 형아가 얼굴에 닿지는 않았지만 주먹을 얼굴에 빠른 속도로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된다는 것을. 위협은 폭력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조장하고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 가온이 생각에는 형아도 가온이 얼굴에 주먹을 빠르게 왔다 갔다 했으니까 똑같이 잘못했다고 생각했구나. 그런데 아빠가 가온이만 사과하라고 하니까 억울한 거야? "
가온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자기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이해받는 느낌에 마음에 응어리를 풀어내면서 퍼져 울어버리고 만다. 울음으로 쏟아낸다. 속상함을 쌓아두지 않고.
"가온아, 가온이가 먼저 형아 팔을 수저로 두드리지 않았다면 형아가 얼굴에 쉐도우복싱을 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형아는 보여주고 싶었어. 나는 너를 때릴 수도 있고, 그럴 힘과 주먹이 있고 빠르기도 하지만 너를 진짜로 때리지 않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야. 그러니 더는 나를 건드리지 마. 하고 행동으로 표현한 거야.
형아가 너를 때리지 못해서 똑 같이 수저로 네 팔을 치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때릴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보여준 거야. 물론 그건 진짜로 얼굴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가온이는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 피할 수도 없었고 이미 맞은 기분이야.
하지만 형아는 나름 배려를 한 거야. 진짜로 네 얼굴을 칠 수도 있었는데 정말로 몸이 아프게는 하지 않았어. 그게 형아가 너를 지켜주면서 이런 행동은 사람을 불편하게 해서 너를 다치게 하고 싶어져. 하고 가르쳐준 거야. 가온이 알겠어? 형아는 너를 진짜로 때릴 수도 있지만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다음부터는 밥 먹는 시간에 형아를 때리거나 건들지 말자."
그제야 가온이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준형이에게 건넨다. 형아 아까는 내가 먼저 때려서 미안했어. 하고.
이제 준형이 차례다. 준형이는 벌써 엄마가 가온이에게 해준 얘기를 듣고 알고 있다. 엄마가 가온이에게 설명할 때 자신이 했던 '배려'를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알고 있었다는 것을. 거기서 벌써 반은 마음이 풀렸다.
"준형아, 밥 잘 먹고 있는데 가온이가 수저로 툭툭 치면서 건드리니까 짜증 났지? 동생을 때리지도 않으면서 경고를 주는 행동은 잘했어. 엄마 생각에는 가온이가 밥 먹을 때 심심했어. 그래서 끝말잇기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너는 처음부터 차가버섯을 외치면서 할 마음이 없다는 표현을 한 거야. 그런데 가온이는 아직 그렇게 알아듣기에는 어려서 형아가 나랑 놀아줄 마음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어. 안할래.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대를 해줬다'라고 생각을 한거야. 엄마나 네 또래 친구들 정도는 알아듣겠지만 아이들은 곧이곧대로 알아듣는 일도 많거든. 그런데 그 게임이 끝나니까 이제 심심해졌어. 그래서 형아에게 장난을 친거야. 밥 먹을 때 쓸수 있는 도구인 숟가락으로 너에게 장난을 건거야. 너를 정말로 아프게 할 의도는 없었어. 그랬다면 다른 도구도 많고 방법도 다양하겠지. 그런게 싫을 때는 '가온아, 지금 밥 먹는 시간이니까 얼른 먹고 형아랑 같이 보드게임하자' 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가온이가 한 행동을 폭력으로 '나를 때리려했다'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랑 놀고 싶었구나!', '밥 먹는데 심심하구나!' 라고 받아들이면 좋겠어. 너를 공격할 의도가 아니라 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게 가온이 진심이라는 거야.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교실안에서 다툼이 일어났을때 선생님이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로 사과를 하게하는 그 모습이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반 아이들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 두아이 마음은 진심으로 화가 풀리거나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이 아닌데도 그저 선생님이 시키니까 앵무새처럼 말을 했을뿐 두 아이는 선생님이 보지 않는 곳에서 2차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그렇게 성급하게 사과할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서로가 오해해서 오래도록 서로를 미워하거나 앙금이 남는 경험을 하게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에 오빠랑 한편이고, 부모님에게 혼났던 듯이 혼나더라도 형제끼리 남매끼리가 한편이니까 서로를 탓하는 일은 없도록 그렇게 만들고 싶은게 내 마음인데.. 또자가 애들에게 시키는 사과는 과거의 그 담임 선생님의 태도와 닮아 있어서 내가 끼어들어도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냥 내 눈앞에서 너네가 조용했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너네가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는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통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