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셀때까지 내놔! No! 형아가 가르쳐줄까?
위협과 제안사이 - 리더십 키우기
2024.1.24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하이가 먹다 놀겠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놀았고 먼저 세 남자가 먹고 있었다. 게살을 발라주니 가온이가 평소보다 일찍 밥을 다 먹게 돼서 가온이랑 하이랑 잡기놀이를 했다. 안방과 거실을 오가면서 번갈아가며 간지럼을 태우고 잡으러 다녔다.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즐거운 저녁이었다. 이제 숨이 차는지 쉬었다가 한다고 잠깐 가온이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아직도 하이를 데리고 노는데 준형이가 밥을 다 먹는가 싶더니 가온이가 바닥에 드러눕고 남편이 준형이를 나무라고 곧 준형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애 배를 차면 안 되지!! "
"가온이가 먼저 제 다리를 찼단 말이에요."
"그래도 배를 차면 급소야. 몸을 때릴 데가 있고 아닌 데가 있지. "
"그럼 저는 그냥 맞고만 있어야 해요? 제 몸은 어떻게 지켜요? "
"가온이가 모르고 그런 거야. 너도 똑 같이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설전이 오가는 도중 가온이가 우웩 했다. 헛구역질이었는데 정말 배를 맞아서 토가 나오는 건가 싶어 살펴봤는데 다행히 괜찮다.
식사를 마치지 못한 남편이 식탁에 앉아서 자기 방에 혼자 있으려는 준형이를 불러온다. 진정하고 방에서 블록 만들기를 하나 싶었는데, 아니다. 혼자서 펑펑 운다. 자기 마음 알아주는 이 없으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울면서 엉거주춤 서서 '나는 어디에 기대야 하나요 엄마'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 자초지종을 모르는 나는 외면했다. 너네들끼리 싸움이려니 하고 일단 남편이 개입했으니 나는 빠져있었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갔나 보다.
식탁에 마주 앉아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준형이의 억울함은 커져가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운다. 준형이의 울음은 언제나 그렇게 억울함이 깔려있어서 곧 숨이 막힐 듯이 그렇게 운다. 준형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가온이랑 하이를 데리고 다시 잡기놀이를 했다. 준형이랑 남편의 일이겠거니 싶었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슬쩍
"형아가 때린 데가 아팠어? 형아를 먼저 발로 찼어?" 했더니,
"응, 형아가 핸드폰 달라는데 싫어서 발로 찼어. "
대답이 가관이다. 요 녀석 언제나 시작은 너로구나!
"그런데 형아는 네 배를 찼어? "
"아니 여기 고추를 찼어."
"지금은 괜찮아?"
"응, 지금은 괜찮아."
"그래. "
남편이 식사를 마쳐서 이제 내가 저녁을 먹을 차례다. 준형이 방에 노크를 해본다. 평소에는 그냥 들어갔는데. 이제 눈물은 그치고 레고조립설명서를 보고 있다.
"엄마 혼자 밥 먹는데 와서 앞에 앉아줄래?"
하고 말을 건네본다. 따라 일어나주는 고마운 녀석. 그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으려 하니 자기도 이야기에 끼고 싶다며 내 옆자리로 와서 가온이가 앉는다. 하이는 아빠랑 호비책을 읽기 시작한다. 거실을 가득 메운 라디오를 끄고 준형이에게 먼저 물어본다.
"가온이가 네 전화기 쓰고 있어서 달라 그랬더니 발로 찬 거야? 어디, 정강이를? "
"정강이 아니고 고관절을 찼어. "
( 아, 그래서 너도 똑 같이 고관절을 찬다는 게 고추를 차게 된 거로군.)
"고관절 전에 다쳤던 데라서 조심해야 하는데 맞아서 기분도 나쁘고 더 아프고 그랬겠다. 그런데 핸드폰은 왜 필요했어? 뭐 하려고 달라 그랬어? "
"아니 ~~ 나 밥 먹을 때는 하는데 내가 달라 그래도 내놓으라고 하는데도 안주잖아. 가온이 안 뺏으면 한 시간도 해. 진짜야! "
제법 억울한 목소리로 자기 얘기를 뱉어낸다.
"응, 그랬구나. 맞아. 뭐 쓸 일이 없어도 네 것이니까 그냥 달라고 할 수도 있지. 말로 해도 안 주고 그랬구나. "
가온이가 불쑥 끼어든다.
"형아가 열 셀 때까지 달라는데 나는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안 주고 싶잖아. 그래서 이불에 던졌더니 형아가 나를 밀쳤어. 그래서 나도 다리를 발로 찼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이 돼서 가온 이에게 로 대화가 옮겨간다.
"가온아, 핸드폰으로 뭘 했는데 안 주고 버텼어? 뭐 해야 할 거 있었어?"
"그냥, 녹음도 하고 사진도 찍고 검색도 해봤어."
낮에 가온이가 '나도 핸드폰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음, 가온이도 할 수 있는 게 많구나. 그런데 가온이 물건이 아니잖아. 그러면 주인이 달라 그러면 줘야 하지 않을까? 하이가 가온이 태블릿 가지고 노는데 달라 그랬어. 그런데 안 줘. 그러면 엄마는 하이 다 놀 때까지 기다려줘 가온아. 하고 말하는 게 맞나?"
"아니요." 갑자기 가온이 말이 존댓말로 바뀐다.
" 가온이 녹음하는 거 재미있었구나. 맞아. 형아도 그쯤에 책을 쓰겠다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화나 라디오소리까지도 아무거나 녹음하고 다니고 다시 들어보고 그랬어. 가온이가 전화기가 필요할 때가 되면 엄마가 사줄 거야. 지금은 한글을 모르니까 글을 볼 일도 없고 유치원 다닐 때도 항상 엄마가 바래다주고 데리고 오고 해야만 유치원에서 받아주고 보내주니까 전화를 할 일도 없잖아. 그래서 아직 필요하지 않으니까 없는 거야. 녹음을 하거나 전화를 해야 할 땐 엄마가 빌려줄게. 녹음하는 법도 엄마가 가르쳐줄게. 그럼 형아 핸드폰은 왜 던졌을까? 아직 더 하고 싶은데 형아가 달라그래서 심통이 났어?"
"응. 화가 났어. 그런데 형아도 나를 밀쳤어."
맞아 밀쳐서 너를 넘어뜨렸지만 먼저 발로 찬 건 너라면서.
응.. 가온이가 울먹인다. 내 문맥엔 영문을 모르겠는 울음이다.
"왜 울어?"
"형아가 아니라 내가 혼나는 것 같아서 ㅠㅠ"
"가온이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아?"
"응. 형아가 핸드폰 달랬는데 던지고 발로 찼어."
" 그래, 잘못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형아, 아까 달랄 때 안 주고 던져서 미안해. 발로 차서 아프게 해서 미안해. "
" 그래, 아주 잘했어. 용기 냈네. 우리 아들. 사과는 나쁜 거 아니야. 자기 잘못을 아는 사람만 사과할 수 있어. 잘못하고서도 그걸 모르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은 반성을 안 하니까 또 그런 잘못을 할 거야. 가온이는 이제 이런 일 절대 없을 거니까 더 멋져졌어. "
사과를 하고도 뭐가 분했는지 가온이는 분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운다. 그래도 안아주면 안겨든다. 준형이 얼굴이 더 편해졌다. 이제 준형이 치례다.
"핸드폰으로 뭐 할 게 있었어? 그냥 네 것이니까 달라고 한 거였지?"
"응."
표정이 벌써 내가 달라고 한 게 잘못인가? 머리를 굴리면서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는 얼굴이다.
"네 것이니까 얼마든지 그래도 돼. 그런데 말을 할 때 말이야. 열 셀 때까지 내놔. 이런 말은 상대방이 네 말을 듣기보다는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나는 너보다 힘이 세고 강제로 뺏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량을 베풀어서 좋게 말로 할 때 내놔라. 이런 뉘앙스잖아. 그러면 덤벼보고 싶잖아. 아닌데. 나도 힘 세거든. 난 10대 맞아도 한대라도 너를 칠 수 있어.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잖아.
엄마라면 그럴 때 가온아 녹음해? 형아도 6살에 많이 해봤던 건데 그냥 켜두면 쓸데없는 소리도 많이 녹음이 되더라. 형아가 가르쳐줄게 이리 줘봐. 이렇게 말을 했다면 어때? 준형이가 듣기에도 아 나를 도와줄 사람이구나. 내가 하는 것을 더 잘되도록 함께해 줄 사람이구나 하는 게 느껴지지? 상대가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의 긴장을 풀고 핸드폰의 주도권은 준형이에게 오는 거야. 내 물건을 내가 갖게 되고 동생을 도와주는 모습이 되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싶을 때 상대를 협박하고 위협하기보다는 제안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상대가 스스로 내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거야. 마치 본인이 정말 원해서 하는 것처럼. 가온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형아가 도와준다고 생각하게 되고 너는 네 핸드폰을 찾게 되는 거잖아. 엄마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보자."
준형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이 펴졌다. 다행이다. 부모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바로 보이는 순간만을 가지고 아이들을 혼내면 전후 사정이 반대로 꼬여 잘못 화살이 돌아갈 때가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듯이. 판사가 변호사와 검사의 얘기를 모두 들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
지금이야 이렇기 자기가 억울하누얘기를 해주지만, 내가 먼저 불러 앉혀두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까. 아까 준형이 눈빛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나에게 지금처럼 얘기를 해줬을까. 이렇게 끼어드는 게 맞는 처사였을까. 어디서 어느 시점에 끼어들어 어디까지가 옳다고 말 해줘야 하는 걸까 하고 고민할 때가 많다. 생각보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고 그래서 때로는 꾀를 부릴 줄도 알았으면 싶고 언제나 너의 억울함을 물어봐줄 사람이 세상엔 없으니 네 권리는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도 가르쳐주고 싶다.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강하게 단련시키기보다는 현명함을 갖추도록 내 아이에게 지혜를 가르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