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복 있는 사람
'퀸스 겜빗'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7부작으로 1 시즌이 마친 상태다. 엄마와 같이 탄 자동차의 교통사고로 보육원에 간 7살 엘리자베스 하머가 8살부터 관리인 아저씨와 체스를 두다가 20살에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성장 드라마였다. 준형이가 체스를 제법 두게 됐다. 처음엔 가르쳐 주는 입장이었는데 요즘은 내가 지는 일이 잦아져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나 수법이 있을 것 같아서 다른 마스터들의 대전을 한번 보려고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됐다.
베스 하먼이 관리인 아저씨를 이기기 시작하자 이 아저씨는 동네 고등학교 체스클럽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그를 초청해서 결국 하먼은 고등학생들 12명을 한 번에 이겨버리고 체스를 더 두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다. 가끔 체스가 막힐 때마다 진정제를 먹으면서 잠들지 않고 밤에 천장에 체스판을 띄워두고 머릿속으로 혼자서 몇 번이고 대전을 한다. 그러다 보면 답이 나온다.
진정제에 너무 의존해서 몰래 약통을 들고 손으로 퍼먹다가 기절까지 하고 나서 15살이 된 어느 날, 부유한 집에 입양을 가게 된 베스 하먼. 출장을 떠났던 새아빠가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겠다고 하자, 생계가 막막해진 새엄마에게 하먼은 제안한다. 내가 체스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작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첫 100달러를 따기 시작해서 주 대회, 이웃 주 대회, 미국 대표까지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때에도 하먼은 막힐 때면 약에 의존하고 같이 다니는 새엄마와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엄마가 의존하고 있는 술을 같이 마시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미국 대표가 되는 시합을 준비해야 하는데 자기가 이겼던 처음 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대가 먼저 전화를 걸어 너는 지금도 너무 잘 하지만 조금만 훈련을 하고 공부를 하면 더 훌륭해질 거라며 체스 관련 책들을 잔뜩 준비해서 집으로 찾아오고 매일 대전을 하면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두지만 말고 지루하더라도 안정적은 수를 두는 방법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렇게 미국 대표가 되고, 다시 세계 1위인 러시아인과의 시합을 앞두고는 역시나 하머에게 패배한 전 미국 대표가 도와준다. 자신의 뉴욕 집으로 초대해서 철저하게 훈련하게 하고 술을 멀리하게 도와준다.
하머는 결국 세계를 체스로 제패했고, 그녀의 재능은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게임을 싫어해서 위험한 수를 두고 공격적이고 화가 많아서 발끈하게 된다는 그녀의 체스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 이들은 바로 그녀의 곁에 있었고, 그녀를 지켜봐 온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뜻과는 다른 성명서를 발표하면 러시아에 가는 경비를 대주겠다는 보육원 재단의 제안을 거절해 시합에 나갈 수 없을 상황이 됐을 때, 내가 정말 그럴 자격이 있나 싶게 술독에 빠져 나락으로 더더 깊이 파고들어만 갈 때, 처음 체스를 같이 뒀던 관리인 아저씨의 장례식을 가기 위해 보육원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졸린이 찾아왔다. 같이 찾아간 그 지하실에는 관리인 아저씨가 하먼에게 받았던 편지와 체스 잡지에 실린 여러 사진, 기사들이 스크랩 돼 벽에 붙어 있었다. 자신을 응원하면서 지켜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졸린은 하먼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한 때 내가 너의 전부였듯이 나에게도 네가 나의 전부일 때가 있었어." 하면서 자신의 로스쿨 학비로 마련한 3천 달러를 러시아 경비로 빌려준다. 이기면 갚으면 되잖아.
타고난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발현해 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하먼에게는 지하실 관리인 아저씨와의 체스 경기가 계기가 돼줬고, 그 재능을 망각한 채 나락에서 허우적거릴 때 건져준 것은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체스에서 얻은 인맥들이었다. 지역 대회까지는 스스로 해처 나갔지만, 미국 대표가 될 때 도와줬던 전 지역대표는 하먼이 가진 잠재능력과 매력을 보고 도와주고 싶어 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이걸 준형이에게 보여주기에는 체스 대전이 제대로 나온 판이 한 판도 없어서 같이 보자고 할 수 없고, 약이나 술에 의존하는 장면도 많아서 아직 만 8세인 아이와 보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해줄 말이 생겼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진 재능이 좋고 그것을 키우는 게 재미있어서 해나가고 그러다 보면 누구나 큰 성장통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때 나락에 갇혀버린 당사자는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약이나 술에 빠져들어 있을 때 나를 구원해 주는 존재는 나를 알고 응원해 주는 그들이고, 한마디고 내밀어준 손이다. '너는 이미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다 이뤘어. 나도 그만큼 이루려고 노력하는 거야.',라는 응원의 말이나 '지난 15년 동안 나를 완패시킨 것은 네가 처음이야.' 라던가 '같은 여자로서 응원해.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어.' 등등.
아이는 이제는 혼자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만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엄마가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를 자기 옆에 앉혀두려고 할 때가 있다. 그게 이런 느낌일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존재만으로도 나를 응원해주고 있을 분명한 한 사람. 나를 지켜봐 주는 든든한 후원자를 둔 느낌. 하먼이 매 순간 성장을 거듭해 더 큰 세계로 나아갈 때 누군가 딱 한 사람씩 나타나 구원처럼 새로운 길을 비춰준 것처럼 내 인생의 작은 순간들에게 그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던 공부가 지겨워져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그런 때 갑작스레 밥을 사주겠다고 공부는 잘 되냐고 물어봐준 대학 친구, 집안 일로 내가 잘하는 게 맞을까 어떤 게 현명할까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자신의 문제를 상담해 온 동네 아줌마. 그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내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원래 내가 할 수 있었을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으려면 나는 평소에 쌓아뒀어야 한다. 언제라도 찾아가도 받아줄 사람 정도의 이미지를.
40년 생을 살아보니 그렇다. 세상에 아무도 없어. 인생 혼자 사는 것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대체로는 그게 맞지만 자기 파괴적인 모드에 들어가 있을 때 그 동굴에서 꺼내줄 수 있는 것은 가까운 지인이다. 심지어 내 아이들도 그렇다. 퍼질러져 게임이나 드라마만 주구장창 보면서 방학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는 이 지루한 일상이 때로는 이불을 걷어내고 하루를 살아내야할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나를 알고 내 곁을 지켜주는 주변 사람들이 고맙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