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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화내는 방법

행동이 아닌 말로 화났음을 표현하기

by 세상의 주인공님

쾅! 하고 내려놓는 소리가 난다. 그냥 넘어가 지지가 않나 보다. 곧이어 또자가 "너 지금 뭐 했어?!" 하며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가온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대꾸한다. "블록을 정리하다가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하이가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있듯이 저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라고요."

또자는 할 말을 잃고 가온이에게 더는 대꾸하지 못한다.


가온이는 아빠에게 치카를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고, 형아 옆에 서서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기 시작한다. 평소 같으면 아빠가 도와줘야지 제 이가 깨끗해진다고요~ 할 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닌가 보다.


이대로 끝나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또자가 스스로 훈육하도록 내버려 뒀지만 교통정리는 확실히 해야 하고 아이들도 자기 마음이 어때서 화가 난 것인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알아야만 다음이 없다.


"배가온!! 이리 와!"


내 말에 양치질을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있던 가온이가 쏜살같이 안방으로 와서 내 앞에 앉는다. 이럴 때 나도 감정적으로 가온이를 몰아가면 가온이는 갈 곳이 없다.


"하이랑 소꿉놀이 블록 가지고 잘 놀고 있었는데, 이제 8시가 돼서 아빠가 가지고 논 블록은 모두 정리하라고 말씀하셨지? 그래서 가온이가 정리를 잘했어. 하이는 아직 정리하는 법을 잘 모르니까. 그런데 하이는 놀이가 끝난 것을 모르고 계속 블록을 가지고 가니까 화가 났구나? 그래서 하이가 블록을 못 집게 블록통을 통째로 들어 올렸어?"


" 응."


"그래. 그런데 아빠가 가온이 치카해 주려고 준비를 마치고 가온아, 하고 불렀어. 보통은 가온이 치카할 때 하이가 옆에 와서 치카 물컵을 쏟거나 누워있는 너를 건들거나 하면 제대로 치카하기가 어렵고 오래 걸리니까 지금처럼 스스로 하이가 잘 놀면 다행이다 싶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시고 내려둬 하신 거야"


"응"


"그래, 가온이는 블록통을 꽝 내려놓을 때 누구에게 화가 난 거야?"


"아빠, 아니 아니 하이"


"왜 하이에게 화가 났어?"


"난 정리를 하려는데 또 꺼내고 또 꺼내고 그러잖아"


"맞아. 화가 날만 하겠다. 그런데 엄마가 보기엔 말이야, 가온이가 블록통을 쾅 내려놓은 것은 하이가 블록을 가져갈 때가 아니라 아빠가 블록통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 직후잖아. 그럼 아빠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여. 아빠에게 화가 날 수 있지만 그럴 때는 말로 하면 돼.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가온이도 싫잖아. 누가 물건을 쾅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섭게 겁주는 거야. 나는 이만큼 화났어. 하고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잖아. 가온이는 말로 먼저 할 수 있어. 그러면 아빠도 말로 해주실 건데, 가온이가 말로 안 하고 행동으로 하면 아빠도 같이 거친 행동이 나와."


"응 알겠어"


"그럼 아빠한테 가서 아까 제가 블록통을 쾅 내려놓는 것은 잘못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정리하래서 했는데, 다시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저는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하고 얘기해 봐. 그럼 아빠도 그럴 때는 멀리 떨어진 블록들만 모아두고 하이 주변에 있는 블록들은 하이가 정리할 테니 놔두는 거야. 그 모습을 아빠도 보셨으니 더는 정리하라는 말씀을 가온이에게 하지는 않으실 거야. 아빠는 말로 했는데 가온이는 거친 행동으로 답했으니 가온이가 먼저 아빠에게 사과할 수 있어?"


"응, 그런데 엄마 뭐라고 말하라 그랬지?"


"아빠, 아까는 블록통을 쾅 내려놓아서 잘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빠 말대로 정리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제는 정리하지 말고 내려 두라니까 화가 났어요. 하고 말씀드려봐"


또자가 노력을 한다. 애들이 화를 낼 때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전에는 몇 마디 시도하려고 하다가 하아.. 됐어. 가라 가. 그냥 가라고. 하면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는 더 이상의 훈육도 없고 화해도 없이 마무리하곤 해서. 이럴 때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하게 되면 아빠의 위신이 더 떨어지는 것인지,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가 교툥정리를 해줘야 할지 우물쭈물하게 됐는데, 그냥 넘어가 버릇하기를 몇 번 하다 보니, 아빠가 화를 낼 때는 말싸움으로 이겨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는 게 보인다.


내가 나도 모르게 또자 말을 무시하고 애들 앞에서 함부로 했던가 하고 애들 모습의 거울이라는 내 행동이 문제가 있는지 되돌려 봤는데, 일단은 잘못은 잘못이라고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또자를 대하는 내 태도를 더 신경 써야겠지. 이제는 우리를 거울삼아 자라는 애들이 셋이나 있으니 둘만 지낼 때처럼 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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