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른 말.
세 아이를 키우며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들 잘 때 같이 자고 일찍 일어나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같이 일찍 일어나 생각을 정리하던 남편이 말꼬를 튼다. 이제 포털의 시대는 가고 생성형 AI들이 여기저기 펼쳐지면서 개개인도 자신이 가진 정보를 팔 수도 있단다. 굳이 예전처럼 포털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 없단다. 개개인 입맛에 맞춘 키워드 선정만 잘하면 검색에 노출이 잘 돼서 자기 이야기를 팔 수 있다고 한다. ChatGPT, Bard, DALL-E 2 등 다양한 생성형 ai와 대화(?)를 해봤는데, 같은 질문이라도 어떻게 말을 해야 정확히 원하는 정보가 나오는지 달랐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얘기를 마치고 운동을 하러 나서며, 나에게
"좀 더 자"
라고 말한다. 나는 나를 배려해서 피곤하지 않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인데 왜 이래라 저래라야."
어쩌면 무안했을지도 모를 남편을 뒤로하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샤워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이와 ChatGPT를 성장시키는 방식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만약 나에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피곤하지 않겠어?' 정도로 말했다면 내 반응이 저럴 수 있었을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네', 에서 그치지 않고 내 컨디션을 판단하고 다음 내 행동까지 결정해서 나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내 몸의 컨디션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나다. 당연히 다음 행보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 이런 질문도 좋네.
'뭐 할거 있어서 일찍 일어났어?' 같은
가온이는 6살이니 충분히 자기 의사표현을 말로 잘할 수 있는 아이임에도 너무 화가 나거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 소리를 지르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어디 가서 부딪히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몸의 언어로 표현할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상상력은 뛰어나서 매일 아침 유치원 가는 길에는 자기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해준다는 구실로 끝도 없는 모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석기시대야. 마을에 용이 나타났는데, 엄마는 빨리 달리는 능력이 있고, 나를 화살을 엄청나게 잘 쏘고, 아빠는 힘이 인크레더블만큼 세서 같이 물리치려고 하는데 하이가 엄마를 찾으면서 울고 있어서, 하이를 안고 형아가 달리다가 넘어져서....."
용이 죽고, 엄마도 죽고, 다시 살아나고, 자기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가 자연의 힘으로 살아나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주는 이야기 꾼이다. 그럼에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형이나 동생이랑 다툴 때가 있다. 나는 언제나 먼저 말로 하라고 타이르는 편이다.
"왜 화났을 때 바로 말로 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어? 소리를 지르는 그 모양새 때문에 너무 무섭고 시끄러워서 하이는 네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없고 '무서우니 도망가야 해!' 라거나 '나도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거야.' 같은 생각 밖에 들지 않잖아. 그러면 서로 대화할 수 없어."
그러던 어느 날은 가온이가 아주 열심히 그래비트랙스로 멋진 구슬길을 만들고 있었다. 벌써 몇십 분을 집중해서 만들고 있는 것을 하이가 와서 구슬을 굴려 보다가 부수고 말았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아빠는 하이를 돌본다고 옆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정말 잠깐 사이 구슬을 굴리다가 손으로 트랙을 짚자 무너지고 만 것이다. 19개월 아이란 그렇게 빠르고 다음을 생각하기 어렵다.
"나는 네가 정말 싫어. 내가 열심히 만든 것도 다 부수고, 네가 먼저 나한테 소리를 지를 때도 많고, 항상 내가 도와줘야 하고, 이불을 쌓아놔도 네가 먼저 점프를 하고, 멋진 탱크 블록을 만들어도 네가 다 부수잖아. 내가 먼저 아빠랑 괴물놀이 하자고 했는데, 네가 방에 들어와서 아빠가 너 다칠까 봐 재미있게 안 놀아 주잖아. 그래서 네가 싫어. 사라지면 좋겠어!!!!"
가온이가 한 말은 놀라웠다. 그냥 아!!!!!!!! 도 아니고 "싫어! 사라져!"도 아니고 구구절절 가슴에 담아뒀던 네가 미웠던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 이유가 그럴만해서 가온이 말을 막지도 못했고 반박도 못하고 그냥 뒀다. 하이는 무슨 일인가 지켜보는 듯하다가 우는 가온이에게 다가가 안아서 토닥하는 시늉을 하고는 돌아서서 자기 책을 펼쳐보고 만다. 좀 진정이 되는 듯하는 모습을 보이자 가온이 곁에 다가가서 먼저 안아줬다.
"우리 가온이가 진짜 많이 속상했겠다. 하이가 자꾸만 가온이가 집중하고 있는 일을 무너뜨려서 화가 났겠어. 그래도 침착하게 잘 말해줬네. 소리를 막 지르지도 않고, 하이를 밀치지도 않았잖아. 그래, 잘했어. 가온이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것을 알았는데도 하이가 만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도 이렇게 침착하게 잘 말해줘. 오빠가 되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했더니 이어지는 말이 더 놀랍다.
"응, 나도 하이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고 가끔 하이랑 노는 게 재미있기도 한데, 이렇게 내걸 부술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친절한 사람이 될 수가 없을 때가 있어. 자, 하이는 이거 가지고 놀아"
하면서 그래비트랙스 몇 조각으로 아주 짧은 트랙을 만들어 구슬 하나를 건네준다. 그러면 하이는 고마워하는 언어로 목례를 간단히 한다.
가온이는 이 말을 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여러 번 '밀치지 말고 말로 해야지!', '소리 지르지 말고 말로 해야지' 하는 말들을 들었을까? 자기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생각을 해봤을까. 다음엔 뭐라고 말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을까. ChatGPT가 많은 사람들이 쓴 글들을 보고 학습했듯이 이번보다 다음번에 더 향상된 대답을 내놓듯이 가온이는 행동을 수정하고 다음에 할 말들을 자기 안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아이들이 부모의 거울이듯이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부모를, 선생님을, 친구를 모방하듯이 ChatGPT가 그렇게 모방을 하고 결과를 도출해 낸단다고 생각한다.
그 인공지능에는 어떻게 검색 키워드를 넣어야 적절한 정보가 딱 튀어나올까를 고심하는 남편이 나나 아이들에게는 그런 고심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그 모양새가 얄밉다. 아이들에게 이불 정리를 시킬 때도
'이불 정리 좀 해.'와 '오늘은 엄마가 하이 치카 시켜주고 가온이는 아직 이 닦고 있으니까 준형이가 이불 정리 좀 해줄래?'는 다르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가족에게 이런저런 사정이 있을 때, 아빠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다르다. 그래서 나는 거절할 수도 있지만 선의를 베풀어 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지시와 강요 VS 선택과 선의라는 큰 간극이 있다. 이 글을 보여주면 안 그래도 말 없는 남편의 입이 다물어질까? 고급진 부탁의 뉘앙스로 바뀐 말투가 나올까. 부디 후자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