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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불편한 사람2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by 세상의 주인공님


유치원을 다녀온 가온이가 은별이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유치원에 와서 잘 놀았고, 자기는 엄마 말대로 말은 안했지만 너무나 하고 싶어서 유치원 선생님에게만 귓속말을 했다고 얘기를 했다. 고녀석. 새로운 소식이 있을 때 재잘재잘 말하고 싶어서 입이 얼마나 근질 거렸을까. 이야기를 듣던 준형이가 엄마 나는 학교에서 이야기 해버렸어. 하며 낯빛이 어둡다. 먼저 말을 꺼냈을 리 없는 준형이를 믿고 무슨 일인데 물어봤다.


준형이 반에 지성이라는 남자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도 바둑 방과후 수업을 들어서 그 사건 현장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자기도 확신을 할수 없었나 보다. 서진이 주장이 옳은지, 은별이 주장이 옳은지 듣지를 않아서 모르니 준형이에게 물었던 것. 준형이는 서진이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중 하나라서 그랬을까? 왜 하필 준형이 였을까.


고작 1학년인 아이가 이런 질문을 받고 엄마가 학교에서 이 이야기 하지 말랬어. 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고 자기 생각을 소신껏 이야기 했다. 예전에도 우리가 준형이 주위를 맴돌며 운동장에서 구름사다리 타기나, 잡기놀이를 하며 제 언니와 놀고 싶은 마음에 준형이를 몸으로 밀치곤 하던 은별이를 준형이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쟤가 자꾸 와서 밀쳐. 흥.


준형이의 대답은 지극히 정상이고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그렇게 착하게 구는 서진이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을 것 같아. 정도로. 잔뜩 긴장해 있는 준형이를 칭찬해줬다.

응 그랬구나. 재성이는 왜 하필 너한테 와서 묻는거야?

내가 서진이랑 친하니까 그러나봐.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그래. 방과후도 안하는 네가 옆에 있어서 궁금했나보다. 이미 경찰이 오고야 너는 갔으니 애들끼리 말할 땐 옆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준형아, 그 말이 은별이네 가족한테 들어가면 곤란해 질 수도 있으니까 그럴땐 나도몰라. 그 자리에 없었어 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아. 그런데 또 너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그 친구를 믿고 그렇게 말 한것도 잘했네. 잘 놀면서 뒤에서 흉보는 친구보다는 훨씬 낫다.


하며 그날 저녁 얘기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월요일 학교를 마친 준형이가 또 새로운 소식을 들고왔다. 준형이와는 다른 반이었던 '우리'가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밥 먹고 있는 준형이에게 와서


야, 우리 동생은 안그랬어.


라고 말하고 쌩하니 갔다고 한다. 오마이갓!!! 맙소사. 재성이란 녀석은 참. 왜 말을 이리저리 전하고 다녀서 사람들 분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하지만 뭐, 1학년 아이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이제 그걸 알고 엄마한테 교육을 좀 받아야지. 우리도 자기 동생 편을 들어 와서 말해주는 멋진 녀석이구나.


그 일이 꽤 당혹스러웠는지 준형이는 부끄러운듯 하면서 있었던 일을 전해줬다. 이제는 내가 내 아이를 챙길 차례다.


그래, 준형이 당황했겠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동생 편을 들어서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당연히 자기 동생을 편들어야지. 서진이랑은 잘 알고 지내지도 않았으니까 그럴수 있지. 이제 엄마가 왜 학교에서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해서는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어. 네 생각과 소신을 이야기 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속상하게 하는 말이라면 더 신중히 생각해보고 꺼내거나 너만의 생각으로 마음에 담아둘 수도 있어.


하고 끝냈어야 하나보다. 내 딴에는 우리네 엄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할머니까지 삼촌이며 좋아하는 음식이며, 직업, 낱낱이 아는 사이에 모르는 척 하며 지나가는 일이 뻔뻔하다고 생각해서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장문의 메세지를 작성했다. 전화로 하다가는 또 아이들이 듣고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더는 이 일을 아이들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전화보다 메세지를 선택했는데, 텍스트는 부연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말이 주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뭐 나는 읽씹을 당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만 남긴채 그 대화창은 2년이 넘도록 아무런 새로운 대화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 뒤로 왜 그렇게나 마주칠 일이 많이 생기는지, 아이들은 2학년도 같은반, 유치원도 같은반이 돼서 서로서로 아직도 잘 지내는 중인데, 그 자리에도 없었고,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던 나와 우리 엄마만 서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공개수업 교실에서, 아이들 다니는 수영장에서, 동네 공원에서 만나도 서로 투명인간이 돼 버렸다. 이렇게 불편할 수가!


공개수업을 하는 날은 그 일이 있고, 방학이 지나 한참만에 학교에 갔던 날인데 나도 모르게 '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해 버린 날인데 우리 엄마도 나와서 지나갈 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번 되돌려 주고는 그 뒤로는 투명인간이 됐다. 이건뭐지? 인사를 그때는 왜 했다가 안하는거지? 내거 먼저 해야하나. 나는 사과를 하고도 읽씹 당했는데 왜 또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하는건지. 내가 내밀려는 손을 쳐다나 볼지 알수 없다.


아이들은 금새 잊고 잘 지낸다. 신기할 정도로 신체 회복 능력이 뛰어난데, 관계 회복 능력까지 뛰어난 아이들!! 나는 답답함에 주변에 우리 엄마와 나를 모두 잘 아는 엄마들에게 이런저런 일이 있어 서로 불편하게 됐다고 알렸는데 모두들 안타까워 하기만 하고 더는 없다. 중간다리 역할까지는 기대도 안했지만 나한테 뭐가 서운했는지 자기가 짐작해 말해주는 이도 없다.


그집엄마 애들 사랑이 넘치잖아. 뭐 그냥 서운했나보지. 내 잘못일까? 얼마나 나를 뒤돌아봤는지 모르겠다. 몇몇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완벽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흠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처음부터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인데 겨우겨우 어울리고 있었나보다.


하고 자위할 쯤 유치원에서 또다른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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