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의 필수조건-억울함을 남기지 말 것.
24년 3월 14일
거실 청소를 함께 했다. 밥을 짓는 동안 거실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정리해 주면 내가 청소기를 돌리는 방식으로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릴 때는 거실에 먼지가 많아서 모두들 안방에 가 있는 게 규칙이다. 방에서 공도 던지고 꺄르륵 웃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양이다. 재미없었으면 벌써 거실에 나와서 이제 거실로 와도 돼요? 물어봤을 녀석들이니.
처음엔 준형이 웃음소리인 줄 알았다. 제법 잘 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거센 울음소리였다.
엄마, 저 아파요. 엉엉엉.
왜~? 어디를 다쳤는데? 말을 해야 알지.
이럴 때 참 답답하다. 우는 아이는 호흡이 가빠서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나는 어서 아픈 부위를 확인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가온이가 저걸로 제 이마를 맞췄어요. 엉엉엉.
어깨운동을 하는 짧은 줄넘기가 바닥에 있다. 손잡이 부분이 플라스틱이라서 한쪽만 잡고 돌리면 무기가 되는 운동기구다.
에구. 아프겠네. 어디를 맞았어? 피 나?
하고 확인을 해보니 빨갛게 부어있지도 않다. 다행인데 저렇게 울 정도는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가온이 얼굴을 쳐다보니 당혹감과 미안함, 그러나 억울함도 포함된 얼굴이다.
가온아, 실수를 했던 일부러 휘둘렀든 간에 이건 가온이가 잘못했네. 이걸 휘둘러서 사람을 맞추면 누구나 아파. 형아가 그 정도로 잘 못한 일은 없을 것 같아. 네가 사과해.
하고 났더니 가온이는 사과를 했고, 준형이는 울음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마저 청소기를 돌리고 이제 거실 나와서 놀아도 돼. 했더니 준형이와 하이는 바로 나와서 노는데 가온이는 울음을 시원하게 터뜨리지도 못하고 끄억끄억 하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려한다. 얼굴엔 이제 속상함, 억울함, 소외감만 남아있다.
거실로 나온 준형이 옆으로 가서 슬그머니 머리카락을 넘겨서 이마가 괜찮은지 본 다음, 제안을 해본다.
가온이한테 가서 형아 이제 안 아프니까 거실로 나와서 같이 놀자 해봐.
(도리도리)
실패다. 흠. 그럴 수 있지. 아직 아프군. 가온이에게 가 마주 앉아 양손을 맞잡고 말을 걸어본다.
왜 그래? 뭐가 억울한데? 얘기해 봐.
그제야 끄억끄억하던 울음이 으앙으로 터진다.
나도 형아가 내 옆구리 때렸을 때 아팠어.
그래서, 형아가 옆구리 때렸다고 너도 똑같이 때려줘야겠다 싶어서 일부러 저걸 휘둘러서 맞춘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먼저 가지고 놀던 공을 형아가 잡으려고 해서 막다가 그런 거야.
그랬구나. 너도 아까 아팠는데 엄마가 몰라주고 그냥 넘어가서 서운해서 말한 거야?
응.
그래. 가온이가 이렇게 엄마를 한대 툭 허벅지를 쳤어. 그렇다고 엄마가 칼 가져와서 한번 푹 찔렀어. 그럼 같은 거야? 공평해?
아니.
그래. 달라. 너무 과한 거야. 내가 한대 툭 치면 너도 한대 툭 치는 정도로만 해야 하는 거야. 지금은 어린이니까 잘못했다 그러고 그냥 끝나지. 나를 한대 쳤겠다. 나도 반드시 갚아줘야겠어. 하고 마음을 먹고 내가 먼저 맞았으니 더 세게 같아주려다 보면 지금처럼 과하게 하게 돼. 만약 어른이었다면 감옥가는 거야. 그게 범죄자야. 사람들을 괴롭히는 범죄자. 가온이가 아까 한 대 맞았는데, 형아를 똑같이 한 대 때려줬더니, 더 세게 때려줬더니 마음이 좋아졌어? 내가 이겼다. 더 세게 되갚아 줬으니 내가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니.
그래. 폭력은 그래. 언제나 후회가 남아. 나도 기분이 나빠지고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고, 상대방도 아프고 상처를 받아. 마음에도 몸에도. 먼저 말로 물어보는 거야. 형아가 나 툭 쳤어. 나도 아프고 기분이 나빠. 나도 한 대 치고 싶어. 하고 말을 해. 그럼 형아가 알고 일부러 그런 거면, 네가 이쪽에 있으니까 내가 가려는 길이 방해가 돼서 비키라고 툭 밀친 건데 아팠어? 그럼 미안해 할 수도 있고, 형아가 네 몸을 친 걸 몰랐다면 내가 언제 쳐? 그런 적 없어. 하고 말하면 네가 다시 말해줘. 아까 형아가 여기 있고, 저쪽으로 가려다가 오른손으로 내 왼쪽 허벅지를 툭 쳐서 내가 밀쳐지면서 아팠단 말이야. 하고 자세히 말해주면 형아도 아, 내가 아까 정말 그런 행동했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가온이를 쳤나 보구나. 하고 몰랐는데 아팠어? 미안해. 모르고 그랬어. 하면 네 마음도 풀리고, 형아가 그래 그럼 한대만 쳐야 해. 하고 말할 수도 있잖아. 서로 말을 안 하면 상대방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몰라.
형아가 너한테 공을 집어주려고 한 게 아니라 혼자 가지고 놀려고 그런 거야?
아니. 모르겠어.
그래. 그러니까 물어봐야 해. 형아가 공을 집어주려고 하는 건지, 그걸 잡아서 너랑 같이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 건지 모르잖아. 집에 공은 아주 많아. 알잖아. 새로 가져오면 되는 거야. 준형아, 너도 가온이게 말을 하고 공에 손을 대야 하는 거야. 가온이는 네 의도를 모르니까 공을 뺏는 건지, 같이 놀자는 건지 모르고 오해하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갈 수도 있잖아. 행동을 막으려고 하다가. 형아랑 같이 놀자~ 하고 말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같아.
이제야 가온이 기분이 조금 풀렸나 보다. 시원하게 울음도 쏟아내고 내 품에 안겨서 마저 더 울어낸다. 준형이는 거실에서 하이랑 로보로보를 하다가 줄곧
하이 이제 그만하고 가온이 오빠도 해보라고 하자. 하며 스위치를 이제 돌려달라고 말해본다.
무릎 위에 마주 앉아 우는 가온이에게 운을 떼기 좋다.
가온이도 가서 해볼래?
응.. (씨익)
이 녀석은 회복도 빠르다. 마음을 풀어주기만 하면 이렇게나 빠르고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핵심은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
오늘 아침 가온이는 천사 같은 오빠였다. 큰 신호등이 저 멀리서 초록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자 혼자서 건너겠다고 뛰어가 버렸고, 하이랑 손을 잡고 걸어가던 나는 다음 초록불에 건너자. 하며 기다려야 했다. 꽤 신호가 긴 신호등이라서 옆길로 걸어가다 다음 횡단보도에서 건너자고 사인을 보내고 하이랑 둘이 걸어갔다. 다음 횡단보도에서 하이랑 건넜더니, 하이가 좋아하는 남천나무 열매를 꽃다발처럼 하나 꺾어서 가온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이가 도착하니 먼 길 오느라 짜증 내고 울까 봐 오빠가 준비했어. 하면서 건네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간지럽고 웃음이 나는 따뜻한 모습이었는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하고 눈에 가득, 깊이 담았다.
이 녀석의 이런 따뜻함이 몇 살까지 갈까? 어른들은 왜 이런 마음을 부끄러워할까? 이런 예쁜 마음을. 내가 더 좋아하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왜 어른들 사이에서는 많이 줄어든 걸까? 커서도 이런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녀석이 저녁에는 또 이렇게 왕왕 운다. 그래, 감정이 풍부해서 울 일도 감동받을 일도 많은 거지. 너의 풍부한 감성을 응원해. 잃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