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 뒈지게 맞고도 잘 컸어.
24년 5월 28일
엄마 어렸을 적 이야기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에게는 엄마는 유치원을 다닐때 이랬다. 엄마는 어릴때 할머니에게 어떻게 혼났어. 이야기를 해주면 배꼽이 빠져라고 웃는다. 웃고 싶을 때 우리 아이들이 자꾸만 해달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날은 삼촌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혼자 있었지. 그런데 엄마가 삼촌을 데리고 학교에 처음 가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에 하지도 않던 화장을 하고 가신거야. 얼굴에 뭐 하얗게도 바르고 입술에 빨갛게도 바르고, 엄마가 그렇게 하는게 예뻐 보인다기 보다는 신기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안하던 일을 하신 거니까. 그래서 엄마도 그 화장품을 가지고 거울을 보면서 놀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엄마 어렸을 적에는 동네 친구들이랑 친구네 집앞에서 가서, 00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나와서 같이 노는 그런게 있었어. 마침 진숙이라고 앞집 친구가 놀러온거야.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 그래서 진숙이랑 같이 엄마가 하신대로 따라서 해봤지. 얼굴에는 하얗게 분칠을 하고 톡톡톡 두드릴때 퍼지는 하얀가루와 그 냄새가 참 재미있잖아. 뭔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한다는 재미도 있고.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데 엄마는 어쩜 입술에만 쏙 잘도 발랐을까? 내가 해보니까 엄청 두꺼운 크레파스가 너무 잘 발라지는거야. 그래서 입술주변까지 모두 묻어버렸지. 그렇게 하는데!!! 말소리가 들려오는거야.
엄마랑 오빠가 집 가까이에 다가오는 목소리가. 그때는 다들 주택에 살아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으로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잘 들렸어. 엄마랑 오빠가 벌써 오는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때부터 얼른 씻어내야 한다. 안들키려고 일단 화장품을 정리하고서 화장실에 가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들고 한손으로는 얼굴에 묻히면서 마구 비벼대는데, 왠걸! 화장품이 잘 안지워지는거야. 얼굴에 잘 달라붙어 있으라고 유분기가 있다는걸 그때는 몰랐어. 비빌수록 번져가기만 하지 전혀 닦이지가 않아. 비누로 해야 겠는데 다시 화장실을 가면 집에 들어와서 손을 씻는 엄마, 오빠랑 마주칠 것 같은거야.
그런데, 화장실을 들렀나 나온 엄마가 화장품을 보신거지. 내가 아무리 정리를 했더라도 7살이 정리한건 티가 났던 모양이야. 바닥에 분가루가 날리고 있고, 사실 거울에도 립스틱으로 스윽스윽 그림을 그려놨거든. 닦아도 뭐 깨끗이 닦일리가 없지. 화장지로 그냥 문지르는게 다 였을 텐데. 그걸 보신 엄마가 사태를 눈치채고 "이놈의 지지배가! 000 어디있어?!" 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나랑 진숙이는 계속 바가지를 한 손에 들고 이 방으로 마루로, 저 부엌으로 돌아다니면서 엄마 목소리를 피해 도망다녔지! 그런데 글쎄 눈에 들어간 물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순간 내 눈앞에 엄마가!!! 뜨아!!!! 그때 얼마나 기겁을 하고 놀랐는지 몰라. 엄마 얼굴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웃기지 않았을까. 내 얼굴도 그렇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게 엄마는 웃겼을 것 같은데, 내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많이 혼날지 아주 두근두근 두려웠어. 바가지도 두고 진숙이랑 같이 집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데 엄마가 수수빗자루를 들고 쫒아오면서 뭐라하셨어. 거기 안서! 등짝도 한대 맞은것 같고. 결국에는 뭐 붙잡혀서 둘이 눈물 쏙 빼게 혼이 났지.
어릴때 일인데 너무 강력한 기억이라서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나봐. 진숙이도 같이 혼나고 나서 많이 울고 집에 갔어. 걔는 나보다 더 눈물도 많고 강심장이 아닌 친구였어. 훨씬 여성스럽달까? 엄마가 나만 혼낼줄 알았는데 친구도 같이 혼낼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날인것 같아.
그리고 오빠도 내 얼굴을 보고 경악하는 표정이었어. ㅋㅋㅋ 나중에는 오빠랑 얘기도 했어.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서 엄마한테 아주 뒈지게 맞았지. 그때는 다들 그렇게 맞고 컸어. 잘못하면 맞는거다. 그러면서 아는거지. 아..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엄마가 아주 화가 많이 났으니 날 때려도 할말이 없다. 그러고는 또 잘 지내. 나도 수긍하는거야. 내가 맞을짓을 했지 뭐. 하고 . 지금 애들은 어디 그래? 준형이 벌써 학교에서 아동학대니 뭐니 소리만 질러도 정서학대, 신체학대, 언어폭력 이런말들 하잖아. 아이들이 자기가 해내야 하는 의무나 예의, 예절을 먼저 배우기 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먼저 배우니까 예의없이 자기 권리만 내세우는것 같아. 자기가 먼저 남에게 잘 해야 남도 나에게 이렇게 할 것이다 라는 기대를 할수 있는 것이잖아. 근데 다들 나한테만 잘하라고 먼저 배우잖아. 뭐만 해도, 어? 지금 나한테 이렇게 했어? 나 아동인데, 이러면 아동학대야. 더 잘 대해줘. 이렇게 자기한테만 잘 하라고 하지.
나는 지금도 할머니랑 잘 지내잖아. 그때 맞은게 억울하다거나 그러면 안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엄청 맞은 기억이 나거나 아픈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거든.
이렇게 얘기를 하면 아이들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는다. 그리곤 빗자루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냐, 등에 상처는 났냐, 그러고 어떻게 잤냐, 울었냐 등등 그 상황을 더 자세히 자기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세세한 질문들까지 곁들인다. 그렇게 잘 기억나지 않는 희미한 30년전 이야기를 해주고 나면 그제야 요녀석들이 자기들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먼저 건네준다. 그래? 그럼 엄마 내일 안하던 화장품 좀 열어볼까? 하면서 같이 해보자고 한다. 에이.. 하라고 하면 시시한 법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렇게 할머니에게 혼났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너무나 착한 사람인데 아이를 그렇게 때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 문화, 이런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오래돈 영화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아이들에게 곁들이는 이야기는 어릴 때 그렇게 혼났어도 엄마는 지금 할머니를 사랑한다는 것. 한두번 혼나는 일로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커서 두고두고 얘기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겨난 것 뿐. 어릴 때는 작은 일도 크게 번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러면 어떻게 하지?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아이들은 두렵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싸우다가 이혼하는 것인가? 아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을 길러주고 싶을 때, 그런 이야기들을 종종한다. 누구나 갈등을 빚지만 곧 또다시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의견이 잘못됐고, 그 순간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