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의 이야기- 꿈을 가진 자
24년 5월 24일
준형이를 키울 때 공동육아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주민센터에서인지 서울시에서였는지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최소 인원 6명을 충족하고 사업성 평가를 받아서 당선이 되면 활동금을 지원해주는 내용이었다. 첫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라서 재미도 있고,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말이 통하고 공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호작용이 아이보다는 잘되는 어른과의 어른다운 대화가 절실했기에 이 사업을 하면 분명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시어머니께 아이를 2~3시간 정도 맡겨가면서 사업 설명회pt를 다녀올 만큼 열정적으로 진행을 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남았다. 6개월간 공원에 가서 또래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있기만 하면 주저없이 말을 걸어 함께하자고 엄마들을 모은 덕분이었다. 대부분 내 또래였고, 더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워킹맘보다는 전업맘이 많았다. 돌이 지난 즈음이라서 아마도 그때도 아이를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엄마였던 것 같다.
JJ는 그때 만난 J의 엄마다. J는 준형이보다 4개월 정도 빠른 생일 동성친구였다. 첫 만남에서 jj는 사교성도 많고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 나랑 맞나 싶었다.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면서 아이가 잠들면 육아서를 엄청 읽고, 블로그에 아이를 양육하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는 열혈 엄마로 보였다.
아이를 키워두고 사회생활을 어서 하고 싶은 나와는 달리, 바깥일을 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밖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어려워했는데, 어떻게 엄마들은 잘 만나느냐고 묻자,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는 즐겁게 얘기하고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다른 것을 고려해야 해서 힘든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왕래하기도 하면서 물놀이장을 알게되면 공유하고 함께 하자고 연락해 만나서 노는 동네친구로 관계를 이어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취학 전 학교를 다닐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을 다녀서 함께 할 수 없게 됐었는데, j와는 관계가 이어졌다. 어쩌면 아이들 보다도 jj와 나 사이에 대화가 편하고, 내가 가진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한마디로 요약하며 정곡을 찌르는 모습에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jj의 남편은 어느날,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서 쉬고 싶다고 선언했고 jj는 받아들였다. 회사에서는 꽤 인정받아서 회사 홈페이지에 얼굴을 알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본인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하면서 업무를 해내고 있는 상황이었던 지라 이해를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잠시는 2년으로 길어졌고, jj는 사주보는 방법을 배우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결국에는 본인이 가진 자격증으로 취업을 했다.
이것으로 그 집안의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 했었다. 바깥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집안에서 살림을 어떻게 했길래 모아둔 돈이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다그치며, 가계부를 적어서 가져오라던 그런 사람이었으니 살림을 아주 잘 해낼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이 직장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집안일은 분담해서 해야한다고 하고, 아이가 엄마를 찾으니 엄마몫의 돌봄을 해야 한다고 하니 jj는 힘들어했다. 뿐만 아니라 jj를 가장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았다. jj는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남편에게 존대어를 사용했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집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항상 "식사 뭐 할래요?"가로 존대어를 남편에게 하는 jj가 나는 불만이기도 하고 좋아보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나이차이가 더 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존대어를 한다고 해서 상대의 위엄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동급이 되므로 서로에게 평어를 썼다. 친근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jj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jj가 전업주부로 살 때도 고민하고 알아보곤 했는데, 경제력이 생기니 j를 데리고 혼자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다. jj는 친정부모님에게 조차 힐난을 받으며 이 굳은 각오를 실행했다.
그즈음, jj의 프로필은 이랬다. '용기란,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그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jj는 정말로 나보다 겁도많고 걱정도 많고, 그래서 혼자서 아는 배경 지식으로만 아이를 키우지 못해서 계속해서 육아서를 찾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노력파였지만 한번 결심을 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뚝심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래도 저래도 내가 헤쳐나갈 길은 있을거야, 라는 생각 때문인지 결심을 하고도 다른게 눈에 띄면 또 이래볼까?도 생각해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jj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나갔다. 성인 adhd 확진을 받아 약을 처방받아 먹고 세상을 더 또렷이 보게 됐으며,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살려, 지금처럼 남 밑에서 일하는것은 줄이고, 혼자서 창업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눈썹 문신을 배우러 다녔다. 요즘 최고 유행한다는 헤어 스트록 방식을 배우는데, 실습해볼 살이 없다고 자기의 허벅지에 연습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 얘기를 할 때의 jj눈빛이 기억난다. 눈썹 문신으로 우리나라 다 휩쓸고, 다른나라에 가서 강연도 하고 완전히 지금 스승님처럼 잘 해낼 거에요. 하는 희망에 찬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꿈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꾸고 있냐 아니냐이구나. 하고. 단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점에서 jj는 벌써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학창시절 어린 아이들이 왜그렇게 빛이 나는지 생각해 보니 사회에서 때묻지 않고 동심을 유지한 채, 크든 작든 자기들만의 꿈을 꾸고 있는 점. 미래가 불투명 하기에 어떤 꿈이든 꿀수 있는 그 망망대해, 허허벌판 같은 것이 좋은 것이구나. 싶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 더 내가 할 일을 찾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이들은 내 손을 떠날만큼 자랐으니 나도 내 길을 가고싶다고. 저렇게 눈을 반짝하게 빛내면서 내 꿈을 위해서 살고 싶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모한 jj가 참 부럽다.
한때, jj의 꿈은 자신이 이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j를 키우면서 처음에는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아이를 내가 믿고 지지하고 공부해서 알게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온전히 성숙한 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것. 그래서 자신의 행복이 곧 j의 행복이 선행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행복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j도 부담스럽고 jj도 나중에는 어떤 허망함이나 상실감을 느낄 것 같았고, 인생의 행복은 사실 순간 순간 찾아오는 찰라 같은 것이라서 자기가 스스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추억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소환할 때도 있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던 jj의 꿈이 j에서 jj자신으로 옮겨왔다. 이제 자기 스스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겨서 그것을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남편의 빈자리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일들에 가끔 호출을 당하지만, 오지랖 넓은 내 성격에 딱이다. 이사갈 집을 고르는 일, 집주인에게 수리 요청을 하는 일, 부동산에 이런저런 요청을 하는 일 등등 jj가 나에게 하는 요청이 나는 반갑다.
jj 가 이대로 더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응원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