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교에서 내 아이가 다친다면 나는?

낮아진 학교문턱

by 세상의 주인공님

24년 6월 12일


가온이 다리가 부러져서 두달을 학교에 가지 못했더니 사정이 궁금했다. 학교는 요즘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어떤 소식이 있는지 싶던 차에 근처 공원에서 물놀이를 온 준형이 친구 엄마들 셋을 만났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 옆에서 엄마들은 물놀이 쉬는 시간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수다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놓고 간 짐 속에서 깁스가 보여, 마침 가온이도 비슷한 것을 했던 지라 왠 깁스에요? 물었더니 재우 것이라고 한다. 재우는 눈이 아래로 축 쳐져서 사람 좋은 웃음을 자주 짓는 인기많은 남자아이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나면 등나무 아래 계단에서 아이들끼리 잡기도 하고 쫒기도 하며 노는데, 그 때 어떤 여자 아이들이 재우를 잡아당기다가 넘어져 팔꿈치 쪽에 골절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아! 얼마전에 가온이가 걷기 전 깁스를 푼 기념으로 유치원에 인사를 갔을 때, 재우가 절뚝 거리면서 학교를 나오던 모습을 봤는데, 그날이었나 보다. 당일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아이가 다쳤구나, 하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병원에 가서 골절이라는 말을 들으니 꽤 마음이 안좋았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재우를 인계할 때 구급차를 부를까요? 하는 정도로 걱정을 해줘서 이게 그럴만한 일인가? 아이가 혼자 걸을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갔더니 골절까지 가버린 것이다.


재우의 경우는 단순한 찰과상 정도가 아니라 골절까지 되고 보니 상대 아이쪽에서 사과 전화라도 왔겠거니 마냥 생각없이 질문을 던졌다. 일단 당일에는 골절이라는 것을 담임 선생님도 몰랐고, 후로도 연락이 없었으니 지금 담임도 모르고 아마도 상대 아이도 모를 것이라고 한다. 재우 엄마가 조금 울컥한 기분이 들 수 있겠다 싶다. 아이들도 이제 전달력도 좋고, 자기 면피를 하려면 내가 혼자 넘어진 것이 아니라 누!가! 잡아당겨서 넘어지다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상대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일텐데.


더 놀라운 것은 이번이 처음 골절이 아니라 얼마전에는 늑골에 금이 가서 또 한동안 누워지내며 조심을 했더란다. 평소 큰소리 내지 않고, 재우만큼이나 좋은 인상으로 인사를 잘하며 두루두루 얘기를 하고 다니는 재우엄마는 별말없이 아직은 지켜보지만 조금 안좋은 감정인것 같다. 내 애가 다쳤는데 좋은 마음인 부모가 어디 있을까.


건우엄마는 또다른 얘기를 해준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지안이가 넘어져 긁혔는데 다른반 남자아이랑 그런거란다. 지안이 엄마는 남자아이들끼리 놀다보면 그럴수 있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더는 안다쳤으면 하는 마음에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 주의 시켜달라는 전화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 3학년 전체에 '점심시간에 축구금지'령이 내려졌다.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내 눈앞에도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극단으로 간다면 아이들은 점점 제제가 심해지고 학교에서도 할게 없어진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게임을 하는 모습보다는 축구가 훨씬 좋은 모습이 아닐까? 문득 내가 학교에 다닐때 학교에서 다쳐왔다고 우리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했을까? 라고 생각해봤더니 전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학교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아이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거나 알려야 할 상황이 있으면 하이클래스라는 톡을 이용해서 전화 및 문자로 상황을 알리고 연락을 할 수가 있다.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혹시나 학대하는 선생님이 있을 때를 대비한 일일까? 그 선생님을 막자고 이런일이 생겼고, 진상 학부모를 막고자 이제 학교는 출입증이나 방문증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학부모 행사를 할 때나 학교에서 초대를 할 때가 아니면 누구도 학교에 방문하지 못한다. 학부모가 아닐 수도 있고, 교사와 학생의 수업시간을 지켜주기 위한 방침이리라.


그에따라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보안관 선생님을 정문과 후문에 배치해야 하고, 담임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방식으로 지식을 전달할까? 하고 수업계획을 짜야할 시간에 학부모를 상대해서 상담을 해야 하기도 한다.


재우의 골절에 나도 모르게 상대방 아이에게 사과 연락이 왔어요? 라고 반응한 것처럼 어쩌면 나도 준형이가 학교에서 다쳐오면 상대방이 누군지 캐내고 그 아이를 미워하게 될까? 그렇다면 내가 선생님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상대방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사과를 하라고 했다면 서로 연락처를 주는 순간 내 손을 벗어난 성인 대 성인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을 떠안고 가야한다. 잘 풀린다면 다행이지만 원만한 대화가 결렬된다면 교육청으로 연락이 들어갈까?


절차가 훨씬 복잡해졌다. 그래서 119를 부르자고 한걸까? 차라리 학교에서 나갈 때 바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가게되고 거기서 골절을 진단 받았다면 학교에서 상해보험으로 처리를 하고 누가 이런일을 일으켰는지 공론화가 될까?


일이 커지는 일은 순식간이고,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을법한 장난에도 부모가 나서서 일을 키우느냐 마느냐의 결정에 따라서 너무나 일은 확대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30년 전과 비교해서 그때가 맞았다고 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의 철학에는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이 곧 진리였고, 집에서는 부모님 말이 진리였으므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부모가 관여하는 일은 월권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요즘 준형이 반 알림장에 친구의 몸에 손대지 않기, 신체접촉이 있는 장난하지 않기 등의 알림장이 왔던 것을 준형이에게도 보여준다. 그리고 재우가 다치게 된 경위를 얘기해 주고 혹시나 네가 누구를 잡아당기려거든 그 아이가 너에게 뒤로 폭 넘어져도 버티고 잡아줄 수 있을 때 하고 누가 잡아당기는게 싫으면 강력하게 놓으라고 말하고 뿌리치라고 했다. 아직까지 그런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학기초에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전화에서 느꼈던 늬앙스가 떠오른다. '딱히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란걸 알면서도 무슨 상담까지 요청을 하셨어요?' 같은 뉘앙스로 전화를 주셨다. 나는 이 상담이 예전의 가정방문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학부모는 아이에게 얼마나 적절한 양육환경을 제공해 주는가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했던 가정방문만큼이나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어떤점을 중요시 생각하고 대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화? 랄까. 1,2학년 때 여자 담임 선생님일 때는 첫 멘트가 어머님, 준형이 집에서도 잘 하죠?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시죠? 하며 말을 건네주셔서 으레 당연한 상담이라고 생각했는데,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왜 이런 자세일까? 공개수업때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셨는데. 라고 생각을 했다.


오늘 그 의문이 조금은 풀린것 같다. 지금 담임 선생님은 하이클래스도 이용하지 않고, 용무가 있으면 아이를 통하던지 교무실로 전화를 해야 하는 방식. 바로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분이시다. 나에게 접근하려면 교무실로 연락하는 수고와 심적 부담을 가지고 연락을 하세요! 하고 담임선생님의 문턱을 좀 높인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고 싶지, 학부모에게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인것 같다. 엄마들과의 대화와 재우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선생님을 좀 다르게 봤을 것 같다. 얼마나 많이 겪어보시고 이런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건지 이 시대의 선생님들이 안타깝다.


혹시나 나중에 준형이가 다치더라도 -그런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다쳤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 학교를 데려가서 탐정놀이를 하지는 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 어릴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