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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탓하지 마! 네 선택이야.

by 세상의 주인공님

평소와 조금 다른 날이었다. 준형이가 무릎을 다쳐서 일주일 정도는 아무런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학교에서 하는 체육 시간에도 앉아있기로 하고, 방과 후 수업인 피구에도 불참하고, 요즘 평영을 배우고 있는 수영학원에도 가지 않기로 한 날이다. 더구나 금요일에는 수업이 4교시까지만 있어서 12시 40분이면 하교해서 집에 1시면 도착한다. 남편은 자동차 검사를 하러 가기로 예약한 날이라서 근무를 마치고 자동차 검사장에 가야 했고, 나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점심 약속을 한 날이다. 다행히 어린 하이가 있는 내 집 주변으로 친구들이 와주었고, 걸어서 식당에 갈 수 있었다.


12시에 만나 쌀국수를 먹고, 마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카페에 갔다. 즐겁게 대화를 하는데 1시에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집에 왔어."

"응, 그래 엄마는 지금 쌀국수 먹고 있어. 집 근처에 똣 이라고 전에 길 가다 본 적 있지? 거기야."

"응 알겠어."

"그래 간식 먹고 드라마 한 개 보고 있어."


이제 2학년이 된 준형이가 '그리지와 레밍스'만 보던 그 녀석이 넷플릭스의 000님이 보던 작품이라고 나온 목록에서 내가 보던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보더니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첫 화를 같이 봤다. 그랬더니 펜싱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면서 그 드라마를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내 모습을 생각하면, 원래 9시는 넘겨도 10시가 되면 너무 졸려서 잠들곤 했는데 어릴 적에는 정해진 시간, 요일에만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수 있고, 내가 챙겨서 봐야 하는 그런 수고스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10시까지 기다렸다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고 설레는 기분으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됐다고 상상하는 미래의 나를 그려보다가 잠들곤 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라지만 그때의 그 뻔한 메시지 전달 방식은 꽤나 건전하고 희망적이어서 어린 내가 봐도 무방했다.


스물다섯스물하나는 내가 이미 봤고, 나도 기분 좋게 봤기에 드라마를 봐도 좋다고 허락했었다. 오늘같이 하교를 같이하지 못하는 날이 흔치는 않아서 드라마를 한편 보고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아침에 약속을 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차를 마시고 정말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규칙을 잘 지키는 준형이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드라마를 두 편 보지 않고 딱 한편만 보고 자기가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있었다. 엄마~~~ 하면서 안겨드는 준형이는 애교가 많은 아이다. 친구들을 만나 기분전환이 많이 된 나는 밥도 하고, 고기도 삶고, 묵은지도 꺼내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내고 저녁 준비를 해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마침 남편이 4시까지 유치원에 있던 가온이도 데려오고 모두들 식탁에 앉아 즐거운 식사가 시작됐다. 하이도 잘 집어먹을 수 있는 삶은 고기라서 씻은 김치에 스스로 밥을 먹는다.


준형이와 가온이가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다가 삶은 고기에 내어둔 새우젓을 하나 얹어 먹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이거 많이 넣으면 짜~. 그만 넣어. 한 마리만 넣어도 충분해."


하면서 김치 한 조각 새우젓 한 마리를 얹어 먹는데, 가온이가


"아니야.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


하면서 대화가 이어진다. 짠맛을 느끼니 생각이 났는


"엄마, 소금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하기에 나는 두 달 전에 체험했던 염전이 생각나서 한 말인 줄 알고


"바닷물을 말려서 소금을 얻지."


라고 대답했다. 가온이는


"그럼 소금은 어디서 생기게?"


했더니 준형이가 가로채 대답을 한다.


"바닷속에 소금 나오는 맷돌이 있어서 그걸 굴리면 나오는 거야."


아이코 이런. 과학책을 많이 읽어서 이런 동화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그만 준형이 대답에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얼른 덧붙였다.


"딱 2학년 다운 대답이군."


"그럼 소금이 어떻게 생기는데?"


반발심이 들었는지 준형이가 묻는다.

"지금은 밥을 먹는 시간이니까 밥을 다 먹은 사람만 그 답을 알 수 있어."


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이 귀염둥이들은 장난을 치고 있다. 3번째 경고를 덧붙여


"밥 먹는 시간에는 밥 먹기로 했지."


하는데도 장난을 여전히 하고 있다. 이제는 딱 밥 먹어야지 생각을 했는지 조용해진 그때 가온이가 엄마 몰래 귓속말로 형아에게 뭐라고 속삭인다. 준형이가 참지 못하고 뭐라고 응대를 했는데, 내가 그만 큰소리로 말하고 만다.


"지금 몇 번째냐! 밥 먹는 시간에는 밥을 먹는 일이 주된 일이고 이게 해야 할 일이잖아."


했더니 그새 준형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가온이가 먼저 말을 걸잖아." 한다.


"억울해? 너는 밥 잘 먹고 있는데 엄마가 혼내니까 억울해? 지금 밥 먹는 일 말고 다른걸 한 사람은 너야. 가온이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 간에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에 밥을 먹는데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너였고, 처음 잘못은 가온이가 했지만. 지금은 네가 한 행동이잖아. 남탓하지 마. 내가 결정하고 행동한 네 선택이야."


그러자 눈물이 폭풍 흐른다. 너무 격한 감정으로 준형이에게 쏟아내듯 말을 뱉어냈다. 준형이도 느꼈겠지. 밥을 다 먹고 모두가 침착해졌을 때, 다시 얘기를 꺼내봤다.


"준형아, 이리 와 봐."

"네, 엄마"

"아까는 엄마가 너무 흥분해서 말했지? 엄마가 여러 번 식사예절을 지키면서 밥 먹으라고 했는데도 계속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화가 좀 쌓였었나 봐. 참지 못하고 너에게 큰소리로 버럭 화를 내면서 말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한번 더 생각해 보고 네가 정말 잘못한 것인지 생각해 보고 말할게."

"아냐, 엄마. 나도 생각해 봤는데 엄마 말이 맞아. 그때는 내가 가온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미안해."


아. 이것은 진심인가 학습된 반응일 뿐인가. 우리 아들은 너무나 교과서적인 대답을 해줬다.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리고는 소금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해줬다. 이 모든 세상에 자원은 한정돼 있고, 빗물이 구름에서 떨어진 것이듯 , 또 그 구름은 바다나 나뭇잎들의 증발에서 만들어져 순환체계를 갖추듯 소금도 그러하다고. 하수구를 통해 모두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라 얘기를 해주며 덧붙여봤다.


"인간도 마찬가지야. 언제나 나는 물방울처럼 하늘나라로 가겠지. 그럼 또 너네가 남겨놓은 자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겠지. 너희들 몸이 흙에서 왔듯이, 흙이 키워낸 식물을 먹고, 그 식물을 먹은 동물도 먹고, 너네 몸도 다시 흙으로 돌아가. 그러니 이 세상 살면서 후회 없이 실컷 즐겁다 가. 대신 남도 즐겁고 싶을 테니까 피해를 줘서는 안 돼. 자유란 그런 거란다."


하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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