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이가 수영장을 가면서 그랬다.
"엄마랑 둘이 손잡고 가고 싶은데 유모차를 밀어야 해서 싫다"라고.
"나에게도 동생이 아니라 형이 있다면 형은 알아서 다닐 테니 엄마랑 단둘이 갈 수 있을 텐데."
이런 종류의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뭐라고 그때그때 맞게 설명을 갖다 붙이곤 했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말해본다.
"하이는 지금 집에서 자고 싶어. 집에 있었다면 이렇게 찬바람을 맞을 일도 없고 덜컹 거리는 유모차에 앉아있을 일도 없었을 거야. 준형이 어릴 때는 너 졸리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서 엄마랑 같이 누웠어. 그런데 하이는 자기 몸 컨디션에 맞추지 못하고 엄마가 따라다녀야 하는 오빠 스케줄에 맞춰서 졸리면 잠들고 갑자기 유모차에서 들려 올려지면 잠이 깨기도 하고 그래. 비 안 맞고 싶은데 이렇게 너 데려다주러 외출해야 하잖아.
네가 만약 동생이었다면 이런 일들을 겪고 살아야 할 거야."
"..."
"또 얼마 전에 그랬지? 나는 친구가 동네친구, 유치원 친구, 학교 친구 많은데 가온이는 유치원 친구밖에 없다고. 왜 그런 줄 알아?"
"왜 그런데?"
"너 하나 키울 때는 네 친구 사귀게 해 주려고 엄마가 공동육아로 엄마들 모집도 하고 매일 보라매 공원에 데려가서 또래로 보이는 애들한테 먼저 말 걸어서 친하게 지내게 하고, 놀러 다니게 해 줬는데 가온이는 태어나자마자 매일 너 유치원 다니는데 따라다녔어. 엄마가 너를 유치원까지 데려다줘야 해서. 또 1시 반이면 데리러 가야 하니 등원했다가 집에 와서 밥도 먹고 끙가도 닦이고 하다 보면 공원 가서 놀 시간이 없으니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 들어가는 거야.
동생들의 희생도 있었어. 그럼 엄마가 준형이만 낳지 동생들 낳지 말걸 그랬나. 싶지? 하지만 너도 엄마가 집안일해야 하고 몸이 힘든 날에 너랑 같이 못 놀아주면 어때? 가온이가 보드게임도 하자 그러고 형아가 제일 좋다 그러면서 껴안고 뭐든 형아편만 든다 그러면 기분이 좋지? 그렇게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더 많아진 거야. 그래서 우리는 서로 희생하기도 하고 양보도 하지만 또 사랑도 더 받으면서 어우러져 살아가지."
그제야 준형이가 한마디 하고 깨우침을 가져간다.
"동생들도 많이 희생하네. 하이는 진짜 힘들겠다. 엄마 다니는 데로 다 따라다니느라."
"그렇지? 그래서 하이는 체력이 좋은 것 같아. 먹을 것을 지금 먹지 않으면 없다! 외출하면 먹을 건 없다! 어서 먹자! 해서 잘 먹고 나가면 오빠들 쫓아다니느라 짧은 다리로 엄청 빨리 달리잖아 ㅎㅎ"
이날 이후 준형이는 정말로 동생들에 대해서 깊이 느낀 것이 있었는지 수영장에 가는 길을 언제나 엄마와 함께 걸어가길 원했었는데 그 요구가 쏙 사라졌다. 동생들과 엄마가 집에서 편히 있게 하고 자신만 험난한 외출을 한다. 기특하고 고맙다. 때로는 나도 그런 생각에 미안한 한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준형이 또래 중에 외동인 아이들이 꽤 많아서 언제나 엄마가 그 한 아이에게만 집중해 주고 물질적 지원, 시간적 지원, 체력적 지원을 모두 쏟아주니 그 아이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형이가 짠해질 때도 있었다. 아이는 어쩌면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이렇게 파고드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이럴 때 내가 아이와 동조돼서 같이 약해지면 준형이 머릿속에 내 생각대로 동생들은 내가 받을 사랑과 관심을 나눠갖게 된 귀찮은 존재일 뿐이야라고 생각하게 되겠지. 받아들여줘서 고맙다. 2학년이니까 더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의 관심보다는 또래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겠지. 너의 성장을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