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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y Feb 22. 2023

미안해요 바텐더님이 만든 칵테일 맛 없어요.

바텐더로 근무하다 보면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꼭 듣는 질문입니다만, "뭐 제일 잘 만드세요? 제일 잘 하시는 걸로 만들어주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저는 항상 "못하는 거 없이 전부 잘 합니다!"라는 다소 겸손하지 못한 대답을 늘 합니다만, 이것은 자만감이 아닌 정말로 다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자신감입니다ㅎ...

때로는 이렇게 겸손하지 않은 대답으로 주문한 손님에게 믿음을 주지만 이것은 실제로 말뿐이 아닌 실력으로도 자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다 잘합니다!!" 라고 했다가 맛이 없거나 특정 칵테일에 대하여 이해도가 부족하여 주문자에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 칵테일을 만드는 것보다 창피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일 잘하는 걸로 만들어주세요! 라고 해도 대략적으로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여쭙고 좋아하는 맛에서 가장 잘 만드는 칵테일을 선정하여 만들어드리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주문자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자신이 제일 잘하는 알코올이 엄청 강한 칵테일을 만들어 제공했을 경우라면 주문자는 속으로는 "정말 잘하는 걸 만들어줘서 고맙긴 한데 이건 좀...ㄱ-"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만드는 음료에 자신과 확신에 차 있는 편이기에 "드셔보시고 맛없으면 돈 안 받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냐구요?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ㅎㅎ

Bar는 나무 테이블을 가로질러 마주 보고 있는 공간으로써 손님이 한 모금 마셔보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으로 이 음료가 맘에 드는지 아닌지 대번에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음료의 맛이 정말 맛깔나다면 눈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ㅇ_ㅇ!!) 이런 표정을 짓기 마련이죠,

하지만 맛이 없는 경우에는 표정이 음....이 칵테일에 무엇이 들어갔을지 스스로 분석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맛이 어떠세요? 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대부분은 "맛있어요" 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하지만 맛있어요의 톤이 하이냐 로우냐가 중요한데, "정말 맛있어요!!"는 정말 마음에 드는 맛인거고 "마..맛있어요;; 하...하..." 라고 입꼬리만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면 맛대가리가 없을 확률이 99.9% 입니다.

정말 음료를 못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음료의 완성도가 높아도 그건 주문자의 취향에 맞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알콜에 쥬시한 스타일의 부드러운 칵테일만 마시는 손님에게 너무 알코올이 드라이한 칵테일을 내주면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내가 이 손님의 음료 취향을 정통 클래식으로 길들이겠다!! 라는 생각은 다소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맛이 없어도 면전에 대놓고 "맛없어요"라고 바텐더 심장에 대못을 치는 말을 잘 안 합니다. 대신 알코올이 강하다거나 혹은 너무 달다거나 하는 피드백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긴 음료를 발견하고 맛이 없으세요? 라고 물어보면 "제가 좀 취한거 같아서..."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 멘트를 또박또박 발음하면 200% 확률로 안취했을거라 확신합니다.

그냥 그게 맛이 없는거라고 판단해도 됩니다.


이렇게라도 말해주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정말 퇴장하고 난 뒤에 자신이 만든 칵테일이 거의 줄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면, 솔직히 그 남긴 잔을 들고 그대로 달려나가서 왜 때문이죠? 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싸늘하게 미지근해져있는 남은 칵테일을 테이스팅 해보며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다면 다행이지만 본인 만든 음료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더 찝찝해지기 마련입니다.

앞에 있는 바텐더를 100% 신뢰하고 모든 걸 맡기고 무엇을 만들어주던 나는 괜찮다!! 싶은 분들은 바텐더님이 제일 잘하는 걸로! 라는 주문을 해도 괜찮습니다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는 취향을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면전에 대놓고 피드백을 주기 미안하거나 귀찮아서 그냥 퇴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대놓고 말해주기 미안하면 코스터나 영수증에라도 그 이유를 짤막하게라도 써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미안해요. 맛이 없어요ㅎㅎ;;"....이렇게 라도......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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