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가게 근처 식당으로 저희 바텐더 여직원 1명과 식사를 하고 나오며 식당 아주머니께서 저희에게 어디서 일하냐고 물으시더군요,
저희 여직원이 유니폼에 앞치마를 메고 있었더니 궁금하셨나 봅니다. 저는 5,60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 물어보시면 저 같은 경우에는 간단명료하게 '음....술집이요-_-ㅎ' 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하려는 찰나에 저희 여직원이 디테일하게 칵테일을 판매하는 곳인 Bar라는 곳인데 뭐 구구절절 칵테일바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역시나 제 예상대로 어르신은 가보신 경험이 없으신지 이해를 전혀 못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식당에서 나오면서 그냥 술집이라고 하고 빨리 나오면 되지 굳이 다 설명하고 있냐고 했더니 여직원이 하는 얘기가 여자가 그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이상하게 오해를 하는 눈으로 본다고 하더군요
제 경험상 칵테일 바라는 곳을 자세하게 설명해 봐야 사실 어르신들께서 그냥 짧게 '아...'라고 감탄사만 내뱉을 뿐 그 뒤로 별다른 말씀을 크게 안 하시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술집이요'라고 얘기했을 때 뭔가 더 커다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올해 졸업한 제법 똘똘한 여제자 한 명을 칵테일로 매우 유명한 업장에 바텐더로 취업을 시켜놨더니 부모님께서 어디 여자가 밤에 술 파는 일을 하냐고 당장 짐 싸서 내려오라고 해서 얼마 일을 못하고 퇴사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저도 바텐더를 처음 시작하고 집안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한 3년 정도는 명절에 아예 고향에 가지 않았었습니다. '네 부모가 돈 벌어서 대학까지 졸업시켜 놨더니 서울까지 가서 술 따르는 일을 한다고??'
뭐... 이런 일들을 듣다 보면 바텐더 입장에서 색안경을 끼고 기성세대 어르신들에겐 아직은 그렇게 좋지 않은 직업으로 인식되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여자 바텐더의 비율이 상당히 적은 편인데 이건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이유는 어째서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답은 '힘드니까........'
당연히 고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으며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다 힘들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바텐더분들은 아시겠지만 30대 초반부터 몸이 어디 한 군데씩 이상 증세가 오면서 중후반에 접어들면 잔병치레에; 이젠 음주라도 하고 나면 다음 날 회복도 엄청 더딘 편입니다;
정말 20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체 능력 저하 증세가 나타납니다. 계속 힘들게 서서 근무하고 밤 낮이 바뀌는 생활에 결혼에 육아 문제까지 겹치면 여성으로 밤낮이 바뀌는 직업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모두 이렇진 않지만 서비스업에 계시는 여성분들의 말을 빌리자면 30대를 지나며 업계를 그만두는 이유는 위와 같은 경우가 가장 많은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토킹 바가 정말 엄청나게 많았는데, 요즘은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런 통칭 "아가씨 바"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토킹 바가 얼마나 많았냐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간판에 단지 'BAR'라는 단어만 보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 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잉? 여기는 아가씨가 없네???'라고 말하곤 자리에 앉아서 물만 마시고 메뉴만 보고 퇴장하는 일이 정말 빈번하게 많았습니다. (그러려면 자리에 앉지 말고 그냥 나가든가....)
오죽했으면 어떤 바에는 입구에 아예 "토킹 착석 바 아님"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일 정도였습니다.
요즘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여자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진상 손놈들이 많은데, 이게 꼭 멀쩡한 때는 안 그러는데 술만 들어가면 번호를 달라는 둥 밖에서 만나자는 둥 (이건 양반이고)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던가(거울 좀 보슈 제발.) 아직도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발 힘들게 구해놓으면 퇴사 좀 시키지 맙시다.....)
오늘 글렌피딕 50년 론칭 행사에 다녀왔는데 40명가량의 바텐더가 모인 가운데 여성분들은 딱 2분 계시더군요.
가뜩이나 남녀 할 거 없이 서비스업에 지원하는 인력이 줄어드는 가운데, 더더욱이 지원자가 사라져 AI 로봇이 바텐더를 대처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Chat GPT를 경험해 보고서는 'Her' 영화에 나오는 개인 비서 같은 ai가 출시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술을 마시러 바에 가지 않고 집에서 혼술을 하면서 ai 와 실제 사람처럼 대화하는 시스템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AI 바텐더까진 아니더라도 인력을 대처할 수 있는 최첨단 설거지 머신이 나온다든지....
오늘도 고생하시는 전국의 많은 바텐더분들이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