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되지 않는 나이 40세,
'불혹'을 앞두며...
얼마 전에 남성 매거진에서 '불혹'이라는 주제로 칼럼 요청이 들어와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줄줄이 적었는데,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와서는 취소됐다고 한다;
뭔가 맥이 빠졌지만 썼던 내용을 내버려 두기에는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적었던 터라 블로그에 옮겨 적어본다.
내가 20대 초반쯤에는, 아니 십 년이 지난 30대 초반에도 '마흔 살'이라고 하면 그건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 아저씨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고, 아니 설령 내가 아저씨가 되었을 때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을 거고 이 바텐더 업계에서 실력으로 최고 정점을 찍을 줄 알았다.
그러나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결혼은 커녕, 누군가의 덕으로 큰돈을 쉽게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었던 30대에 두 번의 동업 실패, 그리고 그때마다 찾아온 우울증을 동반한 공황 장애 이력을 가지고 있다.
불혹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는 일이 없게 되는 나이 40세를 뜻한다. 정신없이 돈에 치이며 30대를 살다 보니 35살쯤 되었을 때는 '바텐더고 뭐고 그냥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동업을 해서 돈을 벌지 못한 이유는 같이 사업을 했던 파트너들의 이기적인 양심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 편하게 돈을 벌고 싶었던 나 자신의 나태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2,30대에도 알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값 만큼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의 재능을 과대평가했었는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노력은 언제나 하지 않았고 당연히 돈은 많이 벌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새치가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40살을 눈앞에 두고 있다. 29살에는 30세가 된다고 했을 때는 '남자의 인생은 30살부터지!!'라고 생각하며 뭔가 굉장히 설레는 감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낼 모레 40세가 된다고 생각하니 '남자의 진정한 인생은 40세부터 부터!! 라는 말은 선뜻 자신 있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10년 뒤 49살에도 100세 시대에 이제 인생의 반 정도를 지나온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려나...)
불혹이라는 뜻처럼 40세쯤 살다 보면 30대에 알면서도 부정하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10대 때 학교에서 시험이라는 관문을 거치며 그 뒤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고, 20대에는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정직하게 노력하고 살아야 하며 30대에는 좋아하는 일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으며 우연히 얻어걸리는 로또 복권 같은 천운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40대에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내 얼굴과 외모에 여실히 드러나 있고 자신이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늙었다고 받아들이고 나를 놓는 순간, 정말로 늙어버릴까 봐 나 자신을 꾸준히 단련하고 관리하고 있다. (허우대만 멀쩡하다는 뜻;)
나는 2,30대에는 별로 가진 게 없어도 연애를 참 잘하고 다녔다. 두 달 이상 연애를 쉬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 여자를 1년 이상 만난 적도 없었을뿐더러, 만남과 이별이 참 헤프고 상처를 주는 일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40대를 앞두고 있으면서 이제는 누군가를 가볍게 만나기에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눈만 더 높아지는 것 같다.
40대를 앞두고 있으면서 뭔가 두근거림이나 설렘은 이제 느낄 수 없지만, 이제는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30대에 두 번씩이나 실패해 봤기 때문에 내가 지금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 불혹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