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줄인 시대에 Bar를 한다는 것
요즘 뉴스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하루에 한두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2030 젊은 세대의 음주량이 줄고 있다는 기사와 영상들입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아도 매년 전체 음주량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술 소비가 더 줄어들 수 있는 이유 역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건강, 비용,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관계 방식의 변화까지. 변수는 많고, 그 방향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반대로 술 소비량이 다시 예전처럼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상징적인 변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 중 하나인 소주의 판매량마저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가는 매년 상승하고, 이제 소주조차 더 이상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소주는 한국의 음주 문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해온 술이었고,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많이 팔리던 술이었습니다. 그 소주의 판매량이 꾸준한 감소 흐름에 들어섰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주류 카테고리가 줄어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의 20대와 30대는 거의 매일같이 술과 함께 흘러간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술잔을 기울였던 사람만 해도 수백 명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돌아보면 그중 90% 이상은 지금은 인연이 끊긴 사람들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당연한 문화였고,회식, 모임, 친목, 위로, 축하까지 우리나라에서 인간관계의 끝은 늘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관계가 시작되지 않는 것 같았고, 술을 함께 마셔야 가까워진다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술은 관계를 맺기 위한 필수 과정이 아닙니다. 굳이 취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다음 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어가야 할 관계라면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신다고 해서 관계가 더 깊어진다고 믿지 않고, 술자리가 끝난 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 시간 자체를 아까워합니다.
예전에는 “일단 마셔보자”가 관계의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왜 만나야 하지?”가 먼저입니다.
술이 나빠서가 아니라, 술이 더 이상 관계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술을 덜 마시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파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줄이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이유로 한 잔을 내놓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고르는 기준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처럼 얼마나 많이 마실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얼마나 적게 마셔도 괜찮은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한 잔만 마셔도 어색하지 않은지, 굳이 취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인지, 다음 날의 컨디션을 망치지 않는 선택인지. 술의 도수보다 마신 뒤 남는 몸의 상태가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흐름은 제가 젊은 시절 보였던 태도와는 정반대입니다.
저희 세대에게 술은 질보다는 양이었고, 취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마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다음 날 출근이 예정되어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일의 일은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내겠지ㅋㅋ”라는 마음으로 밤새 술자리를 이어가던 날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무모함이 아니라 젊음의 일부이자,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술을 마신 뒤 무엇이 남는가입니다.
기억에 남는지, 이야기가 되는지, 나를 설명해주는 선택이었는지.
예전에는 “마셨다”는 사실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왜 그 술을 골랐는지 말할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업장의 매출을 매일 확인하면서 유심히 보는 지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객단가입니다.
객단가는 보통 한 명의 손님이 얼마 정도의 매출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저희 업장의 1인당 평균 객단가는 약 3만 5천 원에서 4만 원 사이입니다.
이를 단순히 환산하면, 한 사람당 평균 약 1.5잔 정도의 칵테일을 소비한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저희 업장은 바 좌석 12석, 테이블 좌석 약 30석 규모인데, 이 수치는 바와 홀 좌석을 모두 합산한 평균치입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보입니다. 바 좌석의 경우, 1인당 평균 소비는 2잔 이상입니다.
반면, 홀 좌석에서는 평균적으로 1.2잔 정도에 그칩니다. 즉, 객단가는 바 좌석에서 확연히 더 높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바 좌석에 앉은 손님들은 바텐더와의 대화, 추천, 설명, 타이밍까지 포함한 ‘케어’를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한 잔을 더 주문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객단가로 이어집니다.
이 지점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술을 고르는 기준’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작정 마시지 않습니다. 설명받고, 이해하고, 납득했을 때 비로소 한 잔을 더 선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특히 주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장을 방문할 때, 서비스의 퀄리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마시는 음료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가 납득 가능한지 여부를 중요하게 봅니다.
우리 업계 안에서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나은 품질, 그리고 차별화된 음료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늘 소비자의 입장에서 지금 이 서비스가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위스키 한 잔일지라도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공간이 함께할 때, 그 선택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지금은 바로 그런 기준으로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하물며, 훨씬 더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지는 칵테일이라면 그 배경이나 의도에 대한 설명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창작 칵테일은 물론이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클래식 칵테일일지라도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정도는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바텐더의 역할은 단순히 술을 만드는 사람에서 고객의 선택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분명히 바뀌고 있습니다.
설명은 이제 단순한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은 곧 서비스이고, 그 서비스는 신뢰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메뉴판에 적힌 이름만 보고 술을 고르지 않습니다. 이 술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왜 이 재료가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태에 왜 어울리는지까지 듣고 난 뒤에야 선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설명이 과하면 부담이 되고, 설명이 부족하면 선택을 망설이게 만듭니다.
저는 어제부터 직원들과 함께 클래식 칵테일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예전의 저는 토론보다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제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게 만드는 방식에 더 가까웠습니다.
어제의 주제는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직원들을 모아 놓고 “내 스타일은 이거고, 이게 맞으니까 앞으로 이렇게 해”라는 식의 주입식 교육을 했을 겁니다.
다른 의견이나 해석보다는 ‘내가 맞다’는 확신이 앞섰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의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이키리처럼 럼, 라임 주스, 설탕이라는 아주 단순한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는 칵테일일지라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균형과 방향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각자의 레시피로 직접 만들어보고, 그중에서 고객이 가장 좋아할 수 있고 모든 바텐더가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함께 선택해 결론을 내립니다.
이 토론의 목적은 단순히 하나의 레시피를 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언제나 고객의 취향에 있습니다.
고객마다 선호하는 맛은 다르기 때문에 다이키리를 하나의 고정된 레시피로만 정의하기보다는
상황과 취향에 맞춰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국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을 근본적으로 해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럼 브랜드의 차이, 설탕의 종류, 얼음의 개수, 쉐이킹 방식, 글라스의 선택까지. 이 모든 요소를 세세하게 고민해봐야 비로소 그 칵테일이 자기 자신의 노하우가 된다고 믿습니다. 상급자가 정해준 레시피를 이유와 근거 없이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 역시 예전에는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하라면 해” 라는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인지 생각해보자고.
그리고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사람들은 술을 끊은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술을 끊은 것입니다.
이제 바가 해야 할 일은 술을 다시 많이 마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잔에 이유를 만드는 일입니다.
왜 이 술이어야 하는지, 왜 지금 이 공간에서 마셔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 선택이 나에게 괜찮은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한 잔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험이 됩니다.
술을 줄인 시대에 바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양이나 회전으로 승부하는 일이 아닙니다.
설명과 이해, 존중과 선택의 밀도를 높이는 일에 가깝습니다.
한 잔으로 끝나도 괜찮은 밤. 취하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시간. 그런 이유를 만들 수 있다면, 이 시대에도 바는 여전히 선택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가능성 때문에 오늘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하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같은 업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고민하고 있을 모든 동종 업계 종사자 여러분.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버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