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맛보다, 그날의 기억이 먼저 남았다.

굳이 바에 가서 술을 마셔야 할까?

by Roy

요즘은 집에서도 충분히 좋은 술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어지간히 괜찮은 술을 구하려면 주류 전문 매장을 찾거나,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좋은 술을 사고 싶다면 많은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을 찾곤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술들은 전문적인 바에 가서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앱 몇 번만 누르면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바에서 판매하던 좋은 술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위스키는 그렇습니다. 발베니, 맥켈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모렌지처럼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들은 이제 대형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가격 역시 충분히 합리적인 수준입니다.

만약 제가 바텐더가 아니라 그저 술을 좋아하는 소비자였다면

“굳이 바에 가서까지 술을 마실 필요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주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다만, 이 질문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 술을 고르는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도 가끔 집에서 술을 마실 때의 선택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술,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분명한 술.

집에서의 술은 휴식이고, 반복이며, 익숙함입니다.

그래서 선택은 자연스럽게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이 선택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바에서는 어떨까요.


바에서까지 집에서 마시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 술을 고른다면 사실 바에 올 이유는 많이 줄어듭니다.

바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술이 놓이는 이유와 그 선택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술이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떤 설명을 거쳐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한 잔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술을 왜 골랐는지, 이 조합이 왜 필요한지, 이 한 잔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혼자였다면 고르지 않았을 술, 설명이 없었다면 지나쳤을 술이 한 잔의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바에 가신다면 익숙한 술을 고르기보다는 바텐더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잘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고, 취향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오늘은 어떤 술을 마시고 싶은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해도 됩니다.

그 대화 안에서 어떤 술을 마실지보다 왜 그 술이 나왔는지가 먼저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바에서의 한 잔은 가격이나 도수보다 이야기를 가진 경험이 됩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스물세 살 무렵 처음으로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결심하기까지 정말 수없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그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바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는 바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조주기능사 실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잠시 일을 할 계획이었고, 2~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술은 소주, 맥주, 막걸리, 정종. 딱 네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BAR’라고 적힌 커다랗고 무거운 문을 여는 일 자체가 제게는 꽤 큰 결심이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러 들어섰을 때의 공기와 향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시럽과 과일 리큐르의 향, 위스키에서 올라오는 나무 향이 섞인 공기. 가구에 배어 있던 담배 냄새, 그리고 어색하게 서 있던 저를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들의 말투까지.


말수가 거의 없던 저는 두 달 동안 손님과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시점에 한 남자 손님이 글렌피딕 12년 한 병을 바틀로 주문하셨고 잠시 뒤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으시면 한 잔 하실래요?”

온더락 글라스에 담긴 위스키 한 잔을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그 한 잔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경험한 싱글 몰트 위스키는 분명히 특별했습니다.

오크 향과 바닐라와 카라멜처럼 느껴지던 달콤함. 술 자체에도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날 제게 더 크게 남아 있던 것은 맛이 아니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건네받았던 그 호의의 감정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바라는 공간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인테리어와 음악, 분위기와 서비스까지 포함해 술을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바는 양주를 비싸게 파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집에서 마시는 술과 바에서 마시는 술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에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는 시대가 아니라 한 잔을 어떻게 마시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이 집일 수도 있고, 바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차이를 알고 고른다면 한 잔은 조금 더 분명한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저에게는 그날 건네받았던 한 잔의 위스키와 “앞으로도 힘내세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아직도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공간을 찾는 분들께 언젠가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 바와 바텐더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감정이 오가는 공간은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AI의 시대에도 쉽게 대체되기 어려운 가치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글렌피딕 12년을 마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고, 이보다 더 맛있는 위스키도 이미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위스키를 마신다기보다는 그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꺼내보는 기분에 가깝습니다.

맛은 오래 남지 않지만, 그날 느꼈던 감정과 젊었던 제 모습은 지금도 잔에 함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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